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우 양평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마음이 답답하다. 박탈감, 좌절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우울해지고 힘들어진다. 젊은이들은 취업, 주거 등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어하고, 노년층은 유교적 질서의 붕괴로 인한 좌절감과 우울감, 사회보장 부재로 인한 빈곤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빠른 고령화와 저출산, 극심한 빈부격차로 사회를 유지할 시스템 자체가 붕괴하고 있는데도 전관예우로 수 년 만에 수백억 원의 자산을 형성하는 사람도 있다. 재벌은 다른 재벌에게 돈을 주고 좋은 상권에 입점하고, 개성 넘치는 자영업자들로 가득하던 거리에는 거대 체인점만 가득하다. 고위 검사는 돈, 차, 여행비를 받고, 고위 관료의 땅은 재벌이 손해를 보면서도 사준다. 현재 평균 임금으로는 수십 년을 모아도 집 한 채를 사기 힘들고, 가계부채비율이 OECD국가 중 최고에 달하고 있다는 실체적 진실에도, 경제신문에는 부동산 호황이 다시 온다는 뉴스가 주기적으로 나온다. 만인이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하다는 우스개 소리가 돈다고 한다. 이런 뉴스를 매일 보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 국민의 마음은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일들이 너무 많다 보니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행동이야 말할 것도 없고 생각조차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할 지를 모르겠다.

심지어 이런 일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뒷얘기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도 불안하다. 어려서 신문 보기가 취미여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부모님보다 일찍 일어나 우리나라 최대 신문사의 신문을 1면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아침 일과였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겨우 10살이었던 나는 신문과 뉴스를 보면서 두려움에 떨었다. 대학생들이 북괴의 사주를 받아 도심에서 폭력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고, 남침 위험이 매우 크며, 선량한 시민까지도 이에 동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쟁이 나면 어디로 피난을 가야 하나 너무 두렵고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6월29일, 대학생 형님들은 어디 가고 당시 대통령후보였던 노태우씨가 대통령 선거제도를 바꾼다고 선언하더니 모든 것이 안정된 것으로 신문에 보도되는 것이 아닌가.

어린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그것은 시민들이 군사독재 연장을 목숨으로 막아낸 사건이었으며, 독재자는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주한 미 대사가 미군 탱크를 수도권의 출동 준비 중인 군부대들 입구 앞에 대놓고 ‘군이 나선다면 올림픽은 물론이고 정권자체를 그냥 두지 않겠다’고 협박하고 나서야 우리는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낼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당시 신문에도, 방송에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독재세력들이 위대한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이게 기사를 쓸 뿐이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신문을 다시는 읽을 마음이 들지가 않았다. 사실(事實)을 얻을 수 없는 언론을 무슨 이유로 본다는 말인가. 상황이나 때에 따라 사설이나 비평, 평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실(事實)을 얻을 수 없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니까. 이제 메이저 언론들은 이 전처럼 사실 자체를 아예 전달하지 않거나 반대로 말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비중, 시간, 사진․영상 편집으로 원하는 것을 이룬다.

다시 두려워진다. 내가 보고 있는 사실이 정말 진실인가. 지금 내가 보고 듣고 있는 소식이 정말 실체적 진실인가. 1993년 이후 믿어왔던, 의견의 대립도 있고 모자란 것도 있고 실수도 있지만 자유롭다고 믿었던,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던 나의 조국. 상식이 통하는 사회,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사회,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국민들이 느낄 수 없는 나라,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으면 더 무거운 벌을 받는 나라, 잘못이나 사고가 있으면 최종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사과라도 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언론이 사실(事實)을 전달할 수 있는 나라.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라고 믿을 수 있다면 뒤숭숭한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그 다음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길 것만 같다. 불안의 근원 중 하나는 무지(無知), 그리고 불가지(不可知)에서 생긴다. 그런 것이 해소되는 사회라고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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