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소 초대석〉조각가 노준

부담스럽지도 어렵지도 않은 그 만의 ‘캐릭터 조각’
대중과 즐거운 소통 경쾌한 만남… 지친 삶 보듬어
‘가볍고 진지하지 못한’ 조각가가 보내는 쉼과 희망

 

▲ 노준은 동물 캐릭터에 자신을 의인화하듯 작업한다. 스스로 행복한 작업이기에 사람들이 잊고 있던 행복과 희망을 다시 기억해내기를 바란다.

달팽이들이 “깜찍이 깜찍이 깜찍이∼”하며 재잘거린다. 어린이음료 ‘깜찍이소다’ CF 캐릭터를 제작한 29세의 광고감독은 어느새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고 있다. 1997년 ‘깜찍이 쏭’으로 당시 광고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노준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캐릭터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다. 재미있고 앙증맞은 그의 캐릭터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가벼워’졌다.

노준은 조소과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작업한 깜찍이소다 광고가 인기를 끌면서 방송국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클레이 애니메이션 만들기 코너를 맡기도 했다. 1999년 석사과정을 졸업한 이듬해 캐릭터 디자인 회사를 차렸지만 4년 만에 후배에게 모든 운영권을 넘겨줬다. 재미는 있는데 별로 행복하지 않았던 게 그 이유다. 그러던 중 2004년 서울대 미술대학원에 처음 박사과정이 생기자 조각 공부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길로 그는 캐릭터 조각가가 됐다.

 

▲ Odalisclo in Sumba 14-10, 76×51㎝, digital print, 2014

노준은 “남들이 다하는 작품은 하기 싫었다.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작업이 뭘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만든 캐릭터들을 보면서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를 조각으로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만의 ‘캐릭터 조각’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의 작품은 진지함과 엄숙주의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다.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 조각상들이 작업실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그는 “일부러 의도한 것”이라고 했다. ‘미술이 다가가기 힘들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만 있는 게 아니라, 가볍고 만화 같은 것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신념에서다.

 

▲ Gimpo Airport Lotte Skycity-Seoul, Height 2m, car paint on stainless steel, 2011

노준은 그만의 밝고 경쾌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업도구와 재료는 스스로에게 엄격할 정도로 최고의 제품을 고집한다. 자동차 도색용으로 사용하는 독일산 페인트는 1리터에 80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 캐릭터 조각에 페인트를 분사해주는 에어건 역시 정교함이 남다르다는 독일제품을 사용한다. 나무 소재 조각은 인도네시아 발리 현지로 가서 두 달 반가량 머무르며 작업한다. 추위를 유난히 타는 체질인 탓도 있지만 가장 값비싼 목재 중 하나인 티크(teak)목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망치로 두들기며 작업하는 스테인리스스틸 조각은 중국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든다.

 

▲ Gold Odalisclo, 41×32×31㎝, car paint on plastic, 2011

클로, 하야미, 키키, 오디….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는 노준의 동물 캐릭터는 플라스틱, 스테인리스스틸, 나무, 브론즈 등 다양한 소재의 조각상으로 인격화돼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는 “캐릭터 조각은 사람들과 쉽게 공감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놀이이면서 수단이다. 보는 이들이 보고 웃고 좋아하니까 좋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힘과 위안을 얻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가가 걸어온 길)

 

▲ 노준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회복을 염원해 의인화한 동물을 캐릭터 조각으로 만든다.

노준은 1969년 서울에서 출생해 서울대 미대와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6년 서울대 미술대학원 박사과정(미술학 조소 전공)을 수료했다. 2007년부터 서울 방배동에서 양평군으로 이사와 개군면 자연리에서 작업하고 있다. 2004년 ‘대지의 숨’(A Respiration of the Earth, 서울 스페이스 셀)을 시작으로 지난해 ‘Animal Doll Figures with Dream+Hope’(일본 쿄토 스튜디오 엠비언트)까지 15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백조의 물밑작업’ 나얼&노준 2인전(2007·이천 샘표스페이스), ‘노준×서승모 1st collabo. 구멍(孔)’(2007·서울 갤러리 팩토리), ‘금중기, 노준’ 2인전(2008·서울 갤러리 마노) 등 가수 나얼과 조각가 금중기, 건축가 서승모 등과 7차례의 2인 전시회를 가졌다.

