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설립 붐… 이 정도일 줄이야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협동조합 설립 문턱이 낮아졌다. 5인 이상의 조합원이 모이면 어떤 조합도 설립이 가능하다. 생산·유통·관광·교육·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조합이 설립되고 있지만 이익창출, 고용확대,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협동조합 설립 붐… 이 정도일 줄이야 
2년 새 전국에 6536개 설립
민주주의·지역공동체에 주목
 
협동조합기본법이 2012년 12월1일 시행된 지 2년이 넘었다. 이전에는 농협, 수협 등 개별법에 따라 만들어진 협동조합만 있었지만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5인 이상 조합원을 모아 출자금 납입과 설립 등기를 마치면 금융·보험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누구나 조합을 만들 수 있다. 3억 원 이상이던 출자금 제한이 없어지고, 200명 이상이던 설립 동의자가 5명으로 주는 등 설립요건이 대폭 완화되면서 협동조합 설립이 활발해졌다. 2012년1월부터 지난해까지 설립된 협동조합수는 전국적으로 6536개다. 매일 9개 가까이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셈이다. 
 
 
협동조합 설립이 붐을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협동조합기본법 제2조 제1호에는 협동조합을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사업조직’이라고 명시했다. 일반 기업이 투자자의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데 반해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우선으로 한다. 양평농촌나드리협동조합은 농촌체험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조합이다. 만약 양평농촌나드리가 일반 기업이라면 매출이 높은 체험마을에 집중적인 지원을 해 투자자의 이윤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조합의 경우는 매출과 상관없이 모든 체험마을 조합원의 권익을 추구한다. 경제적으로 약소한 처지에 있는 농민, 중·소상공인, 일반 소비자의 권익을 추구하는 것이 협동조합 설립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바탕에는 민주주의를 체험하는 공간,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매개체라는 의식이 깔려있다. 모든 조합원들은 출자금과 권리가 동일하다. 양평농촌나드리의 경우 출자금은 1인당 5만원이다. 주식회사는 주식을 많이 소유한 주주가 배당금도 많이 가져가고 그만한 권리도 갖는다. 하지만 조합은 출자 규모와 관계없이 동등한 1인1표제다.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갖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일상적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농촌체험마을 프로그램을 만들고 주민이 함께 운영하는 과정은 지역 발전을 이루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 협동조합연합회로 나뉜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사회적 기업이 모델이다. 조합원들이 출자는 했지만 수익을 공익증진이나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형태로 지역에서 나누는 착한 조합이다. 전체 사업내용의 40% 이상이 공익성을 띠어야 하며 이익금 배당도 금지돼 있다. 공익성을 띠는 만큼 비영리법인 혜택을 받는다. 사업 내용에 따라 지역사회재생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지역사업형, 취약계층 사회서비스와 일자리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취약계층배려형, 국가·지방자치단체에서 위탁한 사업을 운영하는 위탁사업형, 공익증진형, 이상의 사업을 혼합한 혼합형 등이 있다. 하지만 시·도지사에 신고하는 일반협동조합과는 달리 중앙행정기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설립이 활발하지 못하다. 지난 2년 동안 일반협동조합이 6262개 설립된 반면 사회적협동조합은 239개 설립되는데 그쳤다. 

 

2년 새 26개 설립… 아직은 걸음마 단계 
농촌체험․관광․농특산물생산이 다수 
설립만 한 채 지지부진한 곳 많아 
 
양평의 경우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현재 26개의 일반협동조합이 인가를 받아 활동하고 있다. 2013년 15개, 2014년 11개가 설립됐는데 농업이나 체험·관광과 관련된 조합이 대부분이다. 양평농촌나드리협동조합·물소리길협동조합·회현마을협동조합·양평관광펜션협동조합 등 농촌체험이나 관광관련 조합이 10개, 양평친환경로컬푸드협동조합·양평유기농블루베리협동조합·우리술우리음식협동조합 등 농특산물생산 관련 조합이 9개다. 이외에 숲해설가들의 조합인 양평군숲해설가협동조합, 건설장비·자재·인력 등 건설업 종사자들의 양평군전문건설협동조합, 경락·경혈지도자조합인 기통소통힐링협동조합 등이 있다. 
 
