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15

 

 

물길을 보존하고 마을을 살린 마지막 사례로 아이치(愛知)현 우치코(內子)정의 이카자키(五十崎)마을을 소개하려 한다. 이 마을은 깊은 산골마을인데 다무라 아키라(田村明)의 ‘마을만들기 실천’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곳이다. 주민이 앞장서고 행정이 뒷받침하여 호흡을 맞추어 물길과 마을을 살린 대표적인 사례다. 

이카자키마을은 1970년대를 지나면서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고 버려진 산간마을이 되었다. 떠나지 않고 남은 사람들만 별다른 희망 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무렵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도쿄에서 양조장 사업을 하다가 고향으로 귀촌한 가메오카 아키라(龜岡徹)는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동네사람들과는 문화와 언어가 달라져 있었다. 1980년대 들면서는 지방 곳곳에서 ‘마을만들기’, ‘마을 부흥’ 등의 기치가 일어나던 때였는데, 가메오카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정체되어 있는 이카자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 이카자키의 연시합. 가로세로 10미터가 넘는 연이다.

생각한 끝에 가메오카는 자신의 사랑채에 마을을 위한 ‘요모다(よもだ)학원’을 개설했다. 학원이라고 일부러 재미있게 이름 붙였지만 일종의 동네 사랑방이었다. 요모다라는 말은 일본어로 ‘별 특별한 것 없이 되는대로“라는 뜻을 가진 속어라고 한다. 가메오카가 이런 이름을 붙인 데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한 가지는 이미 충분히 도시문화를 겪어 문화와 언어가 달라진 자신과 동네사람들의 벽을 자연스럽게 허물기 위함이었으며, 또 하나는 마을을 위해 뭔가 특별한 일을 하자고 불쑥 제기하면 산간마을에 갇혀 지내던 사람들로서는 부담스러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동네사랑방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막걸리나 마시고 한담이나 나누며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함께 모이자는 취지였던 것이다. 

이카자키는 본래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오다강(小田川)과 그 강변에서의 연날리기 시합이 유명했다. 크기가 10미터에 이르는 연을 편을 나누어 함께 만들어 띄우고 연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떠나면서 축제도 시들해졌다.

▲ 오다강(小田川)변

가메오카의 사랑방에는 점점 사람들이 모였고 밤이 늦도록 불이 켜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오다강변의 상징이었던 늙은 팽나무 밑에서 옛 추억을 되살리는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마침 당시 오다강은 정부가 둑을 시멘트로 정비하려고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 공사계획에 따르면 팽나무는 철거되어야만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팽나무를 살려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주민들은 정부의 하천정비사업 계획을 수정해 줄 것을 제안했다. 

그날 이후로 이카자키의 주민들은 변했다. 팽나무를 살리고 연 시합을 부활시키자는 적극성이 어디에 숨어있었나 싶게 서서히 분출되어 나왔다. 도쿄로 친환경수변정리사업 전문가를 찾아갔지만 당시 일본의 수준은 충분치 못했고, 결국 주민들은 대표 몇 명을 뽑아서 스위스의 전문가를 찾아가도록 했다. 방문을 받은 스위스의 전문가는 일본의 어느 산골의 주민들이 자비를 들여 찾아왔다는 사실에 감동하여 이카자키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스위스의 전문가의 방문 결정에 따라 일본의 전문가와 행정책임자들 몇 명이 이카자키로 오기로 했다. 이카자기 주민들은 대담하게 ‘국제하천심포지엄’이라 이름 붙였다. 행정 쪽은 비용을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행정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벌인 일인데도 행정이 비용을 부담한 데 대해 나중에 누군가가 절차상 자존심 같은 것이 상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행정 쪽은 “오히려 주민들이 착실하게 준비해 준 것에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이 무렵부터 행정공무원들의 생각이 점점 변해나간다. 주민이 앞장서고 우리는 뒤에 숨어서 지원한다는 입장으로 말이다. 

이카자키는 일본의 하천정비사업에서 소위 ‘친자연공법’, ‘친환경공법’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오다강변의 시끌벅적한 연 시합도 부활됐다. 가메오카가 천천히 자신의 호흡을 마을사람들에게 맞추고 행정이 주민들의 결정과 추진을 겸허히 뒷받침하는 동안 마을의 물길과 축제가 살아났고, 이카자키의 주민들은 당당한 마을의 주인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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