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무용론 자초한 군의회

부실덩어리 지방공사 옹호 바빠 
군정질문은 본질 벗어나기 일쑤

# 제7대 양평군의회가 개원한 지 150여일이 지났다. 의장단선거부터 ‘감투싸움’을 벌이며 큰 실망감을 안겨주더니 네 차례 회기를 거치면서 참담한 지경으로 전락했다. 특히 이번 2차 정례회에서는 ‘지방의회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 제7대 양평군의회가 두 차례 정례회를 거치면서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능력이 떨어져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명숙 의장이 본회의장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제7대 양평군의회의 올해 두 번째 정례회가 막을 내렸다. 본지에 달린 누리꾼들의 댓글을 보면 지난 9∼10월 1차 정례회에서 보여준 군의원들의 실망감이 이번 정례회에서 정점에 달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지난 1차 정례회에서 군의원들은 체육대회와 면민의 날 행사 등을 이유로 휴회를 하는가 하면, 행사장 참석을 위해 아예 회기일정에서 빼는 과감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군의원들은 군민들의 빈축을 산 지 두 달도 안 돼 이번에는 집단 무기력증에 빠졌다. 군민의 눈과 귀, 언론과 시민단체의 감시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를 나타냈다. 

지난달 28일 양평지방공사의 47억원 채무면제 동의안이 예산결산특위의 찬·반 토론과 표결 끝에 원안 가결되자 본지에는 군의회를 비난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아이디 ‘벙어리’는 “묻지 마 유권자에 거수기의원이라… 지식이 부족해도 민심은 헤아려야 의정활동비를 받는 것 아닌가?”라고 썼다. 아이디 ‘주부’는 “의원님들께서는 누구를 위한 의원이신지. 주민을 대변하시라 했건만 후회스럽네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했다.

‘보리’가 아이디인 누리꾼은 “방청한 농민들은 뭐지? 반대하지 말라고 압박하러 온 모양인데, 제정신이야? 실체가 뭐야?”라고 적었다. 농민단체 회원 30여명이 예결특위의 심사장을 집단 방문한 처사를 꼬집은 것이다. 군의회 소회의장의 방청석이 모자라 간의의자가 동원된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아이디 ‘콩고’는 “11일 본회의에서 처리하지 못하게 군민들이 의회로 쳐들어갑시다”라고 제안했다. 집행부를 감시하기는커녕 옹호하기 바쁜 군의원들의 태도에 분노한 것이다. 

‘군정에 관한 질문’은 행정사무감사와 함께 지방의회 정례회의 꽃으로 불린다. 군민을 대신해 군수와 부군수를 발언대에 세워 놓고 군정 업무 전반을 물을 수 있는 기회다. 때론 질타와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언론의 조명도 으레 이때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7대 군의회의 첫 군정질문은 두드러진 쟁점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맥없이 끝나버렸다. 일부 초선 군의원은 실·과·소장들에게 군정을 질문하겠다는 것인지, 업무보고를 듣겠다는 것인지 모호할 정도다. 집행부를 감시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니 질문의 날카로움이나 집요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박현일 부의장과 송요찬 군의원이 지방공사 채무면제 동의안 통과에 항의하는 표시로 11일 본회의장에 불참한 것 정도가 그나마 눈에 띄었을 뿐이다.

 

“그래도 재선이 4명인데… 이정도일 줄이야”

 

초선의원의 패기마저 실종
재선의원은 무기력에 빠져
제 역할 못하니 ‘무용지물’

이번 정례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지방공사의 농업발전기금 융자원리금 47억원에 대한 채무면제 동의안이었다. 집행부는 6대 군의회에서 이루지 못한 일을 이번에 성사시키기 위해 작정한 듯 밀어붙였다. 군의원들이 안건을 심사하는 회의장에 농업인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집단 방청하는 초유의 일까지 있었다. 집행부와 박명숙 의장은 부인하고 있지만 채무면제 동의안에 반대하는 군의원들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었다.

동의안은 의장을 제외한 예결위원 4명(송만기·이종식·이종화·박화자 군의원)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박현일 부의장과 송요찬 예결위원장 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찬성하는 군의원들은 대부분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 군의회 예산결산특위 송요찬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지방공사의 농업발전기금 채무면제 동의안을 표결에 부치고 있다. 동의안에 찬성하는 이종식·이종화·박화자·송만기 의원(왼쪽부터 시계방향)이 기립해 있다.

송만기 의원은 지방공사의 채무액 원금인 20억3500만원을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 지방공사 사장은 송 의원의 발언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 ‘페이퍼 머니’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2008년 6월 물맑은유통사업단과 양평지방공사와의 포괄적 양도·양수를 통해 채무액이 서류로 승계된 것이지 현금이 오고간 게 아니라는 논리다. 

