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최형규 서종중 교장

일본에서 만난 박종석 선생이 8월 서울에 온다. 1970년대 민족차별의 상징적 사건 ‘히타치 투쟁’의 산증인이기도 한 재일조선인 박종석 선생. 히타치 투쟁은 1971년 시작되었다. 박종석 선생은 히타치에 당당하게 합격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당한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법원에 소송을 내었고 이 사건은 일본 내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일본의 양심 있는 지식인을 중심으로 박종석 선생을 돕게 되고 결국 3년 만에 재판에서 이기게 된다.

민족 차별을 당당하게 싸워 이겨낸 박종석 선생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특히 내 마음을 울린 이는 일본인 나카히라 겐이치 판사다. 그는 박종석 선생을 돕기 위해 판사직을 그만두고 무료로 변호를 맡는다. 민단과 조총련에서도 팍팍한 삶과 차별 때문에 쉽게 도움을 주지 못하던 시절에 일본인이 사회적 약자인 재일조선인을 위해 연대의 장을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약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민주주의이며, 약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고 보호하기 위해 공동체가 함께 어깨 걸고 나가는 것이 연대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은 분명 사회적 약자다. 박종석 선생의 승소는 재일조선인만의 승리가 아니라 일본 노동자의 승리이기도 하다. 비정규직의 권리 보장은 정규직에 대한 권리보장으로 이어지며, 학생인권의 보장은 교사의 인권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은 인간답게 살 보편적 인권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인권은 ‘인간의 권리’라는 소극적인 개념에서 타인과 국가에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요구’할 수 있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권은 개인적 차원의 배려와 시혜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차원에서 책임지고 보장해야하는 당당한 권리의 문제다.

미국 장애인권투쟁의 역사를 장애인의 시각에서 쓴 ‘동정은 싫다’라는 책이 있다. 책 제목처럼 약자들이 원하는 건 동정이 아니다. 동정과 공감은 비슷하게 쓰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동정이 남의 아픔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머문다면, 공감은 적극적으로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감정이입하는 것으로 연대라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공감과 연대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감과 연대를 위한 시민교육이 우리 공교육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학교는 공공성을 바탕으로 시민을 기르는 교육의 전당이다. 많은 학교에서 글로벌 시민 양성을 교훈으로 삼는 것처럼, 시민교육은 이제 세계시민교육으로까지 확대될 정도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현실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전체주의적 시민관에 머물러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다.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감성과 능력을 배우고 이를 삶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일이 교육의 몫이라면, 학생들의 관심 영역을 자신과 가정은 물론 마을과 국가를 넘어 전 세계로까지 넓혀가는 진짜 글로벌한 교육이 필요하다.

영화 ‘부산행’의 두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공유의 딸로 나오는 김수안의 대사다. 첫 번째는 노숙자를 보고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된다”라고 가르치는(?) 아저씨에게 “그런 말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장면이다. 맞다. 공부는 나의 성공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함께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비들에게 쫒기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그러지 않아도 된다. 너만 생각하라”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빤 이기적이고, 아빠 생각만 한다고. 그래서 엄마도 떠난 거 아니냐고.”

‘나’는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사는 마을도 중요하고, 나아가 국가도, 세계도 중요하다. 장자 ‘인간세편’에 나오는 말처럼 내가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딛고 있는 그 땅만이 아니라 그 땅을 둘러싼 다른 땅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쓸모없어 보이는 땅이 없다면 가만히 서 있을 수조차 없을 것이다. 내 옆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연대를 위한 마중물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창만의 잔치가 아니듯이, 성주의 사드배치는 성주 주민만의 문제가 아닌데 외부세력 운운하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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