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방자치와 면장<3>

글 싣는 순서

<1>직선제에서 임명제로
<2>‘동네 대통령’의 권력
<3>동장 공모제 새바람

 

‘마을’이 떠오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을공동체를 강조한 지 오래 되었고,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도 교육에서 마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김선교 양평군수도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가히 ‘마을 전성기’라 할 만 하다.

그러나 막상 동네에 오면 상황이 다르다. 행정의 수장들이 마을을 그렇게 강조하지만 주민을 직접 상대하는 면장들은 ‘마을 사업’을 도리어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이미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이고 있는 사업을 행정기관이 나서서 따로 또 벌인다. 자신의 실적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예산을 갖고 있으니 단기적으로는 경쟁력이 있다. 그렇게 해서 기존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해오던 일들의 힘을 빼 놓는다. 그런데 관 주도의 사업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래가지 못한다. 성과만 자랑하고 폐기되어버린다. 결국 민간이 하던 사업만 죽인 꼴이 되는 것이다.

군수의 의지가 행정 일선의 담당자까지 전달이 되지 않는 일들은 여러 분야에서 눈에 보인다. 군수의 뜻을 잘 이해하고 시행하려는 공무원들도 있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하지 못하다. 대개의 경우 공무원들은 주민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주민을 나오라는 식의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는 흔히 주민참여가 부족하다는 푸념을 한다. 주민참여 부족의 원인을 주민들 탓으로 돌리는 건 누워서 침 뱉기다. 자신의 무능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다.

서울시나 수도권 지자체, 광역시 자치구 등에서 개방형 직위나 공모 직위제 등 활용한 ‘동장 공모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공모제나 초빙제 등은 학교 관리직에 이미 실시하는 제도다. 동장에 대한 공모는 특정 동에 대한 기획안을 놓고 심사해서 동장으로 임명하자는 것이다.

지방직 6급이나 7급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기획안이 우수하면 동장을 맡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직급이 사무장과 같거나 낮으면 조직 장악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도 이제 직급을 상하 개념에서 역할의 차이로 간주해야 할 때가 됐다. 또한 동장 선발을 위한 심사에 해당 읍면동의 주민대표가 참여한다면 더욱 의미가 있다.

읍면동장 공모에 해당 시·군청 공무원이 아닌 외부인사도 지원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서울시 금천구 독산4동장 황석연(49)씨는 국내 첫 민간인 출신 동장이다. 

 

100년 넘도록 따른 일제 유산… 주민참여 개방 행정으로 바뀌다

마을, ‘관리’ 대상에서
‘바꾸는’ 프로젝트로…
‘지시하달’ 방식, 도태

 

그동안 양평군의 인사발령에서 면장은 5급에 처음 승진하는 사람이 주로 가고, 기존 5급 직원 중에 면장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인사권자에게 미운털이 박힌 것’처럼 사람들은 말했다. 실제 인사발령이 이렇게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지만 그런 해석들은 늘 있어왔다.

5급으로 승진해서 면장으로 오는 사람들은 오자마자 몇 주씩 교육을 받으러 떠난다. 교육을 갔다 오면 그때부터 군청의 과장으로 들어갈 날만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군청 과장으로 있다가 ‘밀려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는 자포자기식 태도로 시간만 보내거나 주민들을 상대로 ‘갑질 행세’나 실컷 즐기다 가는 사람도 있다.

면장에 따라 주민참여가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특히 ‘마을사업’이 강조되는 시기에 읍면장의 역할이 더 커지는 점에 비춰 현재의 인사시스템은 개선의 여지가 많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면장의 임무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지금은 마을에서 희망을 찾아보자는 노력들이 시대의 과제가 됐다. 이제 마을을 ‘관리’하기보다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 그래서 마을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실현가능한 전망을 가진 사람이 읍면장이 돼야 한다. 주민의 욕구와 강점·약점·기회·위기(SWOT), 인적 자원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지역을 혁신하는 계획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면장으로 가야한다.

 

개방형직위·공모직위제 등
활용한 ‘읍면동장 공모제’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초 2∼3개 동이나 면의 행정기능을 통합한 ‘책임읍면동’의 기관장을 국민공모제로 뽑는 방안을 추진했다. 지난해 5월 시흥시에서 1호 책임읍면동제가 탄생한 이후 군포, 부천, 남양주, 세종특별자치시, 강원 원주 등이 운영도시로 선정됐다.

책임읍면동제는 지난 3월 행자부와 복지부가 아동학대 방지책의 일환으로 기존 주민센터를 행정복지센터(행복센터)로 변경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 5월초부터 책임읍면동제 중단을 지자체에 통보한 것이다. 아동학대 사건이 연속으로 발생하면서 비록 정책이 1년 만에 뒤집어지긴 했어도 읍면동장을 국민공모제로 뽑는 방식이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공모제나 초빙제 등은 학교 관리직에 이미 실시하는 제도다. 읍면동장 공모는 특정 읍면동에 대한 기획안을 놓고 심사해서 기관장으로 임명하자는 것이다.