‘KIAF’(2014·서울 코엑스·이화익갤러리), ‘국제조각페스타’(2014·서울 예술의 전당), ‘Animal Wonderland’(2013·장흥 아트파크), ‘평화누리에서 만나다’(2013·파주 임진각), ‘spoon HK12’(2012·홍콩 아트페어), ‘상해 아트페어’(2011·중국 상해 갤러리 반디 트라소), ‘Korea Great Pop Art 20’전(2010·서울 갤러리 H), ‘서울미술대전 한국 현대조각’(2010·서울시립미술관), ‘아트 두바이’(2010·두바이·이화익갤러리), ‘Korean Art Show’(2010·미국 라베뉴 뉴욕·이화익갤러리), ‘2001-2009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작’전(2010·서울 송은갤러리), ‘고베 아트페어’(2009·일본 고베 갤러리 카제), ‘홍콩 아트페어’(2009·홍콩 카이스 갤러리), ‘Emotional Factory’전(2008·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 ‘미술이 만나 바다’전(2008·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화랑미술제’(2007·서울 예술의 전당), ‘연결 속으로’전(2006·일본 도쿄 TV Asahi UMU space), ‘조형의 탐방, 유물의 재해석’전(2006·서울 모란갤러리), ‘서울조각회’전(2005·서울 인사갤러리), ‘조각가가 바라본 평면’(2004·서울 예술의 전당) 등 100회가 넘는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제4회 포스코스틸아트어워드 본선작가상(2009·포스코), 제19회 김세중 청년 조각상(2008·김세중 기념사업회), 제7회 모란 조각대상전 특선(2007·모란미술관), 시각예술 창작활성화 지원사업 공모작가 선정(2007·서울문화재단), 제6회 송은미술대상전 대상(2006·송은문화재단) 등을 수상했다.

 

 

캐릭터조각이 귀엽기만 하다고?
작품 속 숨겨진 진짜 메시지는

차에 치여 숨진 고라니…
사람 피하는 길고양이…
동물·인간 관계회복 바라

 

▲ Tattoo Whole Body-Taehee, 40×27×62㎝, car paint on plastic, 2013

노준은 자신이 작품을 만들면서 정말 행복하다고 한 이유가 있다. 관객도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자신도 행복한 것은 동물을 인격화한 까닭이다. 그의 캐릭터 조각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고양이, 강아지, 펭귄, 토끼, 원숭이 등 모두 동물이지만 사람처럼 서있다. 의인화한 동물이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회복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겉으로 보면 그냥 가볍고 귀여운 모습이지만 사실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회복이라는 주제가 숨어있다”고 말했다. 

 

▲ Taehee, The Source, 44×27×46㎝, car paint on plastic, 2013

전시회 일정으로 일본을 자주 드나드는 노준은 한국과 일본의 길고양이가 서로 다름을 알았다. 도쿄 우에노공원 벤치에 앉아 길고양이를 보고 손짓했더니 자신에게 다가오더라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길고양이 대부분은 사람을 무서워하며 도망가기 바쁘다. “우리는 그동안 살면서 왜 길고양이를 적으로 만들었을까 가슴이 아팠다. 동물들도 우리의 친구이고 동반자이지 적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Ping Likes Clo Jr., 24×33×48㎝, car paint on plastic, 2012
▲ Sweet Doma sit on a red sofa, 50×25×47㎝, car paint on plastic, 2014

양평으로 이사 온 후 노준이 자주 목격하는 장면은 도로변에 숨져있는 동물들이다. 고라니가 매년 같은 장소에서 로드킬로 희생되자 그는 양평군에 전화를 했다.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을 설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해당 도로가 국도여서 의정부국토관리사무소 관할임을 안 그는 그곳에 같은 요청을 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표지판은 설치되지 않고 있다.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 하나 세우지 않고 자연환경과 생태를 보호하자고 하는 건 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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