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듣보잡식당 박솔아 작가

 

▲ 정배리에서 매달 열고 있는 ‘듣보잡식당’. 식당이 곧 박솔아씨의 작품이다.

요즘 ‘다른 길’을 선택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이들은 뭔가 새로운 DNA로 무장하고 있는데, 기존의 가치를 거추장스럽게 여기며 과감히 벗어던지는 게 특징이다. 운동권인가 싶겠지만 그렇게 심각하거나 어렵지 않다. 단순명쾌하고 재미있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기성의 눈에는 한없이 불안하고 걱정스럽게 보이는 존재들, 하지만 이들은 벌써 우리 가까이 파고들어 조금씩 세상의 가치를 바꾸고 있다. 미래산업이라며 도시를 떠나 귀농을 택하고, 대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배낭여행을 떠나고, 봉사활동으로 취업을 대신하고, 재능기부를 업으로 삼고, 소유가 아닌 공유를 선호하는 이들 등등. 

서종면 정배리 출신으로 커뮤니티아트를 하는 박솔아(30)씨도 이 중 한 명이다. 커뮤니티아트란 전통적인 미술의 작업·전시공간인 작업실과 갤러리를 벗어나 공동체를 무대로 하는 예술을 뜻한다. 솔아씨의 무대는 마을공동체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하는 친구들과 함께 ‘예술 장돌뱅이’ 집단으로 뭉쳐 전국을 무대로 논다. 어느 마을에서는 마을벽화를 그리고, 어떤 곳에선 축제장에 좌판을 깐다. 또 어떤 곳에선 전시회를 열고, 마을 주민들과 역사책을 만든 곳도 있다.
 
솔아씨는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공미선씨와 함께 정배리에서 지난 5월부터 매달 한 번, 3일씩 ‘듣보잡식당’을 열고 있다.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며 즐기는 식당이다. 음식값은 돈이 아닌 물건이나 무형의 가치로 교환한다. 피자헛과 던킨도너츠,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에 대한 풍자를 담아낸다. 솔아씨와 미선씨는 듣보잡식당을 운영하는 자체를 예술행위로 생각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뭐지? 봉사활동 하나”라는 시선이다. ‘다른 길’과 ‘기존’의 가치가 정면충돌한다. 솔아씨에게 물었다.
 
▲ 박솔아씨는 골방의 작업실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온 작가다. 탈출은 결국 생존을 위해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과 생활의 차이가 있나? 온 마을 주민이 다 예술하고 있다. 장 담기 예술, 상여소리 예술, 술 빚는 예술, 짚풀공예….”
 
-듣보잡식당은 어떤 예술인가.
“사람과의 관계를 재료로 삼는 예술이다. 박씨가문의 끈적한 혈연관계, 아이들들 위주로 모인 엄마들, 잘 섞이지 않는 이주민들, 소외받는 독거노인 등등 식당 이용자들을 관찰하면서 이 관계를 조금씩 헤쳐 놓는 작업을 한다.”
 
-돈 버는 예술이 아닌데 생활은?
“힘들다. 월세를 못 낼 때도 있다. 예전엔 이게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열심히 작업하면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것을 안다.”
 
-잃는 것이 너무 많지 않나.
“맞다. 동료들이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다. 강아지 키우고 싶지만 그렇게 못한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과 도전을 포기한다. 우린 그건 한다.”
 
-부모님은 이해하시나.
“지금도 엄마는 내가 일하는 것을 보면 눈을 질끈 감고 가신다. 조금씩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조금씩 포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을주민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이상한 것도 예술이라는 것을 느꼈으면 한다. 잘 갖춰진 것만 예술이 아니라 허접하고 만만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느꼈으면 한다. 우린 다 예술하는 사람이다.”
 
솔아씨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미술가다. 고교 3년 동안 미술학원에서 죽자고 입시미술에 매달렸고, 대학 4년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만 졸업 후 미술 사교육시장에 던져졌다. 그림이 아니라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 방황하면서 커뮤니티아트를 접했다.
 
“80%의 미대 졸업생이 투잡을 한다. 얼마 전에는 굶어죽은 예술가 뉴스도 나왔지 않나. 골방에 틀어박혀 작업한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세상이 아니다. 나는 그걸 깨닫고 세상으로 나왔을 뿐이다.” 5년 후, 10년 후 솔아씨의 작품에는 이 관계의 경험들이 녹아들 것이다. 그때를, 솔아씨는 예술 장돌뱅이로 돌며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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