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의 내맘대로 인터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과 심리기획자 이명수

“양평에 작은 상담실 열려다 맞은 세월호 참사,
이런 나라에서 너무나 사치스런 꿈을 꾸었구나”
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건 ‘이웃을 와락’ 껴안는 것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과 심리기획자 이명수. 부부는 2008년부터 고문피해자를 돕기 위해 ‘진실의 힘’이라는 재단을 만들어 고문치유모임에서 집단상담을 이끌었고, 2011년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집단상담하며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안산에 거주하며 치유공간 ‘이웃’의 치유자로 지내다 현재는 양평 자택에서 안산을 오가며 ‘이웃’을 꾸려가고 있다. 정혜신이 지은 책으로 <남자 vs 남자> <사람 vs 사람> <당신으로 충분하다> 등을 포함한 총 13권의 저서가 있고, 이명수가 지은 책으로는 <그래야 사람이다>가 있다. 공저로 <홀가분>이 있다.

 

4월이다. 온 세상의 아름다움조차 숙연해지던 4월16일, 온 국민이 유가족이 되어 울었던 세월호 사건이 벌써 2년 전 일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에 살아 아프고 또 아프다. 4월이 되니 그때의 절망감이 되살아나면서 먼지처럼 가벼운 존재감 때문에 가슴이 콱콱 막힌다. 그저 미안하고 부끄러운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그런데 정혜신 이명수 부부가 양평에 산단다. 그 소식만으로도 막힌 가슴에 바늘구멍 하나 생긴 것 같다.

 

▲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왼쪽)는 양평살이를 ‘비현실적으로 행복’하다고 했고, 정혜신 박사는 ‘양평의 공동체’가 좋다고 했다.

- 양평에는 언제 오셨나요? 양평살이가 어떠신지요?

“2002년 5월에 왔어요. 나이가 더 들면 병원 가까운 도시가 편하다고들 하는데 딱 좋을 때 왔어요. 너무 젊을 때 오면 자연의 고마움을 모르잖아요. 서울로 출퇴근할 때 1시간 전에는 도시였다가 양평에 오면 공간 이동한 기분이었어요. 도시모드로 일하니까 마을 사람들과 교류도 없었지만 양평이라는 공동체 자체가 정말 좋아요. 15년 단골 보리밥집에 갔는데 주인이 우리 아이를 보며 “제대했어요? 많이 컸네”하며 반가워할 때 사는 게 참 행복해요. 잘 살고 있구나 싶어요. 단골이 있는 삶, 느리게, 이런 류의 삶이 좋아요. 안산을 가기 전 우리가 공익적인 일들 많이 했으니 개인적으로 살자며 양평에 작은 상담실을 열어 장날에 치유프로그램을 열려고 했어요. 그러다 안산을 가게 되면서 배가 가라앉고 이런 나라에 살면서 우리가 너무 사치스런 꿈을 꾸었구나, 했어요.”

 

- 최근 두 분이 안산에서 지내다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뭘 하셨는지요?

“재작년 5월에 갔다가 두 달 전에 왔어요. 근 2년 동안 이곳이 주말 주택이었어요. 안산에서 지내면서 단원고 요청으로 생존학생들과 같이 숙소에서 살았어요. 아이들이 6월25일에 학교와 집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도 3주 정도 집에 와서 안산으로 통근했죠. 왕복 200킬로니까 너무 힘들더라구요. 유가족들도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밤낮 없이 전화하고 카톡하고 그래서 안산 ‘이웃’ 근처에 숙소를 얻었어요. ‘이웃’을 만들고 하루 종일 상담했죠.”

‘이웃’은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는 치유공간이다. 정혜신 박사는 이곳에서 생존자와 유가족을 위한 개인상담과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지난 16일이 세월호 2주기였는데요, 세월호 이후 행복한 감정이 들면 죄책감과 미안함이 생깁니다.

