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선 동물애호가

 

올해는 벚꽃이 유난히 멋지게 폈다. 일주일의 전성기를 끝내며 예쁘게 벚꽃비가 내린 어느 날, 햄스터 한 마리가 아픈 몸을 어쩌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척거리고 있었다.

한 달 정도 더 되었을 것이다. 햄스터에게 각별한 큰 아이가 햄스터 한 마리가 혹이 났다고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자세히 보니 왼쪽 편에 자리 잡은 혹 때문에 몸이 살짝 비대칭이 되기 시작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작은 혹이 있는 정도라고 생각되어 당분간 스트레스 주지 말고 먹을 것을 신경 써서 넣어주면 괜찮겠지 쉽게 생각했다. 예민해질까봐 잠자는 은신처를 들어서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한다 해도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약을 먹일 수도, 바를 수도 없기 때문에 딱히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일주일 정도 지나서 아무래도 집을 깨끗하게 해줘야 병도 낫지 않을까 싶어 은신처를 들고 보니 혹이 엄청나게 커져 깜짝 놀랐다. 수명이 짧은 대신 순환이 빨라서 그런 것인지 일주일 사이에 자신의 몸집만큼 커진 혹 때문에 움직임이 불편해 보였다. 허둥지둥 깨끗하게 집을 바꿔주고 혹이 걸리지 않도록 톱밥도 잔뜩 깔아주고 먹이그릇과 화장실도 낮은 것으로 바꾼 다음 한참을 고민했다. 고통스럽지 않을까? 병원에 데리고 가나? 골든 햄스터 수명을 길게는 3년으로 보고 있던데, 얘는 지금 2년 좀 넘었다. 작년 겨울에 얘 엄마 햄스터가 느티나무 아래 묻혔고 그 옆에 겨울을 못 이긴 형제 햄스터 한 마리가 또 묻혔다.

짧은 수명, 작은 몸집으로 병원에서 진료받기가 힘든 상황이다 보니 손쓸 방법이 내가 아는 한 별로 없다는 판단 때문에 더 안타까웠다. 고통스럽지는 않을까? 차라리 안락사? 이런 생각까지 하다가 제발 고통만 없길 바라며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선처랍시고 좋아하는 먹이를 잔뜩 넣어줬다. 그랬더니 불편할 텐데도 부지런히 먹이주머니 가득히 먹이를 넣어서 은신처로 들어간다. 마련해준 화장실에서도 착실하게 볼일 보며 쳇바퀴만 못 굴릴 뿐 생활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어떤 글을 읽게 되었다. 동물병원에 다니던 강아지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한 가족이 병원장에게 안락사를 문의했는데, 병원장도 판단이 안 서 동물커뮤니케이터에게 사진과 메일로 사정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며칠 후 ‘그 강아지는 자신의 고통을 가족과 헤어지는 것과 바꿀 만큼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스럽더라도 가족과 며칠이라도 더 같이 지내고 싶어 하니 가는 날까지 함께 지내도록 하면 좋겠다’라는 답장을 받았다. 원대로 강아지는 가족들 품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 사람이 보기 힘들다고 동물의 생사를 맘대로 결정한다면 잘 못 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같은 맥락일까? 끝까지 불편한 몸을 끌고 나와 그래도 부지런히 먹이를 입에 넣고 살아있는 한 자신에게 주어진 본능 그대로 충실하게 사는데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 주를 더 보내면서 움직임이 점점 줄더니 어느 날 저녁 하늘로 갔다. 느티나무 아래 엄마햄스터, 형제 햄스터와 함께 나란히 묻혔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그 위로 날아온 벚꽃 잎들이 예쁘게 얹어져 있었다.

느티나무 아래를 보고 있자니 개들이 왜 안 들어 오냐며 끙끙거린다. 개들 수명 평균 13년, 고양이 15년, 앵무새 40~50년, 그리고 거북이까지. 태어난 순서대로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략 따지면 나에겐 떠나는 것을 봐야 될 생명들이 아직 많다. 그러니 ‘이 정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게 된다.

인연이었던 많은 생명들 중 나와 지내서 억울한 생명도 있을 테고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떠난 생명도 있겠지만, 보낼 때 아쉽고 슬프지 않았던 인연은 없었다. 다음 생에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길 바라고 또 바래본다. 작아서 서러웠을 햄스터 한 마리 보내며 다시 세월이 흐른다는 걸 깨닫고 겸손해진다. 나에겐 예외겠는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세월이.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