▲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후 양평에서 제일 먼저 설립된 양평농촌나드리협동조합이 지난해 12월13일 양평역에서 연 농촌체험마을박람회.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양평지역에서 가장 먼저 설립인가를 받은 곳은 양평농촌나드리협동조합이다. 당시 20여 개 체험마을을 지원·관리하던 (사)농촌나드리는 영리법인 설립을 고민하고 있었다. 영세업자 단결의 필요성과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협동조합 정신에 동의해 2013년1월25일 창립대회를 가졌으나 시행령이 미처 군 단위로 내려오지 않아 도지사 승인을 받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13년 3월7일 설립인가를 받았다. 현재 조합원수는 116명으로 한 마을 당 3~4명이다. 위원장만 조합원인 마을도 있을 정도로 아직 마을단위 조합원 수가 적다. 양평농촌나드리는 딸기·물놀이·수확·김장·아이스페티벌 등 1년에 5번 행사를 기획해 홍보하고, 도농교류협력사업을 체험마을과 연계해준다. 용문면 모꼬지마을의 경우 지난해 2억8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마을주민이 생산한 쌀, 채소 등 농산물을 마트 판매가로 매입해주고, 체험행사 일용직으로 마을주민들을 고용해 매출의 85%정도를 농가소득으로 귀속시켰다. 하지만 모든 체험마을이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운영이 잘 안 되는 체험마을을 살려 마을간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 2013년12월 설립된 양평친환경로컬푸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직매장.
양평친환경로컬푸드협동조합은 2013년 12월8일 설립인가를 받았다. 친환경농산물 생산자들은 지방공사나 지인들을 통한 농산물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친환경농산물의 지역 내 소비를 위해 로컬푸드직매장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 한 20명의 농가들이 1인당 150만원을 출자해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현재는 출자금을 50만원으로 인하했다. 조합원수는 50명으로, 엽채류나 농가공생산자·법인이 주다. 농가공류 매출규모가 큰 편이고, 엽채류의 경우는 매출 규모가 다양하다. 판매가를 생산자가 직접 결정해 평균을 내기는 어렵지만 보통 판매가의 85% 이상을 생산자가 가져간다. 지난해 엽채류 농가 중 최고 매출액은 1500만원이었다. 조합원들에게 협동조합은 생소한 시스템이다. 로컬푸드협동조합의 경우 교육을 통해 주식회사, 농업법인회사, 협동조합의 차이와 상생의 가치를 교육했지만 1인1표를 인식시키고 의견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2년차에 접어든 올해는 세부적인 규정과 규약을 다듬는 등 체계를 정비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설립 1~2년차를 맞는 양평의 협동조합은 이제 걸음마단계다. 설립만 한 채 활동이 지지부진한 곳도 있고, 조합원간 인식차이나 저조한 수익 문제로 고민하는 곳도 적지 않다. 양평친환경로컬푸드협동조합 한 관계자는 “협동조합은 비지니스가 아니라 운동”이라며 “조합설립 목적과 상생의 가치를 창립 전에 충분히 공유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분야로 영역 넓히는 협동조합
소비자·교육·청소년 분야 준비
 
국내에서 오리농법이 처음 시작된 홍성의 홍동풀무마을에는 마을 안에 협동조합이 12개나 있다. 마을 공화국을 꿈꾸는 곳답게 목공, 건축, 협업, 장터, 보육, 영농, 식당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마을에 있는 거의 모든 기업이 협동조합이다. 생산과 유통 분야 등 몇 곳에 한정됐던 협동조합 영역이 그야말로 전방위로 뻗어가고 있다. 
 
 
양평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달 11일 설립총회를 마치고 인가를 준비 중인 ‘두머리부엌’은 지역 유기농 농산물 순환과 마을 소통공간 운영을 목표로 설립된 협동조합이다. 80명의 조합원이 5만원씩 출자금을 내 지난해 10월 양수시장 인근에 음식점을 열었다. 처음엔 마을 소통 공간의 필요성을 느낀 10명이 모임을 시작했는데, 자금·책임 등을 나누는 운영방식의 장점에 협동조합 설립으로 전환했다. 현재 10명의 조합원이 낮·밤으로 나눠 일하고,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두머리상회’를 함께 운영한다. 
 
