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디자인 탁인학 도예가>

“그릇이 곧 인성… 음식 알아도 그릇문화 못 배워,
작가?… 그냥 내 그릇 쓰는 사람 행복하면 그만”

지평면 어울림미술관서 탁인학 도예전

 

“아버지 어떻게 해야 흙을 대하기 쉬워질까요?” (그냥 하면 되는 거란다.) “그래도 무슨 방법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건 시간이 말해줄 거야… 그냥 그렇게 쌓여가는 거란다. 흙처럼….)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법. 그러니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방법은 없다.’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 등장하는 알란 할아버지의 대사다.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듯이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망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은 모든 과정의 숨겨진 진실을 말해준다. 큰 바위가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흙이 되었듯이…. 

라면 하나라도 냄비가 아닌 도자기 그릇에 담아내면 자녀의 인성이 달라진다. 탁인학 도예가가 도자식기와 식탁보만으로 완성하는 멋들어진 상 차림법을 선보이고 있다.

아들에게 ‘시작’하지 말고 ‘그냥’ 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건넨 아버지는 2년 전 작고했고, 탁인학 한울디자인 대표는 지금 이렇게 말한다.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정성을 다해 흙을 대합니다. 흙을 대하기는 매번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흙을 향합니다. 가만히 마음을 담아봅니다. 바람이 휘익 지나갑니다.”

탁인학은 “아무리 화려한 작품이라도 자기 철학과 정신이 작품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하나의 장식물에 불과하다”며 “조그만 막사발이라도 자기 철학이 들어 있다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예술도자기와 생활도자기를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는 편도 아니다. 다름 사람들이 자신을 ‘작가’로 칭해도 아직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는 “60세가 넘으면 진짜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 싶다”며 “소원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그릇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 전시실과 성형실, 가마실 등이 있는 여주시 북내면 한울디자인 작업실 내부.

‘도자기 그릇’이라고 하면 흔히 비싸고, 깨지기 쉽고, 다루기 힘들어 가까이 하지 어렵다는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릇은 음식을 바치기 위해 존재한다. 삶 속에서 함께하는 존재다. 음식문화는 배웠어도 그릇문화는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다. 탁인학이 ‘그릇이 인성’이라고 확신하는 까닭이다. 라면 하나라도 냄비가 아닌 도자식기에 담아내면 라면은 대접받아 먹는 음식이 되고, 자녀는 음식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그릇과 음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곧 사람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사고방식과 연결된다. 

그는 “일본에선 작은 식당에서든 가정집에서든 도자기 그릇이나 가벼운 나무에 옻칠을 한 그릇에 음식이 담겨져 나온다”며 “우리가 아름다운 조선백자와 고려청자를 자랑하면서도 도자기가 정작 밥상에서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에 밀려 외면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이 ‘china(도자기)’와 ‘japan(옻칠기)’이라는 보통명사로 쓰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 탁인학 도예가는 도자 작품에 큰 울타리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그릇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탁인학은 ‘우주에서 지구를 본’ 모습과 같은 대작(大作)들도 선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실생활에 쓰일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도예가다. 우리가 자랑하는 백자와 청자를 실생활에서 쓸 수 있어야 하고, 그릇쟁이들은 소비자의 코드를 충족시켜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 나라 국민이 만드는 게 곧 역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형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기능성과 편의성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는 “한울디자인은 도자기를 만드는 업체다. 맛있는 식기를 디자인해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그릇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탁인학 도예전이 지난 14일부터 지평면 수곡리 소재 어울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정혜경 관장은 “생명이고 종교인 먹거리를 담아내는 그릇만큼 중요한 물건이 또 있을까. 탁인학의 그릇들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정치(精緻)하고, 소박하되 멋꼴이 난다”고 했다. 전시는 다음달 2일까지. 지평면 수곡로 221번길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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