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고-한창태 교통재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교통병원 한창태 교수

아이의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아야 했던 이주연(36)씨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 안에서 아이가 울고 보채는 바람에 전방주시에 태만하기도 했지만 앞서 달리던 차량이 신호등에서 급제동을 하는 바람에 앞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 것이다. 다행히 빠른 속도가 아니어서 큰 부상이나 외상은 없었다. 하지만 처음 당한 사고인지라 당시 정신이 없었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씨는 사고처리가 끝난 후 그나마 진정이 되었지만, 문제는 조수석에 앉아있던 네 살배기 딸아이였다. 사고 다음날부터 한 달 반이 넘도록 평소와 달리 사소한 일에 칭얼거리고, 혼자 밥도 잘 먹던 아이가 엄마에게 먹여달라고 졸랐다. 사고 전에는 잘 자던 아이가 사고 후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자다 깨서 우는 횟수가 많아졌다. 이씨는 아기가 아직 자기표현이 서투른 나이다 보니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되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교통사고 후 아이가 초조하고 예민하여 작은 일에 지나치게 짜증을 내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악몽을 꾸는 일이 많은 경우, 차를 무서워하고 차를 타려 하지 않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관련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이런 경우 아이가 사고 후에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지 눈여겨봐야 하는데, 교통사고가 아이의 놀이에 표현되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다. 차가 서로 부딪히는 놀이를 반복적으로 한다든지, 사고 후 처리 과정을 재현하는 놀이를 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은 사고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악몽을 꾸고, 사건과 관련된 것들을 회피하게 되고, 사고와 관련된 인지나 감정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등의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될 때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경우에는 새로운 분리불안 출현, 공격성 발생, 외상과 분명한 관련이 없는 두려움 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는 불안, 공포, 악몽 등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기도하며, 심한 경우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사건발생 후 곧바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수개월에서 수년 후에도 장애를 겪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가급적 사고 후 일상을 하는데 기능적 변화가 생겼다면 조기에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나이가 어리거나 다른 질환을 동반한 경우 증세가 더 안 좋아질 수 있으므로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대게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하게 된다. 약물치료로는 선택적 세로토닌제 흡수억제제가 주로 사용되는데 이 약물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특징적인 증상뿐만 아니라 다른 불안이나 우울 증상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뿐만 아니라 집단치료, 가족치료, 개인정신치료와 같은 정신치료가 효과적이며 아이의 경우 놀이치료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밖에도 다감각자극치료의 일종인 스노즐렌과 이완요법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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