“희생학생 형제아이가 ‘죽고 싶다가도 가방에 노란리본 단 사람을 보면 살 힘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가방에 리본 다는 행위가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사람 목숨을 구한 거죠. 유가족 페이스북에 댓글을 열심히 달아주는 것도 치유에 동참하는 거예요. 며칠 전 광주 모임에서 떡집에 떡을 주문하며 세월호 모임이라고 이야기 했더니 백설기떡에 노란리본을 얹어 보내주셨어요. 양평에도 바꿈세가 꾸준히 모이고 있죠. 이런 것들이 희망이고 인프라가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이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아야 죄책감, 무력감에 빠지지 않아요. 우리는 ‘오늘까지만 이 일을 하고 더 이상 못해도 충분히 했다, 괜찮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주변에도 오늘까지 한 걸로 충분한 이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죄의식을 많이 가져요. 죄의식을 많이 갖는다는 건 깊이 공감하는 공감자라는 뜻이에요. 결코 그 일에 미진했거나 덜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에요. 이 지점을 잘 해석하는 게 중요해요. 우리는 부지런히 이런 부분들을 종달새같이 지저귀며 다닙니다. 세월호에 관심 있는 이들은 ‘기승전 세월호’예요. 우리도 자전거를 타고 나가다 정말 좋잖아요, 그러면 ‘아 이거 심한 거 아냐?’ 유가족을 2년간 만나다 좋은 상황을 마주치면 자기 분열적 상황이 와요. 그런데 그걸 견뎌야 해요. 자기가 가진 일상적 상황, 자기 보호의 힘이 있어야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자전거 타러 가는 사진도 일부러 올립니다.”

 

- 두 분은 주로 고문, 쌍용차, 강정마을, 세월호 등 극심하게 갈등하고 고통스러운 사건들 한가운데로 들어가시는데 어떻게 버티시는지요? 

“핵심을 아니까요. 사람들이 우리보고 ‘좋은 일 하신다, 훌륭하시다’고 하면 흘려들어요.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지 ‘우리 왜 사는 거냐’는 질문을 늘 합니다. 예전에 쌍용차 문제로 평택을 다닐 때 주말에 굉장히 힘들었어요. 우린 둘 다 섹스를 좋아하는데 주말에 리듬이 깨져서 좋아하는 걸 못하니까 너무너무 짜증이 나는 거예요. ‘와락’ 친구들한테 이야기했더니‘아 이분들도 섹스 못하면 짜증나고 그러는 사람이구나’라며 안심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말하죠. ‘우리가 그 좋은 걸 못하고 여기 왔는데 얼마나 열심히 해야겠냐!’ 안산 ‘이웃’도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언제든 놓을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모든 일을 길게 해오는 데는 노하우가 있어요. 우리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요. 둘 다 사회적 정체성이 우리의 전부가 아니에요. 개인의 삶이 훨씬 커요. 언제나 돌아와야 하는 곳은 개인의 정체성이죠.”

‘와락’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을 위한 심리치유센터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망자가 잇따르자 이를 막기 위해 정혜신 박사의 집단 상담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치유적 공간이다.

 

▲ 정혜신 박사는 “치유라는 건 집밥을 만들 듯 그때그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도 그렇게 달라지길 바랐다.

-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전문 상담이 필요해 보이는데 실상 갈 형편이 못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문가에게 가지 않고 셀프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맘프로젝트에 참가하세요.(웃음) 상담을 비유로 설명하자면… 밥때가 되면 배가 고프니 밥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밥을 할 수 있다고 하면 끼니때마다 조리사 앞에 길게 줄을 서야겠죠. 그런데 집밥을 오래 못 먹으면 심리적 문제가 생겨요. 우리 사회는 치유라는 게 특별한 어떤 조리사에게서만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치유라는 건 집밥을 만들 듯 그때그때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도 그렇게 달라져야 합니다. 곧 집밥 만드는 법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근본 요소를 알면 자격증 있는 사람을 안 찾아가도 됩니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이하 맘 프로젝트:Mom-Project)는 서울시민을 위한 치유 문화 조성 프로그램이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이며 동시에 모두 치유적 존재’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했으며 치유 받은 이가 또 다른 이를 치유하는 ‘치유 릴레이’ 프로그램이다.

 

- 자녀 셋을 잔소리 없이 키우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죠?

