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인터뷰> 임순례 영화감독

#임순례 감독이 10년째 양평에 살고 있다. ‘관객 1000만 감독’은 아니지만 뚜렷한 메시지와 감동이 담긴 영화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한 몇 안 되는 감독이다. 강하면 강변의 한 카페에서 지난 29일 오후 그를 만났다. 자신의 영화처럼 그도 화장끼 없는 민낯으로, 거리낌 없는 솔직함으로, 확실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10년 양평생활 만족 “자연·사람 다 좋아”
동물보호단체 카라 대표로 활발한 활동
“양평군 유기동물보호소 직영전환해야”

 

임순례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감독이다.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이하 와이키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 <제보자>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감독이다. 그리고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의 대표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임 감독의 영화를 틈틈이 봤다. 마음이 쓸쓸했다. 흔히 우리가 ‘영화 같다’고 하는 것들은 평범한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로맨스나 성공담 혹은 판타지들이다. 한마디로 비현실적이란 얘기다. 그리고 그중 가장 비현실적인 건 주인공의 외모와 몸매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임 감독의 영화에는 이런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없다. 영화 속 이야기들은 그냥 우리가 늘 접하고 사는 찌질한 일상이 주제다. 출연 배우들도 몇을 제외하고는 우리 이웃에 살 것 같은 사람, 그래서 만나면 막 달려가서 악수하거나 사인 받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김치 안주에 막걸리 걸치고픈 사람들이다.(박해일 빼고. 박해일을 만난다면 꼭 안고말테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는 너무 영화 같지 않아서, 너무 우리네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짠하다.

 

-양평에 사시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언제 오셨나요?

“2002년 영화 <미소>를 여주 이포에서 찍었어요. 서울서 이포로 가려면 양평을 지나가는데 참 좋더라고요. 그러다 이후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라는 영화를 지금 함께 사는 친구가 찍었는데 주인공 은혜도 장차현실 딸이고 스텝도 아는 사람들이고 해서 양평을 자주 왔죠. 자주 오다보니 양평 너무 좋더군요. 좀 더 큰 마당에서 개를 키우고 싶기도 했던 터라 2004년에 강하면 항금리에 땅을 사서 그 이듬해 집을 지어서 후배랑 함께 왔어요.” 

▲ 임순례 감독의 영화는 항상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폭력 장면조차도 여느 영화와는 달리 과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임 감독 영화의 깊이 맛이 우러나온다. 임 감독 자신은 이것을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는 자신의 성향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일하는데 불편은 없나요?

“이사 올 즈음에는 영화를 띄엄띄엄할 때라 고정 외출이 많이 없었어요. 일주일에 적으면 한 번, 많으면 세 번 정도 서울로 나갔는데 2007년 <우생순>을 찍고 카라 활동을 하면서 거의 매일 나가게 됐어요. 차가 3년 만에 10만㎞를 넘었으니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죠. 평소는 그래도 괜찮은데 극도로 피곤한 날 있잖아요. 영화촬영이 새벽에 마쳤다거나 이런 날은 ‘너무 멀다’ 싶죠. 달려도 달려도 집이 안 나오더라고요. 영화 <제보자)>를 찍을 때는 촬영지 근처인 상암동에 원룸을 얻어서 4개월간 살았는데 잠시니까 살았지 쭉 살라 그러면 못 살겠더라고요.” 

-영화평론가 강성률은 <영화는 역사다>라는 책에서 임 감독님을 “자신의 재능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려 하지만 사회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현실에서 소외된 이들을 뚝심 있게 다루”는 감독이라고 평했습니다. 힘든 주제를 계속 다루는 게 지치지는 않나요?

“제가 감독이 돼야지 하고 결심하게 된 영화들이 프랑스 작가주의영화, 예술영화였어요. 대학생 때 영화를 보고 프랑스문화원에서 집까지 오는데 거의 2시간이 걸렸는데 오는 내내 영화가 던져준 질문에 빠져서 왔어요. 2시간 동안 나의 감각을 달래주는 것도 좋지만, 삶의 이면을 다루고 근원적 질문을 던져주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게 저는 더 좋다 생각해요. 저한테는 그게 좋은 영화인 거죠.

