“엄마 새벽에 추워 죽는 줄 알았어-”

바로 어제까지 목에서 땀이 줄줄 났는데 이게 웬일인지. 해가 지면 모처럼 시원함을 즐기며 홑겹 이불로 배를 덥고 시원한 바람에 꿀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춥다는 생각에 잠에 취한 채 창문 닫고 그래도 부족해 둘둘 말린 이불을 어깨부터 펴서 발가락까지 꼼꼼히 덮느라 잠을 설친다. 얘들은 창문이라도 닫고 자나? 개들은 시원하겠지? 혹시 진돌이 추운 거 아냐? 머릿속으로만 열심히 걱정하다 다시 잠들었다. 어린 나이도 아니니 알아서 춥지 않게 잤겠지 했는데 역시나 추웠었나 보다. 이불 바꿔 달란다. 땀을 질질 흘리며 이불 바꾼 게 엊그제 같고 어제까지만 해도 이 더위는 언제 끝나나 끔찍하게 느껴졌는데 하루 새에 가을로 버쩍 들어섰다. 그래도 더위에 헉헉대던 몸은 시원한 걸 즐기고 싶어 민소매에서 반팔정도면 되겠다 싶었는데 이젠 긴 옷을 입은 따뜻함이 좋아지고 있다. 간사한 사람 마음이란.

시간이 그렇게 흘러간다. 언제 가나 싶은데 언제 가 버렸다. 낮에 헉헉 대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15살로 접어든 진돌이를 두고 외출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는데, 올해는 더위 걱정 그만해도 되겠구나 싶은 안도도 얼마 가지 못하고 벌써 다가올 추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올봄까지 깔던 얇은 이불을 깔아 주니 납죽 그 위로 올라가 잔다. 낮엔 그래도 움직이면 살짝 덥던데 이불위에서 골아 떨어져 잔다.

‘어느새 그렇게 나이 들었지?’ 올여름부터 많이 힘들어 한다. 더위에 지쳐도 나무 그늘로 안가고 사람 근처에서 자려고 부엌이나 거실 앞에서 잠을 청한다. 그러다 정 죽겠으면 어슬렁어슬렁 대문 옆 그늘에서 잔다. 왜 이렇게 더운데서 자냐고 물으면 멍한 눈으로 날 물끄러미 쳐다본다. ‘시원한데 찾아 가서 자. 그래서 여태 안 묶어놓고 키우는 건데’ 그냥 꼬리를 몇 번 흔들어 대더니 일어서려고 한다. 비척거리며 일어나는 모습에서 나이가 훅 느껴진다. 요즘은 가끔 반갑다고 뛰어오다 넘어지기도 한다. 천하의 진돗개 진돌이가! 벌떡 일어나 곱 질린 다리를 들고 쩔뚝거리며 오지만 나도 진돌이도 민망하다. 마당 위계질서 다 잡아주던 진돌이인데.

이번 여름이 진돌이에게 혹독한 여름이었다. 겨울은 또 어떻게 보낼지. 늙을 거라는 생각을 못한 건 아니다. 나 자신에게도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도 늙어감에 미리 준비하고 초연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 연습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전에 닥치니 문득문득 서글퍼진다. 동물을 집에 들일 때마다 얘들에게 우리가족은 함께 즐겁게 지내다 편하게 떠날 수 있는 중간 정거장의 역할이면 충분하다며,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감정의 울타리를 쳐 봤지만 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꿈쩍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해 가까이 가서 숨 쉬나 확인해 본다. 하루하루가 힘들어 보이는 진돌이가 겅중겅중 뛰어 다니면 반갑다가도 예전에 키우던 개가 마지막 인사를 위해 불편한 몸으로 방마다 돌며 식구를 확인하던 그 모습이 생각 나 마냥 좋아하게 되지도 않는다.

개에겐 한해가 인간의 7년이라니 진돌이는 90세를 훌쩍 넘은 나이가 된다는 이야기인데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간수명 100세를 바라보는데 걱정은 접어두고 올겨울 따뜻하게 지낼 방안이나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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