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14

 

 

일본의 마을만들기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에 본격적인 발전을 이룬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지방자치제도의 발전이 그것이고, 두 번째는 전통적인 주민조직에 의해서만 이루어져 왔던 지역 활동에 일반 주민들이 대거 참여하면서다. 

일본의 전통적 주민조직 역시 우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행정의 보조자로서의 이장조직을 비롯하여 자치회, 부인회, 상공회, 관관협회, 상점회 등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위와 같은 조직들이 행정의 파트너로서의 지역 활동에 참여했다. 우리의 경우 이장협의회, 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협의회, 부녀회, 상인회 등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1970년대를 경과하면서 전통적 농촌은 급속한 해체과정을 겪게 된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 인구가 감소하고, 농업생산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축소되었으며, 농촌에도 수도나 전기의 보급뿐만 아니라 도시외곽개발이라는 도시화의 물결이 밀려왔다. 한마디로 기존의 농촌공동체가 정신적인 측면이나 물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해체되어 나갔다.

▲ 물길로 디자인한 구조하치만 마을

마을만들기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각 지역의 전통과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해 시작된 것이고, 무질서한 경관 파괴를 막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농촌의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여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보전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에는 기존의 전통적 주민조직만으로는 그 역량에 한계가 발생했다. 새로운 농촌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민운동의 물결도 필요했던 것이다. 1980년대 들면서 전통적 주민조직과는 별도로 비영리민간단체들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조직들을 ‘마을만들기 조직’이라 부른다. 고베시 마쓰모토지역의 사례에서 말했듯이 1990년대 후반에 들면서는 본격적으로 이러한 민간단체들에 대한 지원법(NPO법)까지 제정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러한 조직들의 모범적이며 성실한 줄기찬 활동들이 그 배경이 되었다. 

기후(岐阜)현의 구조하치만(郡上八幡)에도 1980년대 들면서 새로운 주민들이 파괴되는 마을 경관을 지키기 위해 마을만들기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주민조직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는 기존의 전통적 주민조직들과 몇 가지 작은 협력사업을 경험하면서 ‘마을만들기협의회’로 뭉쳐나갔다. 구조하치만도 이미 예전부터 ‘물의 고장’으로 불려 왔지만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어김없이 오염되고 파괴되어 나가는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주민들이 지역 활동에 나섰으며 기존의 주민조직들과 힘을 합쳐 물길을 복원하고 디자인하며 살려나갔다. 

새로운 조직의 선두를 맡은 사람은 미술대학 교수인 와타나베 카즈지(渡部一二)였다. 그는 수변(水邊)공간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와타나베가 선두에 서서 이끌자 주민들은 마을경관을 지키기 위해 힘을 보탰으며, 1만5000명 정도의 마을 규모에 ‘구조물보존회’, ‘수변살리기마을회’, ‘젊은물보존회’ 등 10개 가량의 새로운 조직이 탄생했다. 전통적 주민조직들과 함께 구성된 마을만들기협의회는 구조하치만의 물길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에 멋진 물의 공간을 쌈지공원(pocket park)과 함께 조성하여 구조하치만을 작고 아름다운 물의 고장으로 지키고 있다.

▲ 구조하치만의 물길은 쌈지공원의 역할도 하고 있다.

구조하치만에서 아름다운 개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묵던 날 우리 농촌에도 새로운 인적 자원들이 마을만들기를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실했다. 

귀촌이 늘어나면서 우리 양평에도 훌륭한 인적 자원들이 많이 들어왔다. 이주해 온 이상 나는 내가 사는 마을의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있다. 내가 사는 마을을 내 이웃과 함께 아름답게 만드는 일,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일은 그 어떤 정치적, 경제적, 교육적 활동보다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결국 사람이 관계 속에서 해야 할 최고의 가치 있는 일은 ‘함께 사는 일’ 아니던가. 구조하치만의 물소리와 함께 술기운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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