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8

 

 

2013년에 오부세를 찾은 것은 서종마을디자인운동본부와 함께였다. 마을의 규모나 마을만들기가 지향하고 있는 바가 우리와 비슷해서 방문을 결정했고, 미리 오부세 마을사무소(小布施町役場)와 연락하여 마을만들기 담당자의 설명을 듣기로 예약했다. 마을사무소 회의실에서 오전 9시부터 진행된 설명회를 주도하는 담당자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20년을 넘게 진행해 온 오부세의 마을만들기에는 행정 및 주민들의 오랜 노력과 역사성이 묻어났다. 

오부세의 마을만들기는 그 주체에 있어서도 교과서라고 할 만큼 모범적이다. 처음에는 주민과 상인들이 행정의 도움을 받아 시작한 이후, 2단계 본격적인 마을만들기로 진화하면서는 상인을 포함한 주민, 마을사무소, 그리고 동경이과대학의 마을만들기 경관전문가 등 3개의 축이 솥발처럼 결합했다.

2단계 마을만들기의 슬로건이 정해졌다. ‘밖은 모두의 것, 안의 자신의 것’(‘外はみんなのもの, 內は自分たちのもの’). 지금은 이 슬로건이 일본 전체로도 유명해졌지만 오부세의 마을만들기를 이끌어 나가는 기본 원칙이었다. 마을만들기에서 공공성(公共性)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공공성이란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앞서야 한다는 이념을 말한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가 정립될 수 있는 기본요소다.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운다면 국가와 사회는 존립할 수 없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사회라는 이름의 질서를 이루고 살기 때문이며, 공공성은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다. 

▲ 오부세 마을 상가

오부세는 위 슬로건 아래 경관사업을 시작했다. 경관(landscape)이란 건물 한 채 한 채의 건축을 넘어서 건물과 건물이 길로 이어져 이루는 거리와 마을의 전체적인 풍경을 말한다. 따라서 경관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한 채 한 채의 집이 서로 조화되어야 한다. 각자의 집이 실내는 어떨지언정 외부는 마을 경관과 조화되도록 건축하자는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더구나 오부세는 경관조성 사업을 수경(修景)사업의 방식으로 해나가기로 결의했다. 미술용어에 수복(修復, restoration)이라는 말이 있는데, 노후화된 작품을 복원하여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수경사업이란 마을경관을 전통적 풍경 양식에 따라 조성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오부세의 전통적 건축양식인 하얀 회벽과 짙은 회색 지붕의 단층 목조건물을 기본골격으로 한 차분한 마을경관을 유지해나가고자 한 것이다.

한 뼘의 땅이라도 공공에 양보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신의 땅에 자신의 집조차 마음대로 짓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강요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만큼이나 당연히 사적 재산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 일본인에게 그러한 강요가 인정되거나 먹혀들 리는 없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밖은 우리 모두의 것’으로 양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내 마을을 위해서라면 내가 양보할 수 있다고 동의하게 되었고, 간혹 새로이 이사를 들어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사무소 담당자가 열 번 이상이라도 방문하여 설득하고 설득했다. 

이제 오부세에는 상당한 주민들이 서명한 경관협정이 체결되었고, 오부세는 일본 속의 유럽이라 불릴 만큼 고고한 멋을 지닌 마을이 되었다. 시내 상가의 간판들도 거기에 맞게 단아하고 품격 있게 디자인되었다. 떠들썩거리는 관광을 위한 경관이 아니라 스스로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경관이 조성되었고, 오부세는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멋으로 여행객들에게 은근히 자신들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 오부세 마을 골목길

경관협정을 체결하는 일은 한편으로 희생이다. 자신의 재산권의 향유를 스스로 제한할 것을 약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경관법이 있고 경관협정 조항이 있다. 그러나 제 땅을 한 뼘이라도 양보하지 않기 위해 차량의 교행조차 불편한 도로에 바짝 붙여 담을 설치하거나 진입로 한 뼘으로 다투는 현실에서 경관협정이란 요원하기 짝이 없다. 

오부세 주민들의 공공성이 만들어 낸 오부세의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경관을 본 그 날 밤, 나는 숙소에서 남몰래 울었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