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인터뷰/ ‘또리네집’ 펴낸 만화가 장차현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 같은데 정작 물어보면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는 유명하지만 양평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 바로 만화가 장차현실씨 같은 사람이다. 본지 객원기자 이경희씨가 이런 분들을 만난다. 이름 하여 내맘대로 인터뷰.

▲ 장차현실씨는 자신이 그려온 만화와 마찬가지로 인터뷰에서도 대답 하나하나에 리얼리티를 담아낸다. 가식 없는 솔직함이 그의 매력이다.
독자에게 위안 주며 정작 자신은 아픔 쌓아
장애‧여성 스스로 내려놓으며 허상에서 탈출
양평은 가족 맺어준 땅… “자연에서 위로받아”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면 여기 이 엄마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을 위해 거짓말 좀 보태 열두 번은 더 이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이곳, 옥천면 옥천리. 귀촌 바람이 불기 한참 전인 15년 전 양수리에 왔다고 하니 양평사람이 된지 꽤 오래다. 만화가 장차현실씨 이야기다. 이사 온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인터넷이 맛 생겨나던 1990년대 말, 딸 은혜에게 좋다는 약을 호주, 캐나다에서 주문해서 먹였어요. 약 복용법이 몹시 까다로워 제대로 약을 먹이려면 아이 옆에 하루 종일 붙어살아야 했죠. 6개월을 먹이다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다 싶어 포기했어요. 약이 아닌 환경과 먹을거리로 고쳐보자 생각하고 서울을 떠났죠. 처음엔 바람 쐬러 다니던 덕소에 갔다가 이후 양수리, 국수리, 아신역 뒤…. 여러 곳에서 살았죠.”
 
20대 젊은 엄마 시절의 그녀는 열심히 노력하면 딸의 장애가 ‘극복’될 거라 믿었다. 여러 학교를 전전하고 딸에게 필요한 치료를 시키느라 돈도 많이 깨졌다고 한다. 한창 때는 생활비 140만원 중 은혜 교육비가 110만원이었다고 하니 그 정성이 어땠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일반학교를 다니며 고군분투하다가 은혜가 4학년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 통합교육을 하는 대안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간의 열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자신이 정한 기준점에 도달하기 위해 딸도, 자신도 힘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더불어 장애를 인정하고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처음 양평에 이사를 왔을 때는 몸만 양평주민일 뿐 집밖을 나가볼 새도 없이 일했다.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주변에선 싱글맘에 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는 웬 젊은 여자가 시골에 왔으니 얼마나 말들이 많았을까. 다행이라면 정작 본인은 옆 돌아볼 새도 없이 만화를 그리느라 그런 소문을 들을 짬이 없었다는 것. 훗날 자신에 대해 ‘장애아를 키우던 불쌍한 여자를 한 젊은 총각이 구제해줬다’는 말이 돌았다는 이야길 전해 듣고 한참을 웃었단다. 
 
지역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그녀지만 책 좀 읽고 여성과 장애문제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오랜 시간 여성과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에 저항하며 그 삶을 밝고 솔직하게 그려낸 중견 만화가다. 작가 말마따나 요즘 웹툰 작가들처럼 창의성은 없으나 리얼리티 하나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니 기자가 보기엔 만화가보다 생활형 투사가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첫눈에 반해 뜨겁게 사랑하고 결혼한 7세 연하 남편과의 갈등과 일상들 또한 작가는 숨김없이 그렸다. 
 
지금은 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힘이 넘치던 40대 초반까지도 마음이 부글거려 참을 수 없는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제가 두 번이나 삭발했잖아요. 둘째 은백이가 아기 때 새벽에 일을 하는데 애가 열두 번도 더 깨는 거예요. 한번 잠들면 일어나질 못하는 남편은 나 몰라라 하고…. 너무 화가 나서 마당을 뱅뱅 돌았어요. 우리집 개가 저 여자 왜 저러나 했을 거예요.”
 