박화자 의원은 ‘지방공사의 빚이 영농조합법인 양평환경농업-21이 친환경농산물 인증벼의 수매자금으로 활용한 채무’라는 점을 부각했다. 박 의원은 “빚은 남아있지만 브랜드가 그 값어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농민들을 위해 애쓰다보니 지방공사가 빚을 떠안았고, 대내외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종식 의원은 “더 이상의 적자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러나 박현일 의원은 “6대 군의회가 채무면제 동의안을 부결한 게 불과 1년 전이다. 그 사이 채무를 면제해주자는 군민 공감대가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7대 군의회에 다시 안건을 상정한 것은 의회를 경시하거나 무력화하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지방공사가 물맑은유통사업단 등과 양도·양수 계약을 한 건 채무만 승계 받은 게 아니라 시설과 노하우, 마케팅, 지적재산권까지 모든 것을 승계 받았는데 빚만 받았다고 말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송요찬 의원은 이번 동의안 안건 자체가 성립되는지에 의문을 달았다. 송 의원은 “농업발전기금의 채권자는 양평군인데 군은 빼놓고 지방공사가 양평환경농업-21과 물맑은유통사업단과의 포괄적 양도·양수계약서만 썼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6대 군의회가 채무면제를 해주지 않은 것은 채권자인 양평군과 지방공사와의 양도·양수계약서가 없기 때문”이라며 “만일 시민단체 등이 지방공사의 양도·양수계약 자체가 원천적으로 무효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제기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안재동 친환경농업과장은 “포괄적 양도·양수 계약 당시 양평군이 입회를 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질문인지 농담인지… 집행부도 긴장 안 해

졸거나 반쯤 눈감긴 과장,
회의 중 딴 짓하는 군의원

양평군의회는 재선 의원 4명, 초선 의원 3명으로 구성됐다. 박명숙 의장을 제외하면 초·재선 의원이 3명씩 균형을 갖췄다. 재선 의원은 4년간 경험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초선 의원은 신선함과 추진력을 무기로 의정활동을 펼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군민들은 군의회가 초반 비록 의장단 선거로 내홍을 겪었지만 의정활동의 기대마저 완전히 저버리진 않았다.

그런데 지난 가을의 1차 정례회에 이어 이번 2차 정례회까지 군민들의 이런 기대는 무너졌다. 지난달 28일 새누리당 군의원 4명은 마치 집행부와 사전 교감이라도 한 듯 합세해 지방공사 채무면제 동의안을 그대로 가결시켜 군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또 일부 군의원은 군정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집행부의 업무보고를 듣는 것인지 모호했다. 

송만기 군의원은 군정에 관한 질문 이틀째인 지난 9일 이종승 관광진흥과장에게 축제 활성화 방안을 물었다. 양평 대표 축제인 용문산산나물축제의 문제점 정도를 지적할 줄 알았던 방청객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세계 3대 축제가 뭔지 아느냐’는 송 의원의 질문에 이 과장이 “독일 옥토버페스트와 일본 삿포로 눈 축제, 브라질 리우카니발”이라고 답하자 송 의원은 “정답이다. 대단히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 송만기 군의원이 지난달 28일 예결특위의 지방공사 채무면제 동의안 회의 도중 노트북에서 웹 서핑을 하며 스포츠뉴스를 보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송 의원의 퀴즈는 계속됐다. 국내를 대표하는 축제를 묻자 이 과장은 “화천 산천어축제, 보령 머드축제, 함평 나비축제”라고 했다. 그러자 송 의원은 “아까은 100점인데 이번에는 40점”이라고 말했다. 송 의원은 이어 ‘월디페(월드디제이페스티벌)와 맞물린 옥토버페스트’를 제안했다. 그는 “주간에는 옥토버페스트, 야간에는 월디페로 3일 동안 양평에서 축제를 한다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어르신들이 ‘양평에다가 이런 시끄러운 것 하지마라, 군수 이거 하지 마’라고 얘기했다는데, 월디페를 춘천에 빼앗긴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인가”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처럼 군정에 관한 질문의 긴장감이 떨어지면서 본회의장에 출석한 실·과·소장 가운데 일부는 팔짱을 끼는가 하면 반쯤 눈이 감겼다. 아예 꾸벅꾸벅 조는 사무관도 여럿 목격됐다. 

재선 의원 가운데는 군부대 이전 사업, 행정타운 조성 등 군수 공약사항을 중점 질문한 박현일 의원이, 초선 의원 중엔 읍·면사무소 공무원의 민원 응대 불친절과 공직기강 해이, 청렴도 추락을 질타한 이종화 의원이 그나마 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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