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인터뷰/ 서후리숲 오진리 대표

#왠지 북국의 자작나무숲에 가보고 싶은 계절이 다가온다. 하얀 설산에 펼쳐진 흰 자작나무숲에서 부는 바람을 맞으면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느낌. 핀란드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양평에서 자작나무숲을 만날 수 있다. 서종면 서후리에서 ‘서후리숲’을 가꾸는 오진리씨를 만났다.

 

▲ 오진리 대표에게 정해진 것은 오직 숲을 가꾸겠다는 의지 하나뿐이다. 수익을 내려고 서두를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이라곤 없다. 심은 나무가 자라 숲이 되기까지 ‘기다림’ 외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돈이 많아서? 땅 팔아서 나무 심어요”
자작나무숲·구상나무숲 등 자랑거리
성장 중인 숲 “함께 가꾸고 누려요”

이맘때였다. 바람이나 쐬자고 왔던 양평에 하루 만에 전셋집을 계약하고 한 달 뒤 이사 왔던 때가 꼭 이때다. 막상 이사를 오니 가을은 온 데 간 데 없고 겨울이 떡하니 와 있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강원도 철원에 버금간다는 매서운 추위도 장장 4시간이 걸리는 남편의 출퇴근도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다 괜찮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주변에 너무 많은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논이었던 땅이 밭이 되는가 싶더니 집이 생기고, 차가 올라가다 뒤집힐까 겁나는 가파른 산도 칼로 썬 것 마냥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민둥산과 속살이 드러난 산을 보며 이건 아닌데 싶어 속이 아렸다. ‘자연을 누리고픈 인간의 이기심은 자연을 지키는 것과는 별개구나.’

우연이었다. 화가인 친구가 옆 동네에 좋은 숲이 있다며 같이 가자고 권했다. 온 동네가 산이고 숲인데 뭔 숲이 따로 필요하나? 싶었지만 궁금해서 한번 따라가 봤다. 일명 ‘서후리숲’. 시선을 잡아끄는 화려한 꽃밭도, 곳곳을 장식하는 안내판도 없는 숲. 산책보단 힘이 들고 산행보단 수월한 산을 한 바퀴 휘 돌고 내려와 먼발치 잔디밭이 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다였다.

예전에 “좋은 향수는 스치고 지나갈 때는 모르다가 잠자리에 누웠을 때 아 그 냄새! 하고 기억나는 향이다”라고 화학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향만 그런 게 아닌가보다. 서후리숲도 그랬다. 필자는 그 숲이 종종 생각났다. 온 산이 파헤쳐지는 요즘, 숲이 잘 있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다시 숲을 찾았고 그곳에서 지난번엔 보지 못한 나무를 심는 사람, 오진리 대표(33)를 만났다. 생각보다 젊다. 

 

▲ 서후리숲의 자랑인 자작나무숲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다. 흰 빛깔을 내는 자작나무 줄기가 이국적이다.

- 도대체 이 숲은 정체가 뭔가?

“선친께 물려받은 땅이에요. 20여 년 전부터 부모님이 서울에서 오가며 가꾸기 시작하셨어요. 아버지는 살아생전 땅을 팔면 부자들이 사서 그 땅을 누리지만 숲을 만들면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산, 나무, 자연이 주는 치유와 회복을 나누고 싶으셨던 거죠. 30만평 중 10만평을 숲으로 가꾸는데 거제도의 외도를 설계하신 분이 아버지 후배여서 함께 동선을 짰어요. 장애인들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했는데 지금은 조금 바뀌긴 했어요.”

- 이 땅을 팔면 엄청난 부자가 되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을 텐데?

“부자가 되면 돈만 많지 할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 숲에선 숲이 예뻐지고 나무들이 자라는 걸 보는 게 너무 기쁘고 행복해요.”

- 그런데 이 숲이 입장료로 유지가 되기는 하나?

“음. 그렇진 않고요. 숲 주변 땅을 조금씩 분양해요. 그 돈으로 조금 조금 가꾸는 중이에요. 분양받은 이들은 평생회원으로 등록되셔서 숲 이용이 무료구요. 펜션도 두 동을 운영하고 있어요. 12월에서 2월은 추워서 숲도 펜션도 쉬어요.”

바이올린을 전공했다는 오 대표, 지금은 악기 대신 호미와 낫을 들고 숲 곳곳을 누빈다. 음악에 대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이게 더 적성에 맞는다고 한다.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오빠도 엄마와 여동생이 힘들까봐 걱정하긴 하지만 숲에 대해 딴 생각은 없는 듯.

- 숲을 가꾸고 지키면서 힘든 건 없었는지?