제가 인천 변두리에서 자랐는데 참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비빌 언덕 하나 없는 밑바닥 삶을 사는 이들이었죠. 우리가 5남매였는데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집도 5남매였어요. 나이도 어쩜 사이사이에 끼어 거의 대가족처럼 살았죠. 한 명이 주목받고 이런 게 없었죠. 하지만 저는 그들이 돈 많고 잘난 사람보다 더 진한 밀도와 농도로 인생을 산다고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소외된 이들과 살아왔고 지금도 제 주변에 평범 혹은 그 이하인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런 주제를 일관되게 다루는 게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임순례’를 검색하면 영화관련 기사 못지않게 카라 활동이 많이 뜨는데요. 워낙 동물을 좋아하셨나요?

“네. 어릴 적에 우리 개뿐 아니라 온 동네 개들을 예뻐해서 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개들이 우르르 몰려왔죠. 그땐 개를 풀어 키웠잖아요. 어머니가 개들 보고 ‘우리 딸이 왔구나’ 아셨대요. 그런데 그 개들이 개울에서 몽둥이에 맞아 잡아먹히고, 개장수에게 팔려 철창 안에 갇히는 걸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좌절감과 무력감 같은 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죠. 영화 일을 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쉽지 않아 선뜻 키우지 못했어요. 그런데 영화 <와이키키>를 찍은 후 내 삶이 뭔가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우울해 하다가 그 이유가 곁에 동물이 없어서란 건 알고 개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다시 개를 키우며 동물보호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는데 카라에서 대표 제안이 왔어요. 영화라는 게 사람들 보기에는 영화를 안 찍을 땐 노는 것 같지만 계속 영화 일에 집중해야 다음 작품에 들어갈 수 있어요. 당시 <우생순>을 준비할 땐데 도저히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계속 고사하다가 우연히 달라이라마의 “아무리 깊은 깨달음이 있어도 실천이 없으면 깨달음이 아니다”라는 설법을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2009년부터 카라 대표직을 맡고 있습니다. 처음엔 희생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 일을 통해 제가 더 깊어지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카라가 제겐 ‘좋은 인연’입니다.”

-듣기론 채식주의자라고 하던데요. 이효리씨도 감독님이 전도하신 건가요?(웃음)

“원래 그랬던 건 아니에요. 삼겹살과 소주 없이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런데 개를 키우며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더 풍부해진 것 같아요. 또 <여섯 개의 시선> 피디가 강아지를 많이 키우고 좋아하던 분이었는데 강아지를 잃어버려 공고문을 붙였더니 누군가 경동시장에서 봤다고 하더래요. 시장에 가보니 개뿐 아니라 수많은 동물들이 중탕집 앞에 갇혀있었던 거죠. 그 광경을 보고는 육식을 못하게 됐대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리 강아지도 잃어버리면 누군가에게 식용의 대상이 되겠구나 싶더군요. 우리 집 개나 옆집 개나 소나 생명은 다 똑같은 건데…. 그때가 12월 중순이었는데 연말까지 열심히 고기 먹고 이듬해인 2003년 1월부터 채식을 하고 있어요. 효리씨는 2009년 티비에서 유기견을 다룬 방송을 스타일리스트가 보고 울면서 전화해서는 “효리야, 네가 영향력이 있으니까 뭐라도 좀 해봐”하고 제안해서 카라로 먼저 연락이 왔어요. 효리씨 덕분에 단체가 많이 성장했고 동물보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많이 심어줄 수 있었죠. 고마운 친구입니다. 제가 전도한 건 아닙니다.”

 

-채식하면 왠지 빼빼할 것 같은데요. 어렵진 않은가요?

“생각보다 어렵진 않아요, 해보니까 괜찮아요. 채식을 한다고 다 날씬하진 않고요. 효리씨가 그러더군요. 코끼리나 소도 채식한다고.(웃음) 친구들과 어디 식당에 가서 고기 메뉴와 채식 메뉴를 시키면 제 앞에 고기를 두고 갑니다. 채식에 대한 편견(?)들이 있는데 채식을 하면 탄수화물 중독의 우려가 있죠. 내년엔 건강을 위해 체중감량을 해볼까 생각중입니다.