“기도하듯 노력했어요. 막내가 지금 24살인데 어려서는 어리바리했어요. 자폐아 증상이 있었지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우려했지만 우리가 넓은 성벽이 되어주었어요. 가끔 회의가 생겼지만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허벅지에 십자수 놓으며 버텼습니다. 서머힐 11년 중 10년을 놀던 아이가 지금 영국의 좋은 대학에서 유전학을 전공해요. 12과목 전체가 올A더라구요. 박사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공부가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고1때 처음 친구를 사귄 아이가 지금 자기네 대학에서 한인회 회장을 하고 있어요. 만약 우리에게 가장 잘한 걸 묻는다면 우리는 그 아이를 쪼지 않고 기다린 거라고 합니다. 끌어올리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 아이는 자기가 부족했다고는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정말 이 부분은 서로 머리 쓰다듬으며 훌륭하다고 칭찬합니다. 자식은 20살이 넘으면 특수한 관계의 남남입니다. 아이들의 선택을 인정하고 존중하되 이런저런 어려움에 닥치면 같이 싸워주겠다 이런 겁니다. 그러다보니 다섯 명이 모이면 갈등이 생길 이유가 없어요. 자기의 개별성이 확보되어 있어 가능한 거죠.”

 

- 사람들이 전생에 나라를 구하면 주말부부를 한다고들 합니다. 두 분은 거의 매일 붙어 계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안 힘드세요?

“정혜신:정말 좋아요. 이번에 광주에 갔다 와서 물리적으로는 피곤한데 둘이 다니니까 놀러 가고 여행 다닌다는 마음이 많았어요. 혼자 했으면 오래 일 못했을 겁니다. 맨날 이야기하고 수다 떨고 개인적인 것들을 챙기면서 다니니까 재밌어요. ‘훌륭하다’ 이런 말은 우리에게 안 맞아요. 우리 딸도 ‘아빠같은 사람 만나고 싶다‘고 얘길 해요. ‘우리는 너무 예외적인 경우라 쉽지 않을 거다’고 말해요. 정말 행운인거죠. 대학동창과 1년에 여행 간 며칠 빼고는 늘 함께예요. 불편한 적이 없습니다.

이명수:둘 다 폐쇄적이어서 그렇기도 해요. 친구도 없고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어요. 둘이 수다 떨고 노는 걸 제일 재미있어 합니다. 딴 건 할 게 없으니까 이 친구는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정혜신 박사가 옆에서 “친구의 필요성을 못 느껴요. 뽕 맞아 본 사람이 대마초에 만족할 수 있겠어요”라고 한다) 양평은 그런 점에서 정말 좋아요. 외진 곳에 우리 둘만 안 나가면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안산에 가기 전에는 1년에 서너 번쯤 사람을 불러 파티를 했어요. 작년에는 이웃 치유자들을 불렀지요. 그런 점에서 행운이에요. 음악회하면서 개구리 소리 듣고 비현실적일 정도로 행복합니다. 이사 와서 양평 살기를 잘했다 싶을 때가 그럴 때입니다. 앞으로 이곳저곳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종종 가지려 합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여쭈고픈 게 너무 많았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질문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면상 많이 덜어냈다. 처음엔 야심차게 두 분의 이야기를 따로 정리했으나 곧 포기했다. 이 분 말이 저 분의 생각이고 저 분 말이 이 분 생각이기 때문이다. 한 분 같은 두 분, 두 분 같은 한 분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부부의 사회적 활동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지지해왔다. 하지만 만남 이후로는 공적 존재로서가 아닌 부모로서의 정혜신과 이명수, 참 자유인으로 사는 부부에 대한 존경으로 변심(?)했다. 인터뷰 도중 “괜찮다, 괜찮다, 지금까지로도 충분하다”는 말에 그간의 묵은 미안함이 쑤욱 내려갔다. 그간 걸핏하면 눈물을 쏟아 ‘주책맞아 보였던’ 나 자신이 두 분 앞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공감자로 다시 태어났다.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받은 치유의 힘이 이 글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썼다. 이 글이 당신의 답답하고 미안한 가슴에도 작은 구멍하나 뚫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정혜신 이명수 선생님, 비장하지 않게, 자기 분열적 상황을 잘 견뎌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도 잘 살아보겠습니다!!!

 

  

이경희 객원기자는 소싯적 의상디자이너, 출판기획편집자, NGO 홍보팀장으로 일했다. 경남산청 시골 출신이라 서울서 늘 흙을 그리워했다. 5년 전 양평으로 이사해 놀멍쉴멍 글도 쓰고 책도 만들며 남편과 두 딸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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