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론> 용은성 편집국장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건 그를 따른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할 당시 주한 미8군 사령관 위컴이 한 말이다. 그의 이 말은 ‘한국인은 들쥐근성을 가지고 있어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지도자가 되건 전후좌우를 따지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설혹 그름을 알더라도 전적으로 그를 따르고 복종하며 충성한다’는 뜻일 테다.

신군부의 만행을 묵인하고 정권 찬탈을 방조한 미국의 한국 주둔군 사령관이 공개적으로 한 이 말에 모욕감으로 치가 떨리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그러나 그의 이 모욕적인 발언보다 미묘한 자기모멸감 같은 것이 더 아프다. 외국인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점과, 마치 우리 민족의 약점을 들켜버린 것 같은 수치심이 교차한다.

1980년의 들쥐론을 거론하며 우리민족의 특성을 말한다는 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한일 위안부 협상은 그때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채 혹시 또 다른 유형의 ‘들쥐우리’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피해 할머니들의 반발과 국민의 반대에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기구가 ‘화해, 치유 재단’이란 완장을 차고 업무를 시작했다. ‘화해, 치유 재단’에 10억엔이 입금되는 그 시각부터 위안부 문제는 우리와 일본, 피해 할머니들과 일본 정부 간 문제가 아니라 ‘돈을 주고 싶은 재단’과 ‘이를 거부하는 할머니’들의 문제로 뒤바뀐다. 한일 사이 장애물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위컴이 내뱉은 대로 과연 우리민족은 ‘들쥐근성’을 가지고 있을까. 한마디로 들쥐론은 가당치도 않다. 외세가 점령하고 나라가 위급할 때 자발적으로 일어나 창의의 깃발을 드높여 싸웠던 의병,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군대의 총칼로 무자비하게 진압해도 군사독재정권에 맞선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친일이든 친미든 친권력이든 결국에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정의가 무엇인지 아는 국민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서종면 주민들이 옛 문호장터거리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외쳤던 그 장소에 ‘3·1독립만세항쟁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오는 17일 서종면사무소에 준공기념식을 갖는다. 경기도에서 시흥군과 함께 제일 먼저 독립만세를 외친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는 주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타일벽화와 조각상이 있는 군내 유일무이의 기념공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쪽에서는 양평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워회가 내년 3월 건립을 목표로 소녀상 건립 모금운동이 한창이다. 양평물맑은시장 3·1만세운동터 등 소녀상 설치 장소 서너 곳을 후보로 정하고 최종 결정은 군민 의견을 모아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양평 평화의 소녀상은 다른 지역과 달리 군민의 관심이 저조하다. 양평군이 올해 3·1절 양평물맑은시장에서 표석 제막식과 기념식, 퍼포먼스를 하고 3·1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를 가진 것에 비춰보면 뜻밖이다. 진보와 보수가 각각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는 이라면 소녀상 설치는 진정한 보수층에서 오히려 발 벗고 나설 일이다. 한일 합의를 ‘역사의 매듭’이라고 강조하며 찬성 시위까지 해대는 들쥐근성은 보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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