가끔 채식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완전한 채식이 어렵다면 고기 먹는 횟수를 줄이거나 고기 가짓수를 줄여보라고 권합니다. 예전엔 소, 돼지, 닭 정도였는데 요즘은 말고기, 칠면조, 오리 등등 종류가 너무 많잖아요. 그중 어떤 것만 먹겠다 정해보는 거죠.”

-양평에서는 하는 일이 없다고 하지만 강하면 송전탑 반대운동에도 참여하고 소소한 모임의 강의도 하시던데요. 양평살이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은요?

“양평에 영화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자연환경이 좋잖아요. 여긴 상수도보호구역이라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장 매연 같은 게 없으니 너무 좋죠. 아쉬운 점은 하나 있어요. 지자체마다 유기동물 직영보호소를 운영하는데 양평에는 직영보호소가 없어 위탁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관리가 쉽지 않아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어요. 카라에 제보가 들어와 알게 되었죠. 이웃 가평의 경우 군에서 직영으로 관리하다보니 동물들 상태가 참 좋아요. 그런데 친환경, 친생명 이런 이미지가 강한 양평에서는 막상 위탁을 하니 아쉽죠. 위탁하는 거랑 직영보호소를 운영하는 거랑 비용 면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군에서 조금만 마음을 써주면 직영을 운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임 감독의 영화는 흰순두부 같다. 아주 슬프거나 화가 나는 표현도 보통의 영화보다 약하다. 오버액션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한 감정 폭발이 없다. 그래서 MSG가 좀 들어가 감칠맛 팍팍나는 빨갛고 얼큰한 순두부 맛에 익숙한 우리에게 자칫 밍밍하게 와 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속이 불편하거나 몸에 위로가 필요할 때 우리는 질리지 않는 흰순두부를 찾는다. 영화 속 모든 장면에서 감독의 DNA가 들어있다고 하니 사실 임 감독 자체가 흰순두부 같다고 하는 게 맞을 터.

의식 있는 예술가들이 글로, 영화로, 그림으로 사회문제를 고발한다. 그런데 임 감독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실천한다. 텃밭을 가꾸고 개를 키우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을 쓰고 채식을 한다. 이렇게 말이 삶에 기댄 사람 앞에 서면 상대가 혼내지 않아도 내 삶을 반성하게 된다. 사인 받고 싶기보다는 막걸리 한잔 하고 싶은 감독님이 양평에 살아서 양평이 더 괜찮은 동네가 되었다. 유명 탤런트가 사는 것보다 더 자랑하고 싶다. 임순례 감독님! 이사 가지 말고 여기서 죽 사셔야 해요. 꼭요!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임순례 감독은 1960년 인천에서 출생해 프랑스 파리8대학 대학원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화 <세 친구>로 데뷔했다. 제14회 투명사회상(2014), 올해의 좋은 영상물 시상식 극영화 부문(2011), 제18회 부일영화상 유현목 영화예술상(2009),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박남옥 영화상·여성영화인축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제4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제29회 청룡영화상 작품상(2009), 제38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2003), 제21회 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2001), 부산국제영화제 평론가선정 넷펙상(1996),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 대상(1994) 등을 수상했다. <제보자>, <남쪽으로 튀어>, <로맨스 조>, <미안해, 고마워>,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날아라 펭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미소>, <여섯 개의 시선>, <와이키키 브라더스>, <세친구>, <우중산책>, <아름다운 생존: 여성 영화인이 말하는 영화>, <그녀의 무게>, <소중한 사람> 등의 작품이 있다.

글=이경희 객원기자, 사진=이대호 기자

 

이경희 객원기자는 소싯적 의상디자이너, 출판기획편집자, NGO 홍보팀장으로 일했다. 경남 산청 시골 출신이라 서울서 늘 흙을 그리워했다. 5년 전 양평으로 이사해 놀멍쉴멍 글도 쓰고 책도 만들며 남편과 두 딸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잘 살고 있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