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터뷰-청소년카페 ‘날개’

▲ 정남선 대표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다. 안전하게 쉴 곳이 없다. 어른들은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서 친구를 만나고 음식을 나누고 때론 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정작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은 마을 어디에도 없다.

이뿐인가? 양평에서 유일한 청소년문화공간인 ‘양평청소년문화의집’은 양평읍 공흥리 산자락에 위치해 청소년들이 접근하기가 매우 힘들다. 또 용문산 중턱에 있던 ‘청소년수련관’도 없어진 지 오래다. 읍·면마다 체육시설이 들어서고, 마을회관․노인회관․복지관 등이 신․개축되는 와중에도 청소년을 위한 공간은 군유지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외면 받아 온 것이 현실이다.

양평의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번듯한 청소년 전용건물의 신축일까? 청소년들로 구성된 ‘양평군차세대위원회’는 지난 9월 ‘YP1318STAR’ 청소년문화축제 기간에 청소년 250명을 대상으로 그동안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청소년 활동․문화 공간 조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청소년들은 청소년 참여활동 공간 중 제일 먼저 설치했으면 하는 공간으로 청소년 전용쉼터(43%)를 원했고, 청소년 전용쉼터(카페)를 휴식(42%), 청소년 동아리활동(33%), 만남의 장소(25%)로 이용하길 원했다.

이런 청소년들의 요구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학부모들이었다. 청소년카페 ‘날개’가 위치한 지평면은 지평초․중․고가 지평로 사거리를 사이에 두고 모여 있다. 중․고생들은 방과 후에 30분~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편의점으로 모여드는데, 장소가 협소하다보니 편의점 앞 초등학교 교정에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초등생들은 괜스레 눈치를 보며 이들 청소년을 피해 다니거나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다 간혹 차도를 침범해 운전자들을 놀라게 한다. 이렇게 학생들은 뜨거운 여름날에도 추운 겨울에도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거리를 배회하고, 이런 학생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청소년들이 눈과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하고 따뜻한 장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쉼터가 필요했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지평중 학부모 안선주․최경미씨였고, 이 생각이 청소년카페 ‘날개’의 출발점이 됐다.

안선주․최경미씨는 지난해 9월 청소년카페 조성에 같이 할 사람과 후원금을 모으며 장소 물색에 나섰다. 마침 지평로사거리에 폐업하는 가게가 있어 건물주의 후원으로 저렴한 비용에 임대계약을 마쳤고, 지난해 12월부터 기존 시설을 철거한 뒤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건축 관련 일을 하는 이들과 학부모, 학생들의 재능기부·물품후원으로 이뤄진 공사는 4개월에 걸쳐 진행됐고, 지난 4월2일 드디어 문을 열었다.

9개월째에 접어든 ‘날개’는 학생들이 애용하는 쉼터가 됐다. 오후 2~3시는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초등생들이, 오후 3~5시는 중학생들이, 5시 이후엔 고등학생들이 주로 들리는데 하루 이용객은 50여명에 이른다. 학생들은 ‘날개’에서 간식을 먹거나 보드게임, 독서 등을 즐기기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쉰다.

정남선(48) 대표는 혹시 돈이 없어 음식을 못 먹는 아이가 있을까 하는 걱정에 매주 수요일을 ‘천사의 날’로 정했다. 학부모들이 준비한 ‘특별식’을 무료로 맘껏 먹을 수 있는 이날엔 평소보다 세 배 이상 많은 150여명의 학생들이 카페를 찾는다. 지난 수요일엔 김밥, 어묵, 떡볶이 등을 300인분 가까이 준비했는데 금새 동이 났다.

▲ 청소년카페 ‘날개’ 운영진과 후원회원들이 지난달 서울 ‘삼각산 재미난 마을’의 이상훈 사무국장을 초청해 마을공동체를 이룬 과정과 ‘재미난 카페’ 운영사례를 경청하고 있다. 순수 비영리민간단체로 운영하는 ‘날개’와 마을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그려본 뜻 깊은 시간이었다.

정 대표는 “청소년들은 먹고 돌아서면 또 배고프잖아요. 용돈을 받는 아이들은 편의점에서 몸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식품을 사먹는데 이런 먹거리도 문제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이마저도 친구가 먹는 것을 지켜보거나 한 젓가락 얻어먹어요. 카페에서도 천 원씩 재료비 후원금을 받는데, 한 달 가량 운영해보니 이 돈도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 ‘천사의 날’을 만들게 됐어요.” ‘천사의 날’을 만드니 중․고생뿐만 아니라 초등생이 많아졌고, 카페를 지키는 ‘날개지기’ 엄마들뿐 아니라 초등 학부모들의 봉사도 이뤄지게 됐다.

날개는 청소년들의 쉼터와 만남의 장소뿐 아니라 동아리활동, 학습공간으로도 이용된다. 도교육청 마을교육공동체 동아리 공모사업으로 건축동아리 ‘비버아저씨’를 운영했고, 날개에 모이는 중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요리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우리동네학습공간’으로 등록돼 아이들이 없는 오전과 늦은 오후에는 학부모와 지역민들의 모임 장소로 쓰이는데, 현재 기타동아리와 역사공부모임이 사용 중이다. 간혹 학교 수업장소로도 쓰여 지평중 2학년들이 자유학기제 인문탐구시간으로 요리수업을 하는가 하면 중3 학생들은 시낭송회를 가졌고, 수능시험이 끝난 고3 학생들은 학교 밖 국어수업 장소로 카페를 이용했다.

날개는 비영리민간단체로 100% 자원봉사와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현재 카페에서 봉사하는 ‘날개지기’가 6명, 정기후원인이 30여명이다. 월 운영비는 100만원 정도로, 정기․비정기후원금과 학생들의 재료비 후원금 등으로 충당한다. 정 대표는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아이 친구도 행복해야 한다. 내 아이와 내 아이 친구가 날개에 모여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엄마들도 행복해한다”며 “청소년들이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간섭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공간, 안전하게 쉬고 놀 수 있는 쉼터가 여러 곳에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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