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는 아줌마들의 '월요책방'

고전은 보통 책장 맨 위 칸에 꽂혀 장식품 역할을 한다. 누군가 읽어봤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는데 사실 끝까지 독파한 경우는 드물다. 그러면서도 가끔 자식들에게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 고전을 다시 펴든 아줌마들이 있다. 이 보기 드문 현상을 취재했다. 

 
▲ 책과 커피와 케이크가 뒤섞인 식탁에서 ‘월요책방’ 회원들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수다로는 얻지 못하는 공감과 이해가 따라온다.
고전의 매력에 푹… “못다 한 숙제하는 기분”
소모적인 수다 지양한 학부모 모임 
고전으로 현실 돌아보는 지혜 배워
 
책을 꾸준히 읽는 게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남편 뒷바라지, 아이들 치다꺼리 하다보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조차 쉽지 않은 게 주부의 삶이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독서모임도 성에 차지 않아 달마다 따로 만나 고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열혈 독서광들이 있다. 조현초 엄마들로 이뤄진 독서모임 ‘월요책방.’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용문면 김은미(45)씨 집에서 열린 ‘월요책방’ 3월 모임현장을 찾았다. 조효미(43), 김성실(45)씨는 참석치 못하고 임명희(38), 이지연(41), 김은미(45), 이정희(47), 박유신(48)씨 다섯 명이 모였다. 케잌, 튀김, 과일 등의 다과와 진한 커피가 차려진 식탁에서 고전 책으로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이날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다. 3년차 모임답게 준비도, 진행도 짜임새 있다. 작가소개, 줄거리, 인물분석, 시대배경 등 회원들이 하나씩 주제를 맡아 발제를 한다. 이번 작가 소개는 이정희씨가 맡았다. 제인 오스틴의 가족관계, 일생이 A4용지 한가득이다. 
 
발제를 들은 김은미씨가 “영화로 보고 이해되지 않았던 게 책을 보면서 이해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임명희씨는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짜증났다”며 오만함과 자존심을 내세우는 그 시대 중상류층의 말투를 꼬집었다. 
 
이어서 박유신씨가 줄거리를, 임명희씨가 등장인물을 소개했다. 임명희씨는 베넷 부부와 다섯 자매는 물론 주변인물까지 관계도로 그려와 자세히 설명했다. 시대배경 발제는 김은미씨가 맡았다. 18~19C 영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젠트리계급, 결혼제도 등을 설명했다. 
 
박유신씨는 ‘결혼은 언제나 그의 목표, 가난 예방책’이라는 책속 글귀를 낭독하며 그 시대 결혼의 의미와 상류층 생활의 무료함을 지적했다. 이지연씨는 “20대엔 문어체가 익숙지 않아 읽기 힘들고 지루했는데 마흔 살이 넘어 다시 보니 작가가 어린 나이임에도 인간관계나 감정을 어찌나 섬세하게 파악했는지 작가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인상 깊게 읽은 책 구절을 낭독하며, 그 속에서 느낀 생각을 전했다. 
 
책 이야기는 자연스레 현실문제로 넘어갔다. 박유신씨는 “말하기 곤란한 건 편지로 전하면 어떨까 생각한다”며 연예시절부터 남편과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은 일, 학부모 간에 말로 인해 생겼던 오해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났다. 
 
중3 딸을 둔 이정희(47)씨는 “기성세대는 편지 쓰던 습관이 있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낼 때도 단어 선택에 신중한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태도를 이해를 못 한다”며 “말만 가벼워진 게 아니라 글도 가벼워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책의 주제인 ‘오만’과 ‘편견’으로 인해 겪었던 경험담들도 쏟아졌다.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섣불리 편견을 가졌던 일에 대한 반성, 주변 평판만 듣고 경솔하게 사람을 대했던 미안함, 스스로를 틀에 가두는 자신에 대한 편견까지 지나간 일들과 속마음이 오고갔다. 수다로 풀어냈으면 가벼이 여겼을 말들이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공감과 서로에 대한 이해로 자리 잡는다. 
 
고전읽기 독서모임 ‘월요책방’
 
‘월요책방’은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에 만나 고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 독서모임이다. 지난 2009년 시작된 조현초 학부모 독서모임이 모태가 됐다. 조현초 독서모임은 1주일에 한번 수요일에 만나는데 10여명 정도가 모인다. 매년 학부모를 대상으로 신입회원을 모집해, 주제를 정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월요책방’은 독서모임을 계속해온 회원들 중에 고전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지난해 따로 꾸린 모임이다. 팔당생명살림협동조합 씨앗모임으로 1년에 한 번 강의를 지원받고, 책 기증 활동 등도 펼친다. 
 
▲ 조현초 학부모들로 구성된 월요책방 회원들. 왼쪽 뒤부터 김은미, 이지연, 임명희, 박유신, 이정희씨.
“이 맛에 모임해요” 
 
임명희(38)   “걸리버여행기 완역본을 보면서 고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제목만 알던 고전, 어린이책이라고 여겼던 책안에 심오한 내용과 철학이 있었다. 100년이 지나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겠다. 고전의 매력을 이제야 알게 된 게 안타까울 정도다.” 
 
이지연(41)   “새내기 회원이다. 고전을 좋아하지 않아 모임에 들어오는 걸 걱정했는데 선입견을 버리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니 생각보다 즐겁고 편하다. 무엇보다 책을 주제로 공감대를 형성해서 좋다.” 
김은미(45)   “학창시절 읽었던 책들이지만 기억도 안 나고 책꽂이에만 늘 꽂혀있었다. 시간에 쫓겨 밤늦게까지 책을 읽을 때도 있지만 ‘즐거운 숙제’하는 시간이다.”
이정희(47)   “고전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혼자 읽자니 어려웠다. 처음엔 억지스럽게 시작했지만 할수록 이런 게 고전이구나 느낀다. 책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박유신(48)   “학부모들끼리 만나 먹고 놀고 쇼핑 다니는 모임은 대화도 식상하고 서로 말조심도 해야 한다.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생활 이야기도 함께 나누니 오해도 없고 좋다. 책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가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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