세상모르고 자던 남편은 영화 ‘두물머리’, ‘명령불복종 교사’를 찍은 서동일 다큐 감독으로 양평에선 장차현실보다 좀 더 유명하다. 이렇듯 작가가 정직하게 드러낸 싱글맘, 장애, 여성, 새로운 가족들의 삶의 고통과 무게 앞에서 수많은 독자들은 위로 받고 삶의 겸허함을 배웠다. 말이 아닌 삶으로 저항하고 헤쳐 나가는 이가 가진 힘이다. 지금은 많이 진정되었다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스스로 네 감정이 뭐냐?고 끊임없이 물었어요. 묻고 또 묻고. 그랬더니 네 탓이라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이 제 탓이더라고요. 그걸 인정하는 것도 화가 나긴 했지만요. 그런데 좀 결정적인 이유는 몸이 아픈 거였죠.”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은백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그걸 핑계 삼아 매월 27개의 마감을 쳐내던 생활을 청산했다. 그리고 은백이의 학교 앞에 ‘소꿉’이라는 작고 소박한 미술학원을 차렸다. 한껏 긴장했던 삶이 조금 느슨해진 탓일까. 두해 정도 몸이 몹시 아팠다고 한다. 
 
“몸이 정신을 후려치자 내가 마음으로 붙잡고 있던 수많은 것들이 허상임을 깨달았죠. 그 모든 것이 몸이 받쳐줘서 가능했구나. 그런데 어느 순간 몸이 그만해! 하고 나를 끌어내리자 삶의 거품이 걷어지더라고요.”
지난 10여년 매월 한번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잡지에 삶을 토해냈다. 비장애 부모독자들 앞이라 너무 처절한 이야기는 차마 할 수 없는 때도 많았다. 그 그림들을 모아 최근 <또리네 집>(보리)을 출간했다. 삭히고 삭혀 그렸지만 다시 봐도 그림 너머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던 것일까. 지역 엄마들이 열어준 출판기념회에서 펑펑 울 수 있었던 건 가장 가까이서 힘이 되어준 이들 앞이라 마음이 무장해제된 탓 아닐까 싶다.
 
▲ 장차현실씨의 화실 ‘소꿉’은 지역 학생들과 엄마들의 미술학원이자 작업실이다. 최근 펴낸 책 <또리네집>과 벽에 걸린 초등학생들의 그림.
양평에 살면서 뭐가 제일 행복할까. 제일이란 말은 좀 부담스러우니까 그냥 행복한 건?
“음…. 자연환경이요. 제일 예쁜 산수화가 강이 흐르고 산이 있는 거잖아요. 양평이 그래요. 처음부터 자연에서 너무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물론 좋을 때는 더 좋았고요.”
 
아쉬운 점은 무엇일까. 
“장애인들 자립자활센터나 일할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과제, 숙제가 있다면.
“은혜 건강과 준비중인 은혜의 개인전이요”
 
장차현실의 사인(서명)에는 은혜 얼굴이 있다. 지금은 27살이 된 아가씨 은혜로 인해 힘들었고 은혜 덕분에 자랐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모녀지간이다. 인터뷰를 하기 전 <또리네 집>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컥했다. 인터뷰 중에는 책의 마지막 장면(궁금하면 보시길)을 이야기하다 주책맞게 목이 메고 말았다. 나도 엄마니까. 정서가 메말랐다 싶으신 분들은 이 가을 장차현실의 책을 한번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읽은 후 당신은 분명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진짜! 
이경희 객원기자
 
(장차현실)
홍익대 동양화과 졸업. 1997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 ‘색녀열전’을 연재하며 만화 활동을 시작. 이후 경향신문, 한겨레, 세계일보 등의 일간지와 각종 잡지들에 꾸준히 만화를 연재해 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책으로는 <사이시옷>(공저), <이어달리기: 여성과 일에 대한 열 가지 이야기>(공저), <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 등이 있고, 그린 책으로는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 <안녕, 나의 자궁>, <울지 말고 당당하게>들이 있다. 최근 <또리네 집>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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