“시골이라 주민들이 사유지 개념이 없으세요. 봄이 되면 그냥 나물 캐러 오세요. 조금이 아니고 전문나물꾼 수준으로…. 수차례 설명을 드려도 한두 분은 강하게 저항하셨어요.(웃음) 요즘은 오히려 서울 분들이 좀 그러세요. 하루는 갑자기 소나기가 오는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뛰쳐나오더라고요. 또 다른 힘든 점은 마을이나 군에서 협조가 안 될 때요. 저희가 돈이 많은 줄 알고 돈을 요구하는 분들도 계세요. 군은 인허가 문제가 늘 걸려요. 공사하라고 해서 하면 담당자가 바뀌어 허가가 안 나기도 하고, 우리는 거절당해서 엄청난 돈을 들여 길을 새로 닦았는데 아랫집은 버젓이 허가를 받고요.”

- 이 숲을 특별히 누렸으면 좋겠다 싶은 분이 있나?

“예전에 단체로 손님들이 오셔서 노래 부르고 시끄럽게 놀다 간 적이 있어요. 여기는 대형버스가 들어오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런 분들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자기 숲처럼 자주 와서 나무가 자라고 계절마다 바뀌는 숲을 들여다보고 누리는 분들이 오시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가까이 계신 분들이 좋겠죠. 가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고정적으로 하는 건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선교사님들을 위한 캠프가 전부예요. 앞으로 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도 이곳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저희가 숲을 가꾸는 데 온 힘을 쏟느라 다양한 시도는 못하고 좋은 장소를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 잔디밭 사이의 황톳길. 맨발로 걸으면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D를 섭취할 수 있다.

 

▲ 서후리숲에 딱 두 동 있는 펜션. 캡슐 모양으로 삼림욕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가족용이다.

숲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하지 아침 8~9시. 새벽이슬이 햇살에 반짝일 때란다. 그리고 그 해가 기운을 잃어갈 무렵이면 꽃들의 색이 짙어지는 데 그 광경 또한 아름답다고. 펜션에서 묵으면 둘 다 누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숲을 여는 시간에 부지런히 달려가면 된다. 하지만 그 시간대를 놓쳐도 상관없다. 

서후리숲에는 우리가 쉽게 접하기 힘든 자작나무숲이 자랑거리다. 사진 찍는 분들이 감탄에 감탄을 하신다고. 곧 초절정으로 아름다워질 포근한 단풍나무숲도 있다. 참! 메타세콰이어숲도 있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작아서 잎을 보는 즐거움에 만족해야 한다. 그 외에도 느린 걸음으로 걷다보면 아기 측백과 유아기에 접어든 구상나무도 만나고 소박한 3단 폭포도 볼 수 있다. 또 프러포즈하기에 딱인 비밀의 장소도 있다. 숲을 거의 내려오면 고즈넉한 연못과 오 대표가 결혼식을 올렸다는 잔디밭이 나온다. 정말 야외결혼식이 딱 어울리는 잔디밭 둘레로는 구운 황토가 깔려 있는데 맨발로 땅을 밟을 수 있다. 걷는 게 싫으면 카페에 앉아 숲을 바라보기만 해도 괜찮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거창한 건 없고 그저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 숲을 가꾸는 거 그게 다예요.” 밍밍한 하얀 순두부 같은 오대표의 대답에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오 대표의 바람이 아니어도 필자 역시 이곳에 그런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 늘 손해보고 사는 바보같이 착한 이들과 더디 가도 여럿이 함께 가고픈 아이 같은 이들, 그리고 야물지 못해 마음이 자주 아픈 이들, 땅에서 피어나는 아이들, 사계절의 변화가 궁금한 이들, 전자기기로부터 해방되어 손에 손잡고 놀고픈 가족 등등. 그런 분들이 온다면 이 숲은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맞이하고 치유해 줄 것 같다. 10월이 절정이다. 늦기 전에 도시락 싸들고 고!고!

이경희 객원기자 imbeing@hanmail.net

<관람안내>

입장료: 어른 5000원, 어린이(7세 이하)와 서후리 주민 3000원
개방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일요일 휴무) 
주소: 양평군 서종면 거북바위 1길 200
문의: 010-2065-2387
홈페이지 www.seohuri.com

 

 

<이경희 객원기자>

본지 객원기자. 소싯적 의상디자이너, 출판기획편집자, NGO 홍보팀장으로 일했다. 경남 산청 시골 출신이라 서울서 늘 흙을 그리워했다. 4년 전 양평으로 이사해 놀멍쉴멍 글도 쓰고 책도 만들며 남편과 두 딸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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