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중 손모내기 현장

 

▲ 모내기에 앞서 풍물패를 앞세우고 기세 좋게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지평중 학생들.

# 본격적인 모내기철 5월. 예전에야 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고사리 손까지 빌릴 정도로 바쁜 농번기지만 기계로 모를 내는 요즘은 농사짓는 집 아이들도 모내기할 기회가 거의 없다. 지난 20일, 논바닥에 발 한번 디뎌보지 않은 중학생들이 손으로 모를 내겠다고 나섰다. 발랄한 중학생들의 모내기 현장을 소개한다.  

마을 어르신들과 600평 논에 모심기 대작전
쌀농사 현장체험에 전교생이 온종일 들썩여
 
오전 9시30분부터 풍물패를 앞세우고 기세 좋게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온 지평중 전교생이 학교 뒤편 논으로 하나둘 들어선다. 수업시간에 만든 만장을 논두렁에 박아놓고 모낼 차비를 한다. 오전에 반별로 교육을 받고 못줄잡기, 모판 넘겨주기, 모심기로 역할까지 나눴지만 아직 실감이 안 나는 듯 양말까지 신은 학생들이 적지 않다.
 
▲ 만장을 꽂아놓은 논둑을 지나 학년별로 모를 심으러 걸어오는 학생들.
학년별로 구획을 나눠 600평 논에 60판의 모판을 심어야 한다. 쌀을 16가마 정도 소출할 수 있는 규모다. 양말 벗고 들어오라는 1학년 선생님의 신호에 하나 둘 논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 입에서 저절로 괴성이 터진다. 아침 햇살이 채 들지 않은 차가운 논의 물컹한 느낌이 낯설어도 너무 낯설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아이, 푹푹 빠지는 느낌이 싫어 아예 뛰다시피 걷는 아이, 튀어 오르는 흙탕물에 비키라고 소리치는 아이까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와중에 스타킹을 챙겨 신고 온 채린이가 모판을 성큼성큼 나르며 논을 가로지르자 아이들 사이에서 저절로 감탄의 박수가 터진다. 선생님의 상황 정리로 겨우 모낼 채비를 해나간다. 
 
▲ 3학년 학생들이 못줄을 잡은 어르신의 ‘엎드려’ 외침에 일제히 모를 심고 있다.
3학년 역시 처음 하는 모내기지만 용현이가 못줄을 잡고 선생님 지시에 따라 벌써 모를 한줄 심었다. 담장 밑 그늘진 곳이라 서늘한 기운이 발을 타고 올라온다. 가장자리 물이 가득한 곳에 모를 심는 아이들은 물속에 심은 모가 죽을까 걱정이 앞선다. 중간 중간에 서서 아이들을 돕는 노인회 어르신이 “꾹꾹 눌러 심으면 나중에 다 된다”고 말을 해주어도 여전히 신경 쓰이는 눈치다. 못줄의 빨간 표식 아래 모를 꽂아 넣고, 허리 한번 펴고, 줄을 넘기는 일에 속도가 안 붙자 보다 못한 곡수1리 노인회 이성훈(78) 회장이 “이렇게 심으면 내일까지 심어도 못 심는다”며 못줄잡이로 나섰다. 놀이가 노동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엎드려”, “물에 꽂아”, “넘어가요” 못줄잡이의 신호에 따라 모 심기가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그렇게 심으면 안 돼요.” 회장님은 선생님이 심은 모가 잘못됐다고 바로 지적을 한다. 모내기 수업에선 선생님도 생짜 초보학생이다. 모내기를 시작한 지 30여 분이 지나자 선생님이 진행 상황을 알려준다. 1학년 3줄, 2학년 10줄, 3학년 13줄. 그래도 형님들 성적이 낫다. 
 
잠시 후 노동이 익숙지 않은 학생들을 배려해 새참시간이 주어졌다. 아이들은 건물 앞에 삼삼오오 모여 빵과 우유를 먹었다. 이날 학생들을 도와 모내기에 나선 대한노인회 양평지회 지평분회원 11명도 그늘에 모여 휴식을 취했다. 지평분회 박용필(80) 회장은 이 학교 1회 졸업생이자, 2학년 박채욱 학생의 조부다. 그는 “논농사를 짓지만 기계로 모내기를 해 전통방식으로 모를 심는 일이 좀체로 없다. 손으로 모를 심어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며 “이런 게 노인회의 할일 아니겠냐”며 흐뭇해했다. 
 
▲ 밀짚모자에 선글라스까지 챙겨온 3학년 여학생들의 발랄한 새참시간.
3학년 여학생 몇몇은 막간을 이용해 게임에 열심이다. 선크림에 선글라스, 밀짚모자까지 눌러쓰고 첫 모내기를 했다. 엉뚱 발랄 모내기 패션이다. 모를 내본 경험이 있는 은주와 정민이는 스타킹에 몸빼바지 차림이다. 은주가 “학교에서 모내기를 한다고 해서 신기했다”고 하자 정민이는 “우리가 먹는 쌀이니까 그만큼 아끼라는 뜻에서 해보는 것 아니겠냐”고 짐작했다. 
 
아이들이 모내기를 하는 동안 기술·가정실습실에선 오후 새참준비가 시작됐다. 학부모 20여 명이 나와 김치전, 야채전, 음료수를 준비한다. 학부모회의 때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이진정 씨는 “요즘 아이들은 별 생각 없이 밥을 그냥 버리기도 한다”며 “농부의 노고를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날 모내기가 끝나면 4-H 동아리 회원들이 3~4일 후에 논에 우렁이를 넣어준다. 뿌리가 안착하는 다음 달부터는 잡초제거와 병충해 방제 등의 생육상태 점검뿐 아니라 음악 연주, 세밀화 그리기, 시 쓰기 등 식물과 교감하는 교육활동이 계획돼 있다. 지평중 권오경 교감은 “일회성 경험이 아니라 추수와 수확물 나눔까지 계획하고 있다”며 “식생활과 관련된 친환경 논농사를 삶과 연계한 교육과정으로 재구성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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