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인터뷰> 김경숙 ‘학도넷’ 사무처장

빈약한 학교도서관 풍성하게 일군 ‘학도넷’
학교도서관·독서교육·문화운동 세 축 견인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코 박고 사는 세상이지만, 책은 여전히 사람을 자라게 하고 알파고 세상을 넘게 할 지혜의 보고다. 아이 책에 관심이 있다 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들어봤을 단체, 어린이도서연구회(이하 ‘어도연’)를 거쳐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이하 학도넷)에서 활동 중인 김경숙 사무처장을 강하면에 있는 자택에서 만났다. 
김 사무처장은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한 교육환경, 독서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일념으로 20년 넘게 독서운동을 해 왔다. 그를 인터뷰하며 동화책 <나무를 심는 사람>이 생각났다.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황무지로 변해 버린 땅에 아무런 보상도 없이 40년간 나무를 심어 마침내 기적을 일으킨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 우직했던 한 남자처럼 그녀도 황무지와 다를 바 없었던 학교 도서관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퍼센트도 채 되지 않았던 학교 도서관을 99퍼센트로 끌어올렸다. 

▲ 학교도서관 문화운동네트워크는 제대로 된 학교도서관 문화를 일으켜보자는 꿈을 가진 이들의 집합체다. 김경숙 사무처장은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통해 학교 교육을 바꾸고 아이들의 미래를 키우고자 그 꿈을 지금도 실현 중이다.

  

- 어도연이든 학도넷이든 다 책과 관련된 일을 쭉 하셨습니다. 

“아이를 낳고 어린이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어도연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시정신 유희정신>을 만나고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어린이책 운동을 꼭 해야겠다, 좋은 책을 가려내는 일이 우리 겨레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196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시절 아이들은 대부분이 저처럼 책을 못 보고 산 줄 알았어요. 그런데 독서운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보니 다 그런 게 아니더군요. 나만 어려웠구나, 환경이 좋은 아이들은 누렸던 혜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30년이 지난 90년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독서환경이 선택된 아이들만 누리는 혜택이 되면 안 되잖아요. 그렇다면 아이의 여건에 상관없이 평등한 독서환경을 누리게 할 수는 없을까 고민을 하다 학교도서관이라는 길을 찾게 되었어요. 그렇게 어도연에서 학도넷으로 이어 일하고 있습니다.”

- 학도넷이라는 단체는 사실 좀 낯선데요, 뭘 하는 곳인가요?

“학도넷은 이 땅의 모든 학생들이 좋은 책을 마음껏 읽으면서 자라갈 수 있기를 바라는 교사와 사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네트워크형 연대 단체입니다. 도서관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책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출판인, 시민 등 모든 분들이 참여해 ‘학교도서관 운동’과 ‘독서교육 운동’, 학교와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마다 도서관이 없는 곳이 없지만 1990년대 말까지도 실제 문을 열고 운영되던 곳이 1퍼센트도 안 됐어요. 1999년 당시 아이가 다니던 난우초등학교에 도서관을 만들게 됐습니다. 학교에 계속 요청을 해도 쉽지 않다가 1998년에 학교마다 예산의 5퍼센트로 책을 구입하라는 안이 떨어지면서 계기가 마련됐지요. 그 예산을 도서관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쓰지 못하고 이후 사라져버렸지만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이 의지가 있으셨어요. IMF 여파로 학교운영예산은 바닥이었지만 아이들에게 간절히 도서관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학부모들이 계획과 예산, 운영에 참여했어요. 이를 계기로 그 이후 전국의 학부모들이 들풀처럼 움직여 도서관 문을 열고 중앙정부의 학교도서관활성화종합방안까지 이끌어냈지요. 학도넷과 교사, 사서, 학부모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전국 99퍼센트의 학교에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그로 인해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이 교직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출판계도 생태계가 변했습니다. 어린이책은 전집 일색이었는데 학교 도서관에 단행본이 들어가면서 단행본 시장이 늘어났지요. 2003년부터는 중·고교생을 위한 청소년책이 출판되기 시작했고요.” 

▲ 소년은 나무를 사랑했고 나무는 친구처럼 지내준 그런 소년을 보며 행복해했다.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시공주니어)의 내용 속 장면의 그림이 김경숙 사무처장의 집 마당 의장에 놓여있다. 나도 나무처럼 친구에게 내 자신을 내어줄 만큼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하게 한다.

- 요즘은 각자 집에 책이 많아 학교 도서관이 활성화될 수 있을까요? 

