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법적지위 확보… 회원명부와 정관 갖춰야

정도훈 한국역량개발원장

지금까지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행복 공동체로서로 마을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방법론적인 접근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마을을 행복한 공동체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4단계의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생활공동체, 학습공동체, 경제공동체, 나눔공동체가 그것입니다. 그간 제가 농촌마을에 대한 단계적 발전론을 고민하고 현장 컨설팅을 실행하면서 나름대로 체득한 방식입니다. 집을 지을 때 주춧돌을 비롯한 기초공사를 충실히 하고, 그 위에 집을 올려야 튼튼하고 오래가는 집을 지을 수 있는 원리와 같습니다. 마을의 리더가 섣부른 욕심에 단계적 접근 방식을 무시하고 빠른 발전을 추구한다면, 일시적으로는 발전을 이룬 것 같은 착시현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 반드시 말썽이 생깁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활공동체 만들기는 첫 단계로서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입니다. 생활공동체 만들기는 그간 급속한 성장을 하면서 내 것만 추구하여왔던 이기적인 생활방식을 벗어나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단계입니다.

‘우리’는 가족중심의 생활에 익숙해져 내가 살고 있는 정주공간인 마을에서 이웃과의 생활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져 있습니다. 산업화를 통해 창출한 부(富)를 가족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에, 소비하는 것에 익숙해져 이제는 이웃과의 교류가 불편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농촌마을에서도 경제적 부의 창출을 통한 ‘도시 따라잡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더구나 농촌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본원적인 전원생활의 가치 중 하나인 생활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동네 주민과 동떨어진 주거공간을 선호하는 현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금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주민과 지역주민 간 갈등의 상당부분은 바로 이러한 잘못된 가치인식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마을을 생활공동체로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생활공동체로 마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마을의 법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법적인 지위 확보는 관습적인 마을공동체에 법인격을 부여하여 마을 운영의 합리화를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친목모임으로서의 마을이 아니라 법인격을 부여받은 공동체로 마을을 정의함으로써 구성원에 대한 규정과 운영원칙 수립을 통해 마을 운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과거 마을재산을 운용하면서 사고가 발생했던 가장 큰 원인은 마을이 법적인 지위를 확보하지 못해 일부 마을 임원을 중심으로 마을 재산을 관리했기 때문입니다.

마을이 법인격을 부여받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세무서에 가서 마을명의의 ‘고유번호증’을 받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비영리법인으로서 고유번호증을 발급받으면 이때부터는 마을 명의의 통장개설이 가능하며, 마을재산도 마을명의로 등기가 가능해집니다. 고유번호증 발급은 아이가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듯이 우리 마을을 법인격으로서 출생신고를 한 것과 같습니다.

마을의 출생신고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그 첫 번째가 회원명부입니다. 법인은 여러 개인으로 구성된 단체이므로 어떠한 구성원이 회원인지를 명시해야 합니다. 간혹 회원명부 없이 고유번호증을 발급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회원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정의하여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마을의 임원들은 회원의 자격에 대해 충분한 토론을 거친 후, 현재 우리 마을의 회원이 누구인지를 명시할 수 있는 명부를 작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명부는 과거 마을 대동계에 가입된 주민을 중심으로 작성하되 전입자와 주말 거주자, 세입자 등 다양한 주거특성을 고려하여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의 요건은 법인으로서의 마을공동체 운영을 위한 정관이 구비되어야 합니다. 정관은 마을법인의 회원에 대한 권리와 의무 및 운영원칙이 규정된 것입니다. 따라서 마을의 특성에 맞도록 규정되어야 합니다. 과거부터 내려온 마을의 정관은 대부분 상조에 관련된 것을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현대의 공동체 운영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토론을 통한 개정이 필요합니다. 수차례의 마을임원회의를 통해 정관(안)을 작성하고, 이를 주민총회에 회부하여 추인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을을 생활공동체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마을법인 설립이 가장 기초적인 작업입니다. 주민의 화합 유도와 마을사업의 시작은 마을의 법적 지위확보 이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을 만큼 중요합니다. 다음 회에서는 구체적인 생활공동체 만들기의 실행방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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