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가 만난 사람-농협은행 주차요원 송두만씨>

NH농협은행 양평군지부 주차관리요원 송두만씨가 고객의 차량 주차를 안내하고 있다.

NH농협은행 양평군지부 입구, 훤칠한 키에 하얀 티셔츠에 늘 선글라스와 ‘파나마모자’를 눌러쓴 허리 꼿꼿한 노인이 있다. 교통 유도봉을 들고 주차관리하는 모습이 각진 수신호를 하던 네거리 교통경찰과 닮아 보인다. 슬그머니 다가가 말을 붙였다.

근무는 얼마나?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어. 벌써 5년이 다됐네. 퇴직하고 나서 친구 서너 명이 매주 경륜장에서 만나 술 마시고 놀다가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이력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여기 농협 현관에 구인한다고 붙어 있더라구. 그래서 접수했는데 바로 합격된 거야. 공무원이나 군인 출신을 찾았는데 그러니 내가 딱 이지 군인 출신이니까. 내 전임자들은 3개월 넘긴 사람이 없었데. 이게 보기보다 힘들어. 하루 400대 정도 드나드는데, 꼭 1%는 하자가 생겨. 엊그제도 차가 꽉 차서 입구를 막아 놓았는데 계속 경적을 울리는 거야. 그래서 한마디 했지. 빵빵대지 말구 조금 기다리라고. 그랬더니 내가 누굽네 하면서 윗선에 말해 잘라버리겠다고 난리를 치더라구… 오죽 못난 놈이 힘없는 나 같은 사람한테 화풀이하겠나 싶기도 하구…. 매일 도 닦는 거야. 처음 3개월 지나서 너무 힘들어 그만 두려 했는데 총무과장이 조금 기다리면 보너스도 있고 1년 채워 퇴직금도 받아가라는 거야. 120만원 받을 욕심에 눌러 앉은 게 입때까지 온 거지 뭐. 나한테는 천직인가봐.”

젊어서는 무슨 일을?

“난 원래 제주도 사람이야. 제주상고를 다녔는데 그땐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이니 우리 집도 대학 보낼 형편이 안됐지. 육군사관학교에 가면 학비를 안내도 된다길래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지 뭐야. 그래서 갑종장교시험을 보고 1969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고 제주도에 내려갔더니 동네 여기저기에 현수막이 붙고… 우쭐했지. 대위 달고 제주도로 모병관 발령받았는데 선글라스에 권총 딱 차고 지프차 타고 시내를 다니며 폼 잡으면 여자들이 말이야… 하하. 근데 다 소용없어 난 지금이 제일 좋아. 제대하고 국방과학연구소에 검사관으로 근무했는데 당시에 내가 사인해서 나간 돈이 1년이면 9000억원이 넘었어. 그러니 이놈저놈 돈 싸들고 와서 청탁하고… 요즘도 거기 비리 때문에 난리잖아. 난 단돈 10원도 안 먹었지. 나있던 8년 동안 국방비리 한건도 없었어. 찾아봐 진짜야. 그래서 면도칼이라는 별명도 붙었어 하하.”

앞으로 계획은…?

“여기서 나가라고 할 때까지 있을 거야. 우리 고객들 차량번호는 다 외우는데 그 양반들이 붙들어서 못 갈 것 같아. 날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 오전 7시 반이면 여기 나오는데 집에서 새 옷으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운전하면 기분이 참 좋아. 항상 말쑥해야 보는 사람도 좋지. 농협에 오는 손님인데 내가 대접해줘야 상대방도 날 인정해 주는 거지 안 그래? 첨엔 내로라하는 사람, 어깨에 힘 들어간 사람, 건들거리는 사람들이 텃세한다고 무시하더니 지금은 달라졌어. 다 내편이야. 아무래도 오래 있어야 할 까봐 하하. 이제 그만 물어봐. 퇴근시간 다 됐어. 그만하고 우리 딸 중신 좀 서봐. 패션디자이너인데 돈두 잘 벌구 착해. 대통령 옷도 만들었데. 시집 갈 생각을 안 해 얘가…”

입으로는 딸 걱정 하는 체 하지만 주름진 얼굴엔 딸 자랑이 묻은 웃음이 번진다.

조병걸 대표

‘배달부’는 본지 발행인 조병걸 대표이사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그날 나온 신문을 들고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며 독자들에게 신문배달을 합니다. 배달부가 만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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