“아직도 집에 책이 한권도 없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부모의 관심이나 경제적 형편과 상관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독서환경을 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첫 걸음이 학교도서관입니다. 선생님들이 교과과정을 교과서에 국한하지 않고 도서관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이끈다면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책이나 책 문화를 만나는 일 뿐 아니라 교과과정을 모둠으로 풀어낼 활동이 이제 가능해졌습니다. 선생님들의 역할이 크지요. 하지만 도서관을 정말 잘 활용하려면 선생님들을 적극 지원할 사서교사가 절실합니다. 전국의 학교에 사서교사 배치율은 7.5%, 사서가 배치율은 40%정도에 그칩니다. 그래도 경기도는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 양평지역의 학교도서관은 사서 선생님이 없는 곳도 많은데요. 사서 선생님 없이 활성화가 가능할까요?

“당연히 사서가 있으면 좋겠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요. 그럴 때는 학부모들이 지킴이 역할을 하면 됩니다. 시민단체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데 사실 일해 보니 시민활동가들보다 엄마들이 에너지가 훨씬 좋았어요. 난우초 도서관 운동을 한 엄마들과 어린이날 지역 책 축제를 할 때 엄마들이 각 마당을 나눠 기획하고 진행했어요. 평화마당을 맡은 엄마들은 ‘남북어린이어깨동무’에서, 환경마당을 맡은 엄마들은 ‘환경연합’에서 배워 와 마당을 열었는데 아주 훌륭하게 준비했어요. 엄마들이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책 먼지도 털어가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면 엄마의 삶도 확장되고 아이들도 그런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게 됩니다. 도서관에서 이런 따뜻한 경험을 한 아이들은 훗날 자신의 아이 손을 잡고 도서관을 가지 않을까요. 특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게 참 좋아요. 읽어주기는 꼭 좋은 책이 아니어도 됩니다. 아이들은 읽어주는 것 자체에 무장해제하고 마음을 엽니다. 특별한 활동이 없어도,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읽어주기는 가족에게 먼저 해봐도 좋아요.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남편과 산책길에 책 한권 들고 나서서 쉬어갈 때 읽어줘도 좋고요.” 

- 지역에서의 활동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3년 전 이곳에 올 때는 지역 안에서 작은도서관을 열어야지 했는데 학도넷을 이끌 적임자를 찾지 못해 학도넷 사무실이 이곳에 함께 왔어요. 그러다보니 아직 지역 활동은 못하고 있어요. 교사와 사서, 학부모, 출판계 다양한 집단이 이곳에 모여 워크숍을 여는데 지역에서는 못 열고 있네요. 학도넷이 독립되면 지역에 매진하려고요. 강하면보다 더 깊이 들어가 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싶어요. 지역에서도 요청이 오면 기꺼이 하려고요. 좀 더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 지난해 학도넷 행사에 참여한 이들이 서로 권하고 싶은 책들을 광목천에 표현했다. 김경숙 사무처장은 이 천들을 이어 붙여 벽걸이로 만들었다.

- 책과 담 쌓은 어른들께 권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함께 읽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어려워서 못 읽었던 책은 모여서 같이 읽는 공독부터 시작해보는 거죠. 서점, 카페, 공방, 마을회관 그런 곳마다 책읽기 모임을 해보는 거죠. 더 중요한 건 이 신문을 읽는 한분 한분이 사람책이니 책을 빌미로 만나 아무 분별과 걸림 없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고요. 마을의 오랜 이야기를 아는 어르신들을 모셔서 마을 사람 이야기를 그분을 통해서 듣는 건 어떨까요? 무엇보다 가까운 공공도서관에 가서 회원증 만드세요. 적극적인 이용자가 많을수록 도서관이 더 좋아집니다. 그리고 자녀의 학교도서관에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봐주세요.” 

  

인터뷰 도중 김경숙 사무처장이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책만 보는 바보>의 한 부분을 읽어주었다. 나른한 오후 선풍기 바람 쐬며 누군가의 자분자분한 이야기를 듣는 행복감이라니. 그의 제안처럼 ‘달빛 흐뭇한 밤 혹은 하늘의 별을 보며 누워 누군가의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 어떤 행복감이 이에 비길까’, ‘아 마을에서 이런 걸 하면 좋겠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희망들이 자꾸만 생겨났다. 나만을 위해 살지 않고 너른 품으로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이에게선 희망 바이러스가 퍼지나보다. 세상은 늘 이렇게 공동의 선을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늘 빚지며 살아가는 것 같다. 

 

 

이경희 객원기자는 소싯적 의상디자이너, 출판기획편집자, NGO 홍보팀장으로 일했다. 경남산청 시골 출신이라 서울서 늘 흙을 그리워했다. 5년 전 양평으로 이사해 놀멍쉴멍 글도 쓰고 책도 만들며 남편과 두 딸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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