지방직 6급이나 7급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기획안이 우수하면 읍면동장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이는 직급이 사무장과 같거나 낮으면 조직 장악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우리 사회도 이제 직급을 상하 개념에서 역할의 차이로 간주해야 할 때가 됐다.

 

주민은 안으로·직원은 밖으로
함께 ‘행복’ 만들어가는 동네

서울 금천구 독산4동의 독산동 성당 마당에 지난달 어린이 물놀이장이 만들어졌다. 마을의 여러 단체와 기관들이 하루씩 맡아가며 아이들과 놀아주는 독산4동의 ‘골목 놀이터’다.

지난해 12월 국내 첫 민간이 출신 동장이 나왔다. 서울시 금천구 독산4동장 황석연씨다. 민간인 동장 공모제는 지난해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요청으로 시내 420여개 동 가운데 4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5급 사무관에 해당하는 동장 자리는 9~7급 공무원들이 20~30년 경력을 쌓은 뒤에야 맡을 수 있는 직급이어서 순조롭게 시행되지 못했다. 금천구(구청장 차성수)에서도 지난해 1차 무산된 뒤 재공모를 통해 16명의 후보자 가운데 황씨가 뽑힌 것이다.

쓰레기가 쌓여 있던 독산4동의 골목길엔 전봇대마다 커다란 화분이 놓였다. 아예 화단이 된 곳도 있다.

그는 금천구 시흥2동에서 10년 넘게 살아온 주민으로서 “앞으로 2년간 주민들과 함께 마을이 바뀌어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대 사범대 출신으로 중·고교 교사를 거쳐 조선일보와 한겨레에서 10년 가까이 취재활동을 한 기자 출신으로서 자연스럽게 ‘기록’을 강조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자문을 받아 ‘방과후학교’를 처음 만들기도 했고, 2014년부터 서울혁신파크의 초대 운영위원장을 맡아 도시 재생과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해왔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행정경험이 많은 팀장과 주무관들을 독산4동에 전격 배치해 황 동장을 지원하도록 배려했다.

황 동장은 “우리 행정시스템은 100년 넘게 일제의 유산을 따랐다. 이제는 지시 하달하는 방식에서 주민참여형 개방 행정으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할 일로 ‘직원들은 사무실 밖으로, 주민들은 사무실 안으로’를 꼽았다. ‘주민기획단’을 꾸려 주민들 스스로 살고 싶은 마을을 구상하고 해야 할 의제를 정하도록 하고, 직원들은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돕는 ‘간사’나 ‘멘토’로서 함께한다는 것이다. 이미 주민센터에 마련돼 있는 주민모임공간 ‘활력소’를 활용해 협동조합이나 공동마켓 등 주민자치 사업을 펼칠 구상도 하고 있다.

그는 마을공동체에서 아이들을 함께 돌봐 교육함으로써 ‘마약 슬럼가’를 벗어난 하와이섬의 사례를 들며 ‘개발’이 아니라 ‘재생’을 통해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주민들과 함께 경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마을’의 다섯 가지 요소는 ▲주민들이 할 일이 있고 ▲복지 사각지대가 없고 ▲골목이 깨끗하고 ▲돈이 생기는 장터가 자주 서고 ▲건강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는 것이다.

고질적인 쓰레기 무단투기 문제도 해결됐다. 청소차를 늘이고 용역을 더 쓴다고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는 쓰레기를 치우는 재활용 환경자원사를 주민들 가운데 의욕 있는 사람들로 뽑아 ‘도시 광부’라 이름 짓고, 그들에게 자신의 일에 대한 자존감을 심는 일부터 했다. 가장 지저분한 무단투기 장소는 화단으로 바꿨다. 그는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던 주민들이 알아서 화단을 가꾸고 쓰레기 투기를 감시할 정도로 아끼는 장소가 됐다”고 말했다.

 

광주 광산구 ‘주민추천 동장임명제’,
‘직접민주주의’ 모델로 정착

광주시 광산구 수완동 주민들이 동장 후보에 대한 투표를 하고 있다.

광주시 광산구(구청장 민형배)는 ‘광산형 직접민주주의의 모델’로 뿌리내리고 있다. 지난 2014년 8월 수완동장으로 시작으로 송정1동장, 도산동장, 첨단1동장, 우산동장, 운남동장까지 ‘동장 주민추천제’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동장 후보에 나설 공직자들은 주민회의에 내놓을 각자의 공약과 마을 운영계획을 작성한다. 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주민들에게 정견을 발표하고 패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이 왜 해당 마을의 동장으로 적임자인지 호소한다. 주민투표에서 1, 2위를 한 후보자는 구 인사위원회에 주민선택후보로 추천되며, 인사위는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해 동장을 확정한다.

