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초등학교 ‘큰 꿈 교육 사랑방’

▲ 여느 가정집 거실을 연상시키는 조현초 ‘큰 꿈 교육 사랑방.’ 체스게임, 카드놀이를 하는 아이 옆에서 책을 읽는 아이, 친구와 몸싸움을 하는 아이 등 저마다 자유로운 오후시간을 즐기고 있다.

3월은 새 학년이 시작되는 첫 달이다. 새로 만난 선생님, 친구들과 배우는 수업시간이 끝난다고 하루 일과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남아 놀거나 방과후교실, 돌봄교실에서 오후 시간을 보낸다. 용문면 조현초등학교를 찾아 아이들의 오후 시간을 현장 취재했다.

학부모들 사회적협동조합 결성해 사랑방 운영
별도 신청 없이 학생 누구나, 언제나 이용 가능

지난 16일은 조현초등학교 학부모 총회가 있는 날이었다. 오후 2시 시작되는 학부모총회에 엄마들이 참석하는 동안 아이들은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 놀거나 새로 단장한 ‘큰 꿈 교육 사랑방’으로 모여들었다.

도시의 초등학교는 정규 수업이 끝나면 텅 빈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학원으로, 방과후수업으로 또 다른 공부를 시작하러 떠난다. 동네 놀이터에 나가도 노는 아이들을 보기 힘들다는 요즘, 조현초는 자유롭게 모여 노는 아이들로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이 귀가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고, 간식을 챙기고, 돌보는 일은 누가 담당하고 있을까?

▲ 따뜻한 봄 햇살 아래 뛰어노는 아이들로 놀이터가 만원이다.

정부는 초등학교에서 정규 수업이 끝난 후 별도로 마련한 교실에서 학생들을 돌보는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맞벌이,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학생 위주의 사업으로, 방과후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는 오후돌봄과, 저녁을 먹은 뒤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는 저녁돌봄으로 나뉜다. 올해부터는 이용 대상이 5~6학년까지 확대됐으나 추가 재정지원이 없어 양평지역에선 운영하는 학교가 현재 없다.

시골은 대부분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멀다. 동네에선 놀 친구가 없어 학교에 늦도록 남고 싶은 아이들이 많다. 또 부모들이 외출할 일이 생기거나 귀가가 늦어질 때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다. 이런 고민들이 모여 조현초는 올해부터 학부모들이 직접 사회적협동조합을 결성하고 돌봄교실과 별도로 사랑방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 시끌벅적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만화책 삼매경에 빠진 아이.

학부모들이 나서게 된 배경에는 혁신교육에 대한 고민이 컸다. 학교에서 민간업체에 위탁운영하거나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 직영하는 돌봄교실은 대부분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올해부터는 1~2학년 중심의 돌봄교실에서는 적어도 1개 이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매일 진행하고, 3학년 부터는 방과후학교와 연계해 운영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조현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2009년 혁신학교 지정 이후 ‘조현교육과정’을 만들어 교육혁신을 실천하고 있는 조현초와 학부모들은 돌봄교실이나 방과후학교도 이런 교육철학이 일관되게 적용되기를 바랐다.

사랑방 봉사자로 활동하는 학부모 이정아(40)씨는 “초등학교 때는 맘껏 노는 게 중요하다. 처음엔 시범적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놀고 싶은 욕구가 강한 아이들은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며 “사랑방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며 성장할 수 있도록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고 돌보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영화 ‘쿵푸팬더3’가 상영되자 넋을 놓고 빠져드는 아이들.

올해 교육프로그램은 최소한으로 운영한다. 상반기에는 우리 마을을 조사하고, 문제점을 찾고, 해결방안을 찾아 실행에 옮기는 ‘마을탐험’과 가족단위로 참여하는 월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월에는 ‘어스아워(earth hour) 지구촌 전등 끄기 캠페인’, 4월에는 ‘쑥 캐고 떡 해먹기’를 계획하고 있다. 그 외 대부분의 시간 활용은 아이들의 자율에 맡긴다.

‘큰 꿈 교육 사랑방’이 여느 돌봄교실과 다른 점은 또 있다. 대개 한 달 단위로 신청을 받아 오후 1~5시까지 참여해야 하는 돌봄교실과 달리 특별한 신청 없이, 기간 없이, 정해진 시간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간식은 그날그날 쿠폰을 구입해서 먹으면 된다.

▲ 사회적협동조합인 ‘큰 꿈 교육 협동조합’을 결성해 사랑방을 운영하는 조현초 학부모들.

학부모총회 등으로 부모들이 분주한 이날도 아이들은 책가방과 겉옷을 사랑방에 맡겨놓고 운동장으로 놀러나가기도 하고, 사랑방에 서너 명씩 모여 체스와 카드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저학년 남자아이들은 몸싸움을 하며 바닥을 뒹굴기도 하고, 그 와중에도 만화책이나 책을 들고 독서삼매경에 빠진 아이도 있다. 무질서하고 소란해 보이는 와중에도 저마다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이 여느 가정집 거실처럼 편안하다.

친구와 함께 체스를 두던 최윤서(5년) 학생은 “사랑방이 없던 지난해에는 수업이 끝나면 교실에 남아 친구들과 춤을 추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놀다 스쿨버스 막차를 타고 집에 갔다”며 “지난해 시범 운영할 때 조합원인 엄마의 권유로 동생과 참여했는데 졸업생 선배들이 와서 공부를 가르쳐준 게 재밌고 좋았다”고 평했다. 놀이나 공부나 아이들 자율에 맡기니 만족도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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