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어제까지 굴러다니던 털뭉치들이 안 보인다. 아침마다 머리 위로 따라 다니며 ‘밥 줄껴, 안 줄껴?’라며 울어대던 곤줄박이도 이제는 자기 식구 찾느라 이 나무 저 나무 높은 곳에서 가장 예쁜 소리로 울어대고 있다. 이 때가 우리 집 마당 견공들의 털갈이 계절이다.

5월인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느껴져 마당에 사는 개들이 춥지 않을까 싶은데도 낮에 잠깐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3월 말부터 슬슬 겨울 털을 털어내려는 준비운동을 한다. 4월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털이 빠지는데, 빗질을 하지 않으면 묵은 털은 새로 자라는 털에 밀려 뿌숭뿌숭 삐죽삐죽 밖으로 밀려나온다. 그런 몰골 흉한 시기를 지나 더운 여름이 오면 시원한 여름털로 갈아입는다. 겨울털이 여름털에 밀려 올라올 때면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뭉치로 빠지지만, 그 전에 부지런히 빗질을 해서 마당에 뿌려 놓는다. 개를 마당에서 키우기 시작 했을 때는 거의 매일 개들을 관리해주는 의무감에서 열심히 빗질을 했다. 같은 이유로 고양이도 팔이 아프게 털을 빗겼다. 그런데 조금씩 개체수가 늘면서 빗질을 자주 못해주는 대신 털갈이 계절이 되면 집중적으로 빗질에 신경을 쓴다.

특히 진돌이는 토종개라 그런지 우리나라 계절에 아주 최적화된 털로 갈아입는다. 처음엔 병인가 싶게 심하게 털이 빠져서 걱정했는데 두 해 정도 겪으면서 겨울털과 여름털이 촉감부터 용도까지 다름을 알고 기막힌 환경적응에 혀를 둘렀다. 겨울을 보낸 가늘고 촘촘하고 두툼하게 자란 보온성 뛰어난 털이 온 몸을 다 덥고 있다가 빠지기 시작하면 그 양이 상당하다. 귀한 진돌이한테서 빠졌다고 그 털들을 모았었는데 이제는 마당에 열심히 뿌려 놓는다.

양평거주 초창기일 때였다. 새들이 마당에서 부지런히 통통 뛰어다니며 쉬지 않고 하나하나 부리로 무언가 모으길래 신기해하며 자세히 보니 개털이었다. 새들이 개털로 집을 지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우연히 새 둥지를 보다 이끼와 함께 희끗희끗 개털로 보이는 재료가 아주 정교하게 쓰인 것을 알았다. 데크 사이에 낀 털까지 애써 뽑아 이런 따스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새들의 노고를 좀 덜어주고 싶어 어차피 빠질 털을 열심히 빗겨 마당에 털어 놓는다. 마당에 굴러다니는 개털도 해결되고 더구나 새들에게 좋은 보금자리로 쓰이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얘들아 좋지? 우리 집에 재료 많아서~.” 요즘엔 고양이털까지 마당에 제공해 주는데 아무래도 보드란 고양이털이 새들의 둥지재료 선호 대상 1순위인 것 같다.

정말 잠깐사이 새들은 부지런히 새집을 짓고 새끼를 낳고 키워서 독립을 시킨다. 그 사이 늦기 전에 부지런히 개털을 빗겨 마당에 뿌려 놓아야 한다. 이미 집을 다 짓고 먹이를 열심히 나르는 새들도 있지만 좀 늦게 새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 거부하는 개를 잡고 좀만 빗어 보자고 다독이며 빗질을 한다.
‘세상은 어쩌면 이렇게 기막히게 서로 공존하게 만들어졌는지. 그런데 도시의 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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