광산구의 동장 주민추천제는 3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첫째, 직접민주주의 강화로 자신이 직접 동장을 선출해 생긴 관심도가 더 좋은 마을만들기 활동 참여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는 주민에 의해 선출된 만큼 그렇지 않은 곳보다 지역사회와의 소통에 동장이 더욱 힘쓰고 있어 행정 만족도가 오르고 있다. 셋째는 투명한 인사시스템 정립으로 승진하거나 요직으로 직책을 바꾸고 싶을 때 인사권자에게 줄을 서는 대신 능력과 추진력 위주로 주민의 선택을 받는 제도로 정착했다.

민형배 구청장은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주민 구정참여를 보장하고 마을과 주권자를 위해 일할 동장을 주민이 직접 선택·추천하는 인사시스템을 확립하고자 한다”며 동장 주민추천제 실시 배경을 설명했다.

민 구청장은 “구정의 최 일선인 동장을 주민투표로 추천한다는 것은 직접민주주의로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라 자평한다”며 “직접민주주의 기반을 강화해 주민과 구정을 협치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발굴하고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성동구도 동장직위공모제… 공개경쟁 선발
6급 일반직 응모자 공개발표 및 면접

서울시 성동구 직원들이 동장직위 공모에 응모한 후보자들을 평가하고 있다.

서울시 성동구는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과 조직 운영의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내부 공모를 통해 동장 1명을 공개경쟁으로 선발했다.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은 마을과 지역주민 중심의 복지체계로의 혁신을 통해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마을복지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서울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참신한 생각과 열정을 갖춘 직원이 필요하기에 동장 직위 공모를 추진한 것이다.

6급 일반직을 대상으로 서류전형, 프레젠테이션 발표, 면접을 통해 최종 동장을 선발한다. 일반적인 승진절차가 아닌 열린 인사 운영 차원의 경쟁․심사를 통해 참신한 사업 제안과 추진력을 갖춘 내부 인재를 발탁하자는 취지다.

이는 공무원 조직 특성인 기존의 연공서열 등으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유능한 직원에게 승진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연공서열과 업무능력이 있는 직원을 적정하게 등용하겠다는 정원오 구청장의 인사 마인드를 실천하는 것이다.

공모는 행정직 4명, 세무직 1명, 사회복지직 1명 등 총 6명의 6급 일반직 직원이 응모했다. 대회의실에서 부서별 1명씩 선정된 직원 50명을 포함한 평가위원회를 대상으로 동장 직위에 대해 주요 제안을 포함한 프레젠테이션 발표 후 질의 답변을 실시했다.

평가위원회는 발표가 독창적이고 새로운 내용인지, 행정의 능률화와 예산절감 등 효율적인지, 실시효과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고, 질의 답변을 통해 전문가적 능력과 리더십, 의사전달 능력 등을 살피는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3명을 추천한다. 그러면 구청장은 추천자 중 1명을 구정 기여도, 업무추진실적, 제안 중요도 등에 따라 최종 확정하는 방식이다.

최종 확정된 직원은 동장 직무대리로 보직 변경돼 매분기 추진실적과 향후 계획 등을 제출하며 동 업무평가, 발표제안 등 추진실적에 따라 근무성적평정 우대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동장 직위 공모제 시행을 통해 능력 있고 비전을 가진 참신한 인재가 능력을 펼쳐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남구, 12년 전 주민이 동장 뽑아

서울시 강남구는 이미 12년 전에 주민들이 동장을 뽑은 일이 있다.

강남구는 2004년 8월 주민들이 투표로 공무원을 선임하는 ‘직위공모 시민심사제’를 통해 명예퇴직한 역삼1동장 후임자를 결정했다. 다른 지역 동장 2명과 구회의 전문위원 등 3명이 주민들 앞에서 동 행정을 이끌어갈 소견과 평소 공무원으로서의 소신 등을 밝혔다.

강남구청은 당시 동장 외에도 행정 5급에 해당하는 구청 내 58개 과장직위도 직위공모제에 의한 주민투표로 적임자를 선정한 바 있다. 해당업무와 관련이 있는 주민, 직능단체 중에서 30명의 투표인단을 구성해 투표를 실시했다.

권문용 당시 강남구청장은 “주민생활과 밀접한 행정분야의 간부들은 주민들이 직접 자질을 검증하고 선임함으로써 자치행정에 신뢰감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원들의 인사 불만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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