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로 입성한 ‘흑미’, 얜 샴고양이다. 작년 말에 왔다. 수능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 큰아이가 학교 여학생휴게실에 자리를 잡고 떠나지 않는 얼굴 까만 뻔뻔한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열심히 하라 했다. 나름 이름 있는 고양이라 금방 입양처가 나오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데려갈 것처럼 말만 무성했지 누구도 선뜻 입양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큰아이는 안달이 났다. 수능 즈음 이상기온으로 추웠다.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앵앵 울어대던 고양이를 내치지 못하고 여학생들이 기숙사 문 닫을 때까지 번갈아 무릎에 놓고 재웠다고 한다. 그런데 불편한 사실은 얜 좀 이름 있는 고양이라 대접 받고, 찬바람 부는 밖에는 그나마 조금씩 아이들에게 얻어먹던 길 고양이들이 얘로 인해 푸대접을 받는 상황이 생겼다. 같은 고양이인데 누구는 대접받고 누구는 푸대접받고. 물론 고양이가 사람에게 곁을 주는 아이는 아니라지만 한쪽 눈이 아프던 길고양이는 쫒아내는 어른과 아이들로 인해 서러웠을 것이다. 공평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 매일 저녁 이어지던 큰아이의 넋두리를 마다하지 못하고 ‘엄마가 데려와서 입양시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렇게 입양 온 집이 결국 우리 집이다.
 
처음엔 적극적으로 입양처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그렇게 날짜가 지나고 나니 서로 캭캭거리던 우리 집 ‘보리’와 새로운 고양이 ‘흑미’가 조금씩 서로에게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마음을 내 보인 건 더부살이로 우리 집 생활을 시작한 샴 고양이 ‘흑미’였다. 소위 치즈코숏(노랑무늬의 한국 짧은 털 고양이)이라 불리는 수컷 고양이 보리는 덩치는 일반 고양이 두 배인데 겁 많기로는 열배다. 아주 작은 아기 고양이를 보고도 깜짝 놀라 ‘캭캭~’거리며 발톱을 세우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 깜짝 경기를 일으키는 모양새를 보면 어이없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샴고양이를 데려오면서 절대로 함께 키우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 지내지도 못할 집에 적응하느라 오돌 오돌 떨며 구석에 박혀 있는 샴고양이가 가엽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딱 이틀 지나고 나니 슬그머니 활개를 치고 다니며, 보리가 잠자고 있을 때 냄새를 맡으며 조금씩 사귀자는 신호를 보내왔다. 마주치면 금방 싸울 듯 3~4일을 지내더니 입 다물고 서로 지긋이 쳐다보며 얼굴 익히기에 들어갔다. 나는 입양처 알아보는 것을 그만 두었다. 어차피 혼자 외로워 저녁마다 놀아달라고 괴성을 지르며 울어대는 ‘보리’ 친구를 만들어 보도록 하는 게 더 낫겠다 생각했다. 
 
사연이 어쨌든 식탐들은 왕성해서 서로 사귀는데 사료를 동원하니 시작이 수월한 편이었다. 얼굴을 마주보게 하지만 거리는 멀게 사료를 조금씩 줬다. 한동안 안 먹고 응시하더니 역시 어린 샴고양이 ‘흑미’가 못 참고 먼저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보리도 가만히 쳐다보다가 앞에 놓인 사료를 먹었다. 그렇게 거리를 조금씩 줄이다보니 바로 옆에서 나란히 밥그릇을 놓고 먹는다. 이제는 나란히 먹는 것을 넘어 흑미 요 어린 것은 보리 사료그릇을 넘본다. 그럼 한 식탐하는 ‘보리’께서 슬쩍 비켜나와 ‘흑미’가 흡족히 다 먹길 얌전히 기다린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집안일을 하다 보니 소파 위에서 두 마리가 하트모양을 만들고 잠들어 있었다. 물론 놓칠세라 핸 폰에 담았다. 각자 사연들을 가지고 우연히 우리 집에 와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에 안달 떨던 내 모든 걱정을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이제 나의 고양이 집사 일이 두 배로 늘어날 일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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