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 양평고 창업체험센터

▲ 식당은 오전 11시30분~오후 2시 점심시간에만 운영한다. 얼큰해물수제비, 돼지떡갈비, 바게트버거 ‘굿뜨’ 세 가지 메뉴로 손님들을 맞고 있다.

청년실업 100만명 시대,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논란까지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는 법. 지난 3일 문을 연 ‘양평고 창업체험센터’를 찾아 창업을 선택한 4명의 청년들이 함께 일구는 희망의 현장을 소개한다.

군․백운로터리클럽, 영업장·시설 지원
얼큰해물수제비․돼지떡갈비 창업 도전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게 엊그제 같은데 취업․주택을 포기한 ‘5포세대’, 인간관계․희망을 포기한 ‘7포세대’, 급기야는 포기할 것이 어디까진지 알 수 없다는 ‘N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통계청이 지난 1월 발표한 고용동향에 의하면 대졸이상 실업자는 39만8000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도 대학진학률은 떨어질 줄 모른다. 특성화고 학생들조차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취업 대신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잖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도 ‘창업’이란 새로운 진로를 선택한 청년들이 있다. 전승민, 서재덕, 도한경, 권선영. 모두 지난달 양평고 식품과를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이다.

정승민씨는 시설담당으로 정수기관리, 테이블세팅, 주방안전점검, 가게 인테리어를 책임진다. 정씨는 “다른 친구들은 진학이나 취업을 택했는데 더 어려운 길인 창업을 선택했다”며 “아직 모든 게 서툴지만 ‘잘 먹었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하다”고 웃었다.

서재덕씨는 메뉴 개발을 맡았다. 서씨는 “진학이나 취업은 원하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반면 창업은 쉽게 시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기회를 잡고 싶었다”며 “레시피를 개발하고 일정한 맛을 내기도 어렵지만 손님 개개인의 입맛을 만족시키기는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 올해 양평고 식품과를 졸업한 전승민, 권선영, 도한경, 서재덕. 진학과 취업이라는 평범한 길 대신 전공을 살린 창업을 선택했다.

도한경씨는 행정담당이다. 매출과 지출 관리 등을 맡는다. 도씨는 “진학, 취업 등 고정된 진로에 흥미를 못 느껴 창업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며 “미래가 불투명해 힘들기도 하지만 재밌다”고 만족해했다. 유일한 여성인 권선영씨는 홍보를 맡았다. 전단 배포와 SNS 홍보를 하고 있다. 권양은 “고3이 되면 대부분 진학을 준비하는데 왠지 사회 분위기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며 “잘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 사회를 한발 먼저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개발과정을 거쳐 내놓은 메뉴는 ‘얼큰해물수제비’, ‘돼지떡갈비’, 바게트버거 ‘굿뜨’다. ‘굿뜨’는 지난해 양평고 창업동아리가 전주 바게트버거를 모티브로 개발한 메뉴로 프리마켓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식당에서 팔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오색철판, 육회비빔밥, 김치치즈탕수육 등이 물망에 올랐는데 조리과정이 복잡하거나 맛의 특색이 부족해 제외되고 ‘얼큰해물수제비’와 ‘돼지떡갈비’를 최종 선정했다.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품외관, 좋았던 점, 적정가격, 구매의향, 개선점 등을 조사하고 시장상인들의 맛 평가와 주민 시식회를 통해 보완이 이뤄졌다. ‘얼큰해물수제비’는 육수에 각종 해물과 야채를 넣은 국물과 부추를 넣어 쫄깃한 수제비가 특징이다. ‘돼지떡갈비’는 국내산 돼지고기의 비 선호 부위를 사용해 단가를 내리고 직접 개발한 소스로 독특함을 살렸다.

식당은 월~금요일 오전 11시30분~오후 2시 점심시간에만 운영한다. 제빵, 식품위생 등 학교에서 배운 것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운영시스템, 시간에 맞춰 조리하는 순발력 등 실전에서 배워야할 것들이 더 많다. 앞으로 경험이 쌓이면 차츰 저녁시간과 주말로 영업시간을 늘려나갈 예정이다.

김성겸 창업전담교사는 “창업지원은 진학지도나 기존의 학교교육과정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식품관련학과를 나온 학생들이 실제로 창업에 도전해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지난 3일 양평물맑은시장 쉼터 1층에 ‘양평고 창업체험센터’가 문을 열었다. 실제적인 창업지원을 담당할 사회적협동조합도 오는 24일 창립총회를 앞두고 있다.

새로운 진로모델 제시할 ‘양평고 창업체험센터’

특성화고는 특정분야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교육과 현장실습 등을 하는 전문학교로, 졸업 후 기업이나 사회로 진출하는 직업인을 길러내는 것이 우선 과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양평고에도 전문계학과로 식품과학과, 바이오식품과가 있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취업 대신 대학진학을 선택한다.

지난달 실업률을 보면 대졸이상은 전년 동월대비 2만1000명(5.5%) 증가한 반면 고졸은 8000명(-1.6%) 감소해 고졸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나아지는 추세인데도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현실인식은 이와 다르다. 게다가 양평지역의 학생들은 취업을 하려해도 산업체가 적은 지역 특성 탓에 외지로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한동렬 교장은 “2013년 부임해보니 학생들이 양평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양평에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장점도 있다. 식품과학과, 바이오식품과 학생들이 3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연구한 레시피를 바탕으로 양평에서 안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 교장은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세 축으로 학교, 지자체, 사회적협동조합을 구상했다. 학교는 레시피 개발 등의 기술지원을, 지자체는 시설지원을 담당하고 양평교육가족이 주체가 된 사회적협동조합을 추진주체로 생각했다.
지난해 학교에 창업특성화부를 신설해 식품과학과, 바이오식품과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모델로 창업을 제시하고, 정규 교육과정 외에 기업가 정신과 실무능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첫 상품으로 바게트버거 ‘굿뜨’를 개발해 출시했다. 식품첨가물이나 캡사이신을 사용하지 않고 청양고추로만 3단계 매운맛을 조절한 ‘굿뜨’는 ‘양평시장1길’, ‘트리마켓’ 등 프리마켓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창업체험센터 설립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센터는 졸업생들이 교내 창업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결과물을 직접 현실에서 시험해볼 수 있는 창업 시뮬레이션 인큐베이터다. 1년여의 준비 끝에 지난 3일 양평묽맑은시장 쉼터 1층에 ‘양평고 창업체험센터’를 개소했다. 지역의 기대와 관심도 커 양평군에서 영업장을, 양평백운로터리클럽에서 시설비 3000여만원을 지원했다. 현재 양평고 창업체험센터에는 4명의 졸업생이 식당을 운영 중이다. 메뉴개발과 안정적인 운영으로 자금이 형성되면 창업까지 하는 게 최종 목표다.

창업을 인적․물적으로 지원할 주체인 사회적협동조합도 설립을 코앞에 두고 있다. 발기인대회와 이사장 선임을 마치고 오는 24일 창립총회를 연다. 양평고 학부모, 교직원,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조합원을 모집하는데, 가입비는 1구좌 1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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