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인터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상엽

“전쟁 후 미국적 시선으로만 바라봤던 세상,
‘아시아적 사유’는 과연 무엇인지 고민해야”

 

이상엽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프레시안 기획위원,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 전 전보신당 정책위부의장, 문화예술위원회 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다큐멘터리사진 전문 웹진 <이미지프레스>를 운영했으며 최근 출간한 <변경의 지도> 외에 수십 권의 책을 썼다. 네이버 '오늘의 포토' 심사위원, 한국판 <내셔널지오그래픽>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지난해 3월 일우사진상 ‘올해의 특별한 작가’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했다.

 

지난 6월 양평읍 경기할인마트 맞은편에 작은 카페가 문을 열었다. 화가, 바리스타, 사진사, 기획자 등 다섯 손가락이 넘는 직업을 가진 장창씨가 연 카페다. 이곳에서는 매월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8월에는 ‘우리가 모르는 바다’ 사진가 이상엽의 <세월호 2년의 기록>을 전시중이다. 장 씨는 뻔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 그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사유케 하는 것이 당대 리얼리즘 예술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세월호의 아픔을 기록한 이상엽의 사진 속에서 우리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배들의 침몰’을 바라보고 읽어내기 원하는 마음으로 이 전시회를 기획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은 세월호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고통 받는 거의 모든 현장에 늘 있다. 그의 사진 이야기를 들어보자.

포토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상엽씨는 기록자로서 대상자와 관계성을 정립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세상 그 모든 것들이 대상인데 자신은 과연 얼마나 공정하게 바라보고 있나 고민하고 있다.

 

- 작년 일우사진상을 받고 올 초 전시회를 여셨죠? 일우사진상은 어떤 상인가요?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에서 주는 상이에요. ‘올해의 특별한 작가’는 다큐멘터리와 포토저널리즘을 2년에 한번 번갈아 주는데 작년 다큐멘터리 부문으로 받았어요. 국내 사진상이 얼마 없어서 한국에서 하는 사진상 중 상금이 제일 큰 편인데 대부분 전시와 출간을 하는데 다 써서 생활비 보조의 의미는 없어요. 대충 받는 이들의 연배가 40은 무조건 넘는 것 같아요. 전시회는 지난 3월에 <변경의 역사(The History on Frontier)>라는 주제로 일우스페이스에서 했어요. 강화도 ‘돈대’가 소재였고요, ‘중심과 변경’, ‘지배와 복종’, ‘권력과 배제’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로 엮어본 전시였어요.”

 

- 2008년부터 7년간 철원에서 강정까지, 용산에서 세월호까지 우리 사회의 변경(邊境)을 조명한 포토 르포르타주 ‘변경 지도’를 2년 전 내고 올해 <변경의 역사>를 내셨는데요, 계속 변경에 주목하실 예정이신가요?

“사실 지난 10여 년간 변경이라는 주제를 집중했어요. 전시도 3차례 했어요. 많이 했죠.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유효한 나의 핵심 키워드인가를 다시 고민하고 있어요. 변경이 있으면 중심도 있잖아요. 중심을 또 해석할 필요도 있어요. 실제로 변경이 공간적으로는 드러나는 것들이 있는데 중심은 꼭 집어 말하기 어려워요. 내 공간 안에서 중심은 어디인가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할 수 있어요. 중심은 사실은 그것을 지배하는 자들이 결집되어 있는 그 어딘가죠. 그렇게 따지면 이 반도 안에서는 서울이 중심이죠. 그런데 사진으로 그것이 쉽게 드러나느냐. 그건 어려운 문제에요. 사진은 작은 것, 구체성에서 시작해야 해요. 시각적으로 담길 수 있는 공간이 되겠지요. 30대에는 열심히 현상을 쫓아다니기도 했는데 제 나이에서는 힘들어져요. 지금은 고민하는 시간이 늘고 작업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혹 변방인이셔서?) 사실 저는 변방인이 아니에요. 토종 서울 사람이고 공무원 집안에 중류층 이상에서 태어났어요. 사실 변방과 관련된 건 아닌데 그런 것에 끌리고 훨씬 더 동경한다고 할까, 그런 삶에 친화적이에요. 끊임없이 여행을 다니며 그런 삶에 관심이 갔어요. 사실 저는 권력, 돈과 같은 중심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저는 비제도화 된 무엇이 훨씬 좋아요. 그것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는 거에 호기심을 느끼죠.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가장 치열할 때 대학을 다녔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작년 4월 프레시안에 올린 바 있는 만신의 사진이다. 팽목항에서 떨어진 서망 해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무속인들이 조용히 자기들끼리 세월호 넋들을 위로하고 있다.

- 예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이나 미국의 사진가들의 시선으로 해석한 ‘아시아’가 아닌 한국 사진가의 시선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싶어서 아시아의 곳곳을 누볐다고 했는데요.

“지구상에는 수많은 문화권과 다양한 철학이 있으니까요. 동서양은 가장 편안하게 나눈 거고 사실 그런 경계선은 없죠. 제가 말하는 아시아는 사실 동아시아에 가까워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사유체계인데 사실 그에 대한 공부가 깊지는 않아요. 지속적으로 동아시아의 인문지리적인 공부를 하면서 특히 주변부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지속해온 거 같아요. 중심이 아닌 변경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철학과 세계관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 측면에서 지구 조그만 반도에 붙어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는 전쟁 이후 거의 일방적으로 미국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는데, 여기 한국이라는 곳에서 대륙이라는 동아시아, 아시아로 시각을 확장할 필요가 있어요. 사진은 발명한 이후로 발전시킨 미국의 시선이 아주 강하게 남아 있어요. 사진은 시각적인 이미지이지만 찍은 사람의 언어가 담겨 있어요. 아시아적 사유로 사진을 찍는다는 건 주체의 시각, 나는 누구인가, 누구의 입장인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있는가, 그런 고민을 해보자는 거죠.”