‘조현마을교육공동체’는 학교 정규과정이 끝난 후 진행되는 방과후수업·돌봄교실을 고민하며 오는 3월 협동조합 설립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조현초등학교는 교육과정 중심 혁신학교다. 학교 정규수업이 혁신교육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는 반면 돌봄교실은 위탁 복지관에서, 방과후수업은 강사와의 개별 계약을 통해 이뤄져 교육의 통일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정규수업 이후에 놀고 싶어도 놀 곳이 마땅치 않아 학교 방과후수업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혁신학교 2기에 접어든 근래에는 경쟁적인 학교 분위기에 지쳐 찾아오는 졸업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교육공동체협동조합을 설립해 학교정규과정 이후의 교육을 위탁받아 운영할 예정이다. 
 
▲ 방과후학교·돌봄 교육을 고민하며 마을교육공동체협동조합 설립을 준비 중인 전은주 대표와 회원들.
‘양평풀뿌리협동조합’은 소비자권익을 찾는 협동조합을 준비 중이다. 회원업체 발굴·제휴, 공동구매, 벼룩시장 등을 통해 소비자 권익 활동을 하는 조합으로, 3월 설립을 목표로 이상건 대표를 비롯한 10명의 회원이 준비를 하고 있다. 
 
청소년카페 ‘날개’는 우선 청소년전용 휴게음식점으로 시작해 협동조합으로 전환해나갈 계획이다. 최경미 대표와 준비위원 4명이 지평면 농협사거리에 가게를 임대해 카페 개업을 준비 중이다. 청소년 문화공간과 교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지평면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지만 공감대 형성이 부족해 지원과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 했다. 우선 청소년 카페를 운영하며 회원을 모집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저변 확대에 힘을 쏟아 궁극적으로는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협동조합 설립 문턱이 낮아졌다. 5인 이상의 조합원이 모이면 어떤 조합도 설립이 가능하다. 생산·유통·관광·교육·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조합이 설립되고 있지만 이익창출, 고용확대,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매점․의료․세탁… 이런 협동조합도 가능
 
외국의 경우 협동조합 설립은 경제적 영역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영역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AP통신도 협동조합이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이색 협동조합들이 생기고 있다. 

 ▶복정고협동조합 ‘복스쿱스’… 성남시에 있는 복정고등학교 교직원, 학생, 학부모 350명이 5000원씩 출자해 만든 조합으로 학교 내에 친환경 매점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의 지원을 받아 저렴한 가격에 친환경 먹을거리를 판매한다. 수익금은 학생 복지에 쓴다. 

 ▶안산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 1999년 지역주민의 건강, 이주노동자 건강권, 환경문제 등을 개선하고자 설립된 안산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2013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새안산의원, 새안산한의원, 우리생협치과, 건강검진센터, 재가장기요양센터, 가정간호사업소를 운영한다. 

 ▶제주하늘버스협동조합… 제주도민이 운영하는 (가칭)제주하늘버스협동조합이 오는 17일 설립된다. 조합원들에게 우선 좌석을 배정하고 항공료를 편도 4만원선으로 저렴하게 책정하는 것이 목표다. 취항을 꺼리는 화물기를 운항해 겨울채소와 어류의 운송난을 해결할 계획이다. 

 ▶와플대학협동조합… 사업 실패 후 와플 노점을 하는 과정에서 개발한 12가지 소스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설립한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로열티나 가맹비 없이 창업할 수 있다.
 
 ▶크린클럽세탁협동조합… 저가 세탁체인점에 맞서 대구에 동네 세탁소 5개가 뭉쳐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 설립으로 고가의 세탁전문기계들을 갖추고, 각자 전문분야를 나눠 세탁을 한다.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대형건물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다 퇴직한 40대 이상의 기술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설립한 협동조합. 공사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A/S 보장보험증권도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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