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 속살 드러낸 견고한 매력 속으로

 

 

산은 겨울에 자신의 모습을 바닥까지 진솔하게 드러낸다. 그 산에 들어가는 우리도 가식을 벗고 더욱 겸손해질 일이다. 초록이 사라지고 생명이 숨어버린 겨울 산에서 견고해지는 법을 배워보라. 그러기에 가섭봉은 더 없이 좋다. 

  겨울은 식물들에게 고난의 시기이지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나뭇가지의 섬세함이 좋아서 나는 겨울 산에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달 31일 ‘3050 아띠산악회’ 회원 17명과 양평역에서 시작해서 양평중학교 후문을 거쳐 세수골~백운봉~장군봉~가섭봉(용문산 정상)~마당바위~용문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등반했다. 
 
 
지난해 12월 27일에 경의선(용산~문산) 전 구간이 완전 개통되어 경기도 파주에서 양평까지 전철을 타고 환승 없이 한 번에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통일 한반도시대에 유라시아 물류 네트워크에 포함되는 상징성이 큰 노선인 경의선이 우리나라 철도의 또 다른 축인 중앙선과 연결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날 산행을 함께 하며 사진을 남겨주신 분이 바로 파주에서 이 전철을 이용해 양평까지 한 번에 오신 분이다.
 
 
양평역에서 산행 들머리인 세수골까지 가는 길은 양평중 후문까지는 시내를 지나는 아스팔트길이고 그 후부터는 둘이서 나란히 얘기하며 걸을 수 있는 산길로 접어든다. 세수골을 지나 백년약수까지는 양평읍내 사람들의 아침 산책코스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길이기도 하다. 계속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사방으로 양평 읍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백운봉에 이른다. 여기서 능선길에 올라 함왕봉, 장군봉을 거쳐 해발 1157m인 용문산 정상, 가섭봉에 이르는 길은 구간 구간 암릉들이 있어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다. 
 
가섭봉은 한국전쟁 이후 정상에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일대의 등산로가 폐쇄되면서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지난 2007년 정상 지역 일부가 개방됨으로써 ‘가섭봉’을 회복하게 되었다. 석가모니 10대 제자 중 첫째인 마하가섭의 이름이 용문산 최고봉에 붙은 건 바로 이 산 아래서 태어나고 수행하다 적멸한 태고선사 보우와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자주 찾는 삼각산(북한산) 꼭대기 백운대에서 날씨가 맑은 날에 정동쪽으로 가장 멀리 보이는 산이 바로 용문산이다. 가섭봉에서 장군봉, 함왕봉,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산줄기가 이맘때쯤이면 속살을 훤히 드러낸 채 본연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니 산행의 즐거움이 더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눈이라도 흩날리는 날에는 하산 시간의 압박이 있더라도 좀 더 오래 산에 머물고 싶은 맘이 들 수밖에 없다. 이맘때 내리는 눈은 산 속 식물들에게 아주 필요한 존재다. 모진 바람을 막아주기도 하고 봄이 되면 겨우내 쌓여 있던 눈들이 조금씩 녹으면서 식물들에게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올 겨울에는 날이 많이 가물어서 걱정이다. 
 
 
산행에는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인데, 특히 추운 날씨로 인해 몸이 많이 움츠려있는 요즘 같은 때에는 갑작스러운 운동으로 근육에 손상이 오기 쉽다. 이날 산행에서도 무릎 통증과 컨디션 난조로 중간에 하산을 결정한 분이 네 분이나 있었다. 무리한 등반보다는 본인의 신체에 오는 이상 징후를 잘 관찰해서 욕심내지 않고 뒤로 한 발 물러서는 현명함이 겨울 산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먼저 하산하게 된 일행을 위해 백년약수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하고 백운봉에 오르다보니 산행이 조금씩 지체되어 마당바위를 지나 용문사 은행나무까지 하산하는 길에는 오누이 함박웃음 같은 달빛을 내내 마주할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한 겨울산행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어느새 분주히 움직였던 결심들 속에서 1월이 가고 2월이다. 혹 지난 시간들이 너무 힘겨웠다고 느껴질 때면 겨울 산에 올라 겨울나무들의 나이테를 한 번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겨울에도 나무는 자라지만 더디게 자란다. 나무의 삶과 닮아 있는 우리들의 삶 역시 즐거운 시간과 어둡고 힘든 시간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들 삶도 더디지만 이 겨울 속에서 더욱 견고해지고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글=임경애   사진=3050 아띠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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