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진돌이는 물을 좀 더 따뜻하게 했다. 관절이며 근육이 그 새 부쩍 약해져 몸이 젖기 시작하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아무래도 싫은 목욕을 하니 몸에 힘이 들어가서 그런 것도 있고, 따뜻한 물이 뼛속까지 전해오니 몸이 나른해져서 서있기가 힘든 것도 있나보다.

결국 주저앉아서 목욕을 했다. 다 마치고 나니 귀신같이 발딱 일어나서 물기를 폭풍 흔들이로 털어낸다. 목욕시킬 때는 얼마 못 살겠다는 걱정이 드는데 물기 터는 모습을 보니 아직 청년 진돗개다. 털다가 비척거리긴 하지만.

진돌이를 물기까지 다 닦고 나서 기겁하고 도망가 딴청 하는 요비를 데려왔다. 체구에 비해 약아서 결국엔 목욕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순순히 목욕을 받아들여 방전 직전의 배터리로 충분히 씻기고도 에너지가 남았다. 씻겨도 별로 티가 안 나는 털이지만 겨우내 묶은 때를 벗기고 나니 광이 난다. 긴장감(?) 도는 목욕을 다 마치고 마당에 널 부러져 햇빛에 남은 물기를 말리는 개들을 보니 속이 시원하다. 이제 여유 있게 뒷정리를 하는데, 개들 목욕하는 동안 계속 걱정스레 쳐다보던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마당쇠들만 씻기려고 했는데 아마 요비가 비축시켜준 에너지 잔량 때문인지… 결국 물과 개털로 범벅된 김에 고양이들까지 씻길 생각으로 작은 아이에게 한 마리씩 샤워부스 안으로 넣어 달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덩치 큰 보리부터 시작했다. 샤워부스는 고양이 목욕시키기에 딱 좋은 장소다. 처음 집을 지을 때는 예견 못했던 상황인데 욕조를 넣을 수 없어 선택한 작은 샤워부스는 고양이들이 뛰어넘거나 요리조리 미꾸라지 같이 숑숑 빠지는 상황이 전면 차단된다. 한손으로 잡고 목욕을 시킬 필요가 없어 꼼짝 못하게 완력을 쓰는 에너지는 안 들여도 된다. 그래서 힘은 좀 덜 드는데 이번엔 귀가 시끄럽다. 두 마리가 어찌나 시끄럽게 울어대는지.

보리가 목욕하는 동안 마치 학대하는 걸 고발하는 양 샤워부스 밖에서 흑미가 쉬지 않고 여러 톤으로 야옹거리며 안달이다. ‘이걸 어째 이걸 어째! 보리오빠가 큰일 났다. 우리가 싫어하는 물을 뒤집어썼다. 야아옹~’ 뭐 내용이 이 정도 되는 건 아닐는지. 의연하게 대처하던 보리도 함께 냐아아아옹~ 거린다. ‘야 큰일 났어 이 사람이 물을 계속 뿌려대고 비누질까지… 나 곧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세상에나 내 털이 다 젖었어, 야아아옹!’

흑미가 목욕을 마칠 때까지 이중창은 계속되었다. 물기가 아직 덜 마른 상태에서도 흑미가 목욕하는 내내 보리는 밖에서 응원하며 둘의 하모니를 계속했다. 시끄럽게 고양이들까지 목욕이 끝났다. 이제 온 집안이 고양이털로 잔치 벌일 일만 남았다. 모든 목욕 프로젝트를 끝내기 위해 내 몸에 붙은 개털과 고양이털을 털어내고 하수도 구멍을 메어가는 털도 긁어내고 이번엔 내가 씻을 차례다. 그런데 쫄딱 젖은 고양이 두 마리가 밖에서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며 야옹거린다.

‘아이고 이제 네가 그 끔찍한 물을 뒤집어쓰네. 어떻게 하냐. 넌 혼자가 아냐! 우리가 여기서 응원할게! 냐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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