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으면 뭔가 새롭게 다짐하고 기대하고 희망을 이야기하게 된다.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그것마저 없으면 새해를 뭔 재미로 맞이하겠는가. 하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풋풋한 1월인데 뉴스는 슬프다. 구제역이 돈단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되었는데 해를 넘겨 1월까지 지속되고 있나보다.
 
양평에 있다 보니 동물은 ‘생태계를 지탱하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 얽혀있는 인간과 동등한 생명’이라는 사실보다 ‘인간의 배를 채우는 식량’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예전엔 시골하면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떠올랐다. 강아지들은 논두렁을 따라 밭 메러 가는 할머니를 쫒아가고, 고양이들은 해 좋은 마당에서 일광욕을 하며 소들은 음머~ 음머~ 한가로이 풀을 뜯고, 돼지들은 꿀꿀~ 음식 잔반을 해결해주고 진흙욕을 하며 새끼 돼지들을 돌보는 풍경 말이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몇 발자국 움직이지 못하는 곳에 소들은 갇혀있고, 돼지들은 앉았다 일어서는 정도만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먹을 고기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공장이었다, 고기공장.
 
정육코너에 벌겋게 포장된 고기를 보면 그냥 소고기 1등급, 2등급 이렇게만 생각했던 게, 이제는 한 생명으로 잉태되어 태어나고 자라서 도살되고 유통되고 분리되어 이렇게 포장되는 과정까지가 그려지게 된다. 자라는 환경을 봐서 그런가? 고기를 보면 왜 얘네들이 살고 있던 환경까지 생각나는지. 게다가 소의 커다란 눈망울과 뽀얗고 귀여운 아기돼지 모습까지. 다 무시당하고 그냥 사람들 배를 채우는 고기로 키워진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런데 구제역이라니. 2010년에도 구제역이 심하게 돌았더랬다. 모두 347만 마리가 살처분 되었단다. 돼지가 331만 마리. 우리나라 돼지의 34%가 매몰처분 되었다. 그래도 양평의 축사 환경은 양호한 편인가? 지난해 경북에 있는 한 돼지우리에 화재가 나서 돼지들 590마리가 폐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뉴스를 보니, 여러 채의 돼지축사가 지붕도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왜 그렇게 삽시간에 불이 번졌으며 진화가 힘들었는지, 그리고 많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지 이해가 갔다. 그런 환경에서 불 번지듯 병도 번져 나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류독감을 퍼트리는 범인으로 찍힌 철새들은 다양성 속에서 자생적으로 내성과 면역력이 생긴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방법은 병을 이기게 할 수 없다. 동물들을 바이러스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철새를 탓할 게 아니라 사육환경을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외양간에 아이를 잠시 놓아두어서 일부러 균에 노출시켜 건강한 아이로 만들기도 했다 한다.
 
동물들 키우는 데도 자연스러운 방법이 가장 최선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게 참 힘들다. 돌고 돌아 서로 맞물려 있는 경제논리로 여러 생명과 사람들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다들 배부른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 고생과 희생으로 누구 배가 부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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