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할아텍 15인의 작가

3·1운동 거점인 ‘문호장터’
재야 지식인 화서 이항로
민본주의의 물결 벽계구곡
해방정국 지도자 몽양까지
시대 소환하는 예술에너지

 

▲ 근대인의 초상(임동승 作), oil on canvas, 72.7×52㎝, 2015

양평의 역사를 품은 17가지 이야기. ‘할아텍’ 작가 15명이 지난 13일부터 서종면 문호리 북한강 갤러리에서 ‘갤러리 소머리국밥(소밥) 기획전-양평의 재발견’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달 5일 갤러리 소밥에서 개최한 ‘두 강이 만나다’전에 이은 두 번째 기획전이다. 이들 작가가 이야기하는 예술과 양평의 역사적 장소·인물을 따라가 보자.

이름부터 재미있는 ‘갤러리 소밥’과, 다소 생경한 이름의 ‘할아텍’. 먼저 소밥을 이해하려면 할아텍(할 예술과 기술·Hal Art&Technology)을 소개해야 한다. 갤러리 소밥을 만든 사람들이 할아텍 예술인들이기 때문이다. ‘할’은 불교 선원에서 선승이 배우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위엄 있게 꾸짖는 소리이거나, 가끔씩 떠오르는 영적인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 1947(박명애 作), archival pigment print, 50×50㎝, 2015

할아텍은 서용선, 류장복, 이경희 등 조형예술가들의 창조적 사고와 과학기술 환경을 접목해 생활공간에 적용시키고자 2001년 2월6일 결성한 비법인 문화 활동 단체다. 작가들은 강원도 태백 탄광촌 철암지역에서 ‘철암 그리기’라는 이름으로 저마다 자신의 장르로 철암의 석탄산업 문화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갤러리 소밥은 철암지역의 환경개선을 위해 활동해온 할아텍 예술인들이 6년 전 양서면 용담리의 소머리국밥집을 갤러리로 꾸민 곳이다. 작가들의 기금과 후원만으로 임대료를 내며 운영하고 있는데, 건물 주인이 이곳을 팔기로 해 내년 이후에는 갤러리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 벽계구곡(정일영 作), acrylic on canvas, 80×80㎝, 2014

작가들은 이번 ‘양평의 재발견’ 전시회를 위해 양평의 역사적 장소를 답사하고 토론을 해왔다. 예술과 역사적 장소의 새로운 관계와 형식을 모색하자는 게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다. 박서정 갤러리 소밥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가 목표하는 것은 지내던 역사와 시간을 불러내어 살아 숨쉬는 장소에서 예술의 에너지와 가능성을 다시 확인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박미화 할아텍 공동대표는 “예술가와 대중과의 접점은 역사성에 기반을 둔 대화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개념으로 출발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3·1운동의 거점인 서종면 문호장터, 위정척사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제자로 배출한 화서 이항로 선생의 생가, 수입리에 위치한 벽계구곡, 민족의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 등이 작가들이 주로 답사한 장소다.

 

▲ 재현과 표현과 사물(ex)여운형의 외투(이종미 作), oil on canvas·먼지·스프레이·안료, 100×100×4.5㎝

문호리는 양평에서 3·1만세운동이 처음 벌어진 곳이다. 경기도에서도 개성 다음으로 만세운동이 제일 먼저 시작됐다. 1919년 3월10일 주민 수백 명이 문호장터에 모여 시위에 참여했다. 만세운동은 이후 양평 전역으로 확대돼 수만 명에 이르는 군민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도시와 사회, 신화와 인간원형을 추적해온 화가 서용선이 서종면의 3·1운동을 그렸다.

화서 이항로(1792∼1868) 선생은 조선조 말기의 민족사상인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확립한 재야 선비다. 주리철학에 바탕을 둔 그의 사상은 민족운동의 실천적 지도이념으로 승화돼 유인석, 최익현, 양헌수와 같은 항일투사를 배출했다. 화서학회(회장 장삼현) 등의 자료에 따르면 독립운동을 한 전국의 화서 문하 연원은 700명이 넘을 정도로 그의 사상은 조선조 말과 구한말, 근대를 넘어 현대에 이르고 있다. 

 

▲ 곡 몽양(박미화 作), 광목천에 과슈, 2015

벽계구곡의 초입에 이항로 선생의 생가가 있다. 선생은 벽계천 주변의 집과 집 주변의 높지 않은 산봉우리들이 포옥 감싸고 있는 승경지 9곳을 벽계구곡이라 불렀다. 자연을 주제로 꾸준히 작업하고 있는 서양화가 정일영은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 갈색 등 너울너울 춤추는 듯한 붓 터치로 벽계구곡의 풍경을 표현했다.

작가들은 이번 전시회에서 몽양 여운형(1886∼1947) 선생과 관련한 작품을 가장 많이 출품했다. 양평군은 2011년 11월27일 양서면 신원리에 몽양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건립해 몽양의 생애와 조국을 되찾기 위한 발자취를 기리고, 후손들이 해방정국의 역사적 진실을 올바로 알 수 있도록 했다. 

 

▲ ‘양평의 재발견’ 포스터 사진. 사진작가 신지원씨가 양서면 용담리 갤러리 소밥에서 촬영한 산과 하늘 풍경.

박미화는 광목천에 중후한 느낌이 나는 과슈(Gouache) 물감으로 ‘곡(哭) 몽양(夢陽)’이라는 작품을 냈고, 임동승은 ‘근대인의 초상’에서 상반신을 벗은 채 팔짱을 끼고 정면을 응시하는 몽양의 얼굴을 그렸다. 물결이 이는 듯한 화면은 시간이 잠시 정지된 느낌을 받는다.

박명애의 작품 ‘1947’은 1947년 7월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되어 박제된 몽양의 혈의를 통해 한 시대를 통과한 신념과 환희, 저항과 모멸을 이야기하고 있다. 암살 당시 몽양이 입고 있던 피 묻은 옷 ‘여운형 혈의’는 지난해 10월 문화재로 등록됐다. 앞서 ‘지평양조장’에 이어 양평에서는 두 번째 등록문화재다. 

(할아텍 15인 작가와 전시작품)

문혜정 ‘새벽을 기다리며’, 박미화 ‘곡 몽양’, 박명애 ‘1947’, 박세연 ‘뼈 인간’, 배석빈 ‘원주율’, 서용선 ‘서종면 3·1운동’, 이경은 ‘집으로 가는 길’, 이경희 ‘몽양의 생가에서 몽양을 생각하다’, 이선현 ‘풀들의 손’, 이자영 ‘Tommorrow series no.1’, 이종미 ‘재현과 표현과 사물(ex)여운형의 외투’, 임동승 ‘근대인의 초상’, 정일영 ‘벽계구곡’, 정채희 ‘몽양’, 정하응 설치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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