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6

 

 

가나자와는 계획적으로 보존된 역사적 전통을 가진 건물과 거리에다가 한편으로는 현대적인 미술관 및 문화시설들이 함께 문화예술의 각 거점으로 연결된 거대한 문화벨트이다. 따라서 그러한 문화의 거점들을 연결하여 걷다 보면 도시 전체를 자연스럽게 즐기게 된다. 무료함도 들지 않거니와 그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문화적 감성에 푹 빠져다.

가나자와 문화벨트의 중심은 가나자와 성(城)이다. 현대화 과정에서 일부 훼손된 것도 없진 않지만 일본은 기본적으로 도시의 랜드마크인 그 지역의 성을 확실하게 보존하는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 성의 옆에는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兼六園)이 있다. 3만평의 대지에 조성된 일본식 전통정원이다. 우리의 전통정원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이용하는 측면이 강한 반면 일본의 전통정원은 본래의 자연에 인위적인 노력을 가한다. 숲과 물을 조화시키는 츠키야마 린센(築山臨川)식이나 자연을 응축적으로 재현한 카레산스이(枯山水)식 등 정원 조성 방식도 체계화되어 있고 다양하다. 다만 자연에 인위적인 노력을 가하다 보니 그 관리도 철저하다. 수목 한그루 한그루의 수형이 예술적이다.

성과 겐로쿠엔의 동쪽엔 히가시차야 거리(東茶屋街)가 있다. 직역하면 동쪽 찻집거리라는 의미인데, 일본에서 차야(茶屋)란 음식점 또는 유흥음식점으로도 쓰인다. 말하자면 에도시대 게이샤들의 춤과 연주를 술과 식사와 함께 즐기던 일종의 유흥가였던 셈이다. 그 때의 차야거리를 단지 한 두 채의 집이 아니라 거리 자체로 지금까지 보존해 두고 있는 것이다. 낮에도 고고한 정취가 돌지만 완전히 어둠이 내린 후 차야 앞 마다 세워진 낮은 가로등에 일본 전통의 주홍색 빛이 들어오자 그 거리는 오래된 목조건물과 함께 환상의 거리로 나타났다. 아… 홀로 탄성이 절로 나왔다.

▲ 가나자와시 히가시차야 거리 金沢市 東茶屋街

겐로쿠엔을 나서면 21세기 미술관까지는 미술관 소로(小路)로 이어진다. 도심 속임에도 자그마한 언덕배기를 이용하여 더러더러 작은 미술관들이 위치하고 그 사이를 좁은 숲길이 몇 백 미터 이어진다. 자연과 예술이 오롯이 만나고 있는 산책길이다. 예술적 감흥이 몸을 젖게 하는 느낌이다.

그 길을 벗어나면 21세기 미술관이 덩그러니 위용을 과시하고 그 주위는 넓은 잔디밭, 시민들의 공간이다. 누워 하늘을 보고 이리 저리 뒹굴고 아이들이 평화롭게 뛰어 논다. 미술관 자체도 시민들이 이용하는 편의시설을 함께 가진 복합시설이다. 가나자와의 문화벨트는 예술가나 특정 전문가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공간이다. 관광객을 위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자신들이 즐기며 사는 곳이다. 잔디밭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 공간의 일원인 것처럼 평온해진다. 여행의 절정은 ‘그 곳에 젖어들어 가는 것’ 아니던가.

 

도심을 중심으로 히가시차야 거리의 반대편인 서쪽엔 무장가옥(武家屋) 거리가 있다. 옛날 소위 중상급 사무라이들의 주택이 있던 거리이다. 노무라 가옥(野村家) 등 옛 주택가옥과 함께 거리 전부를 옛 정취가 흐르도록 유지관리하며 보존하고 있다. 무장가옥 거리를 따라서는 예전부터 있던 관개수로가 그대로 복개되지 않은 채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 관개수로는 도심에 이르러서는 폭이 좁아지긴 하지만 여전히 세세라기천(せせらぎ, 細流川)으로 흘러 도심의 딱딱함을 부드럽고 예쁜 정감으로 풀어내고 있다.

▲ 가나자와시 무장가옥거리 金沢市 長町武家屋敷

가나자와의 서쪽과 동쪽을 잇는 중심에는 번화가가 있고 가나자와에도 신선한 해산물을 비롯하여 창조적인 맛을 뽐내는 음식점들도 즐비하며 현대적인 쇼핑거리도 있다. 가나자와 성에서 시작하여 히가시차야 거리를 구경하고 미술관 소로를 거쳐 21세기 미술관 공원에서 유유히 쉬었다가 무장가옥 거리를 걷고 도심 번화가로 나오면 가나자와 시민들은 옛 것과 현대적인 것을 매일매일 함께 체험하면서 살겠구나 하는 부러움이 든다. 옛 것과 현대를 매일매일 체험하며 사는 동안 그들에게는 역사의식과 자기정체성이 끊임없이 살아 있을 것이고,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에 대한 자긍심과 문화의식이 항상 넘쳐날 것이다.

역사의 두께나 깊이는 우리보다 덜한데, 그걸 살려내고 재창조하여 함께 살아가는 그들이 한없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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