동거차도 세월호 침몰 현장, 진도 2015

- 철학자 강신주씨가 “이상엽의 사진은 고통을 응시하는 사랑이다”라고 하셨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사진은요?

“구라에요. 강신주의 구라. 제 사진은 굉장히 드라이해요. 피사체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들어 있지만 그것이 당대의 기록이고 현실이기 때문에 꼭 사랑으로 찍거나 구원으로 바라보지 않아요. 그것이 미래에 다시 읽히거나 사회를 변혁시키는 근거자료이고 싶기는 하지만 작가 자신한테 과도한 사랑을 내보이는 건 별로에요. 저는 덤덤한 게 좋아요. 대상에 대한 철철 넘치는 사랑과 헌신도 별로에요. 그런 열정은 유효기간이 있어요. 오래가지 못해요. 제가 사진을 한 지 25년째인데 25년 동안 사진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처음 함께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라졌어요. 10년 뒤면 더 없어지겠죠. 자신의 관심사를 오래 보존시키려면 재능보다는 끊임없는 작가로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빙고! 결혼은 남녀 모두에게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죠. 끊임없이 애정이 넘치는 사람은 뒤돌아서면 깨져있어요.”

 

- 사람들의 공분이나 동정을 끌어내려고 자극적이거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사진을 쉽게 찍는데요. 이상엽 작가의 사진에서는 그런 게 안 보입니다. 본인만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그것도 변해왔어요. 젊어서는 저도 그렇게 했죠. 가장 고통스런 현장에서 가장 고통스런 사진을 찍기도 했죠. 기록자로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대상들을 이용하는 건 아닌지 늘 고민해오면서 관계성을 정립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제게는 세상 그 모든 것들이 대상인데 얼마나 공정하게 바라보고 있나 고민하는 거죠. 그런 사진들이 처음에 대중들의 눈을 사로잡을지는 몰라도 오래간다고 볼 수 없어요. 일종의 모든 것에 대한 포르노인 거예요. 제 입장에서는 나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해 공정하고 상식적인 걸 기준으로 삼아요. 내가 동일하게 당했을 때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돌이켜보면 돼요.”

 

- 주로 힘든 현장에서 사진으로 사건을 기록하시는 건데 외상후스트레스는 없으신지요? 어떻게 푸세요?

“힘들죠. 사진기자들은 현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런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대부분 용감하고 타인의 고통을 참을 수 있게 보이지만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똑같아요. 자기방어기제를 딴 방법으로 풀어요. 사진기자 중에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이 많아요. 가정이 있으니까 젊었을 때처럼 마냥 술을 마실 수도 해외로 도피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요즘은 끊임없이 책을 보고 공부하는 것으로 풀어요. 그렇다고 변하는 건 없겠지만 그러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어요.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근본은 무엇인지 공부로 풀어요. 사진가로서 내 사진에 드러나는 모습은 그렇게 깊지 않아요. 다큐는 있는 그대로 붙잡아 내기 때문에 사진을 깊게 만드는 건 찍는 이의 사유고 언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미약하게나마 사진에 담기도록 가는 거죠.”

광화문 세월호 집회. 서울 2014

-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데요. 글과 사진을 같이 하시잖아요.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정하고 사진을 찍으시나요, 와 닿는 대로 사진을 찍고 글을 쓰시나요?

“전혀 언어가 달라요. 우리의 모든 언어는 주어와 목적어, 원인과 결과가 있어요. 그러나 시각언어는 한 장에 원인과 결과가 같이 있어요. 선후도 없고 동시에 나타나요. 그래서 저는 사진은 사진대로, 글은 글대로 해요. 대신 글과 사진이 서로를 북돋아주는 역할로 가는 거죠. 독립적인 성격을 가졌으되 합쳤을 때는 변증법적인 역할을 해줘야 해요.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탁월하게 표현한다는 건 실제로 안 맞을 수도 있어요. 사진은 근본적으로 직관성이 높아요. 보는 즉시 반응하거든요. 비참한 사진을 보면 비참함을 느끼죠. 비참함의 배후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밝히는 두 번째 언어가 필요한데 그게 글이라고 봐요. 말은 훨씬 더 추상화되어 있고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갈 수 있어요. 아유 이런 얘기는 어려워요!”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양평에서 전시를 한 건 핑계거리에요. 사진에 담겨진 세월호 사진 기록에 관해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사실 전시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양평에 살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세월호 슬라이드 사진을 수십 장을 보여주면서 세월호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런 사회문제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세월호 사건이 2년이 지났다. 밝혀진 것도,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도 없이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하란다. 이상엽 작가는 세월호 사진 기록을 도구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잊지 않기 위해,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다. 모카포토에 전시된 만신 사진을 보는데 울컥 올라온다. 이성과 논리보다 발 빠른 감성과 직관을 건드린다. 딱 그 작품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커피 팔아 전시회 자금을 마련하는 기획자 장창씨가 곧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세월호 앞에 그저 미안한 그대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 문의 ☎ 010-2521-7195(장창)

이경희 객원기자는 소싯적 의상디자이너, 출판기획편집자, NGO 홍보팀장으로 일했다. 경남 산청 시골 출신이라 서울서 늘 흙을 그리워했다. 5년 전 양평으로 이사해 놀멍쉴멍 글도 쓰고 책도 만들며 남편과 두 딸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잘 살고 있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