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우 양평정신건강의학과 원장

▲ 안정우 양평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사람마다 이해의 차이가 있다. 같은 말을 서로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 데도 차이가 있다. ‘아니 문자 그대로 같은 말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생활에서 너무나 많이 경험하는 일이다. 직장에서는 상관이 어떤 명령을 내릴 때 어떤 사람은 지금 바로 하라는 것으로 알아듣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여유가 있는 명령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은 왜 같은 말을 듣는데도 다르게 이해하게 될까. 말실수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개념이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신의 무의식적 소망대로 외부자극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감정이라는 것이 현실을 해석하는 중에 ‘왜곡장’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저 상관은 내게만 힘든 일을 몰아주는 거지? 저 의사는 나에게 왜 저렇게 차갑게 말을 하는 걸까? 저 사람은 나를 왜 이렇게 무시하지? 엄마는 동생만 편애하고 나만 미워하는 게 틀림없어. 이런 생각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고리에 빠지게 되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내가 저 사람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진 것인지, 저 사람이 나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진 것인지 알 수가 없어진다.

수 년 전 환자 중에 이런 분이 있었다. 결혼 적령기의 젊은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장까지 그만 두고 수년째 말기 암의 어머니를 돌보는 데만 신경을 쓰고 계셨다. 그래서 어머니를 돌보시는 것이 너무 힘들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분은 벌컥 화를 내는 것이었다. 당신이 뭔데 내가 힘들다고 하냐.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다. 정신과 의사라고 너무 건방진 것 아니냐고. 그러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셔서 다시는 오지 않으셨다.

그 분은 힘들지 않다고 느끼고 살고 계셨는지는 모르겠다. 그 부분까지 확인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리라. 또한 그러한 분노의 감정까지 다스리지 못한 것도 아직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급작스러운 감정의 격동을 느끼셨던 그 분이, 다른 정신과 의사라도 찾아가서 힘들어하시던 ‘불면’과 ‘불안’을 치료할 수 있으셨기를 바란다.

*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은 영화 스타트렉(Star Trek)에 나오는 용어로, 애플 사람들이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관련해 붙여준 딱지다. 애플 직원 버드 트리블(Bud Tribble)이 1981년에 만든 말인데, 그는 스타트렉의 그 유명한 ‘머내저리(Menagerie)’ 편에서 외계인들이 순전히 정신력만을 이용해 자신들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을 잡스의 일하는 방식과 연결시킨 것이라고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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