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대화는 했지만 상생협력엔 ‘동상이몽’

 

#양평읍 공흥리 롯데마트 부지에 미완성 건물이 흉물로 방치된 지 벌써 1년4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생생협력에 대한 상인회와 롯데마트측의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생협력이 불가하다는 상인회와 가능하다는 롯데마트, 동상이몽의 골이 깊어진다.

상인회-롯데마트 첫 공개간담회 가져
기본인식 달라 접점 찾기는 어려워
상인회, 전문대 유치 등 입점조건 제시

 

▲ 롯데마트 양평점 투시도. 인구 10만명 전후의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콤팩트 점포’로 설계됐다.

“롯데마트 입점을 상인들이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인구 10만에 불과한 양평에 롯데가 들어오면 영세상인들은 버틸 수가 없다. 롯데가 진정 상생을 원한다면 인구 15만이 넘어설 때, 그때 들어와라.”

◇롯데·상인회·소비자 공개대화 

지난 14일 열린 상인회․롯데마트․소비자모임 3자 간담회에서 물맑은양평시장상인회 이종식 부회장이 한 말이다. 이창승 양평읍장이 마련한 이날 간담회는 롯데마트 입점 문제의 당사자인 롯데쇼핑과 상인회가 공개적으로 한 자리에 앉은 첫 만남이었다. 3자간에는 열띤 대화가 오갔고 상대측의 요구에도 분명한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활발한 토론에도 의견접근은 이뤄지지 않았다. 만남 성사 자체에 의미를 두는 분위기였다. 

지역에 대형마트가 들어올 때면 어느 곳에서나 상생협력을 논의한다. 어떤 곳은 협의가 잘 풀리기도 하고 어떤 곳은 꼬이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진행된 전국의 대형마트 갈등 중 꽉 막혀버린 대표적인 사례가 양평이다. 롯데마트 양평점은 2012년 3월 건축허가신청 후 지금까지 2년8개월이 지나도록 입점을 못한 채 장기 표류하고 있다. 양평읍 공흥리 468-33번지 일원에서 진행되던 건물 공사도 완공을 코앞에 두고 중단된 지 벌써 1년 4개월이 더 지났다.

◇꼬일 대로 꼬인 2년8개월

올해를 넘기기 전에 해법이 나올 것인가. 롯데측은 그러기를 바라지만 문제해결의 열쇠는 상인회가 쥐고 있다. 상인회가 롯데마트와 상생협약을 맺어주지 않으면 롯데마트의 양평 입점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유통산업발전법에서 전통시장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같은 조항을 두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천희 상인회 이사는 아주 구체적으로 롯데마트 양평점이 입점 가능한 인구조건을 제시했다. 이종식 부회장의 15만명 인구조건에서 한발 더 나간 것이다. 이 이사는 “인구가 늘어야 하는데 노인인구가 아니라 소비인구가 늘어야 한다. 전문대학 같은 게 하나 들어오면 된다. 그러면 롯데마트 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대학이 생긴다고 양평인구가 15만명이 되지는 않는다. 전문대학 하나의 교수, 교직원, 학생을 모두 합해봐야 많으면 5000명 정도다. 소비를 할 수 있는 인구 5000명 유입, 이것이 이 이사의 발언에서 드러나는 인구조건이다. 꼭 전문대학이 아니더라도 큰 공장이 생기거나 물류단지가 들어오면 해결 가능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양평에서는 쉽지 않다. 자연보전권역과 상수원보호구역 등의 규제에 묶여 있어 대학이나 공장 유치는 법․제도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 물맑은양평시장상인회와 롯데마트, 상인모임이 14일 양평읍사무소에서 이창승 읍장의 주선으로 처음으로 공개간담회를 가졌다.

◇인구 15만 또는 전문대 유치

이날 간담회에서는 인구조건 외에도 의미 있는 조건이 제시됐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 판매조건이다. 양평읍내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한 상인은 “공장이 없는 양평에서는 농민들이 지역경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농민이 잘 살아야 장사도 잘 된다. 롯데가 진짜 상생을 원한다면 양평의 농산물을 판매해 농민들과 이익을 나누는 그런 계획서를 내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상생이란 자신도 살고 상대방도 살고 모두 사는 것을 뜻한다. 이날 간담회에서 드러난 상인회의 인식은 인구 15만명 또는 전문대학 하나 정도(5000명)의 소비력을 갖춘 인구가 충족되면 현재 전통시장과 읍내 상가에 롯데마트 하나 정도가 들어와도 상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인회가 롯데마트측과 생생협약을 맺을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여기에 지역 농산물 판매와 같은 지역협력계획이 충분히 담겨야 한다. 전통시장과 상인들을 지원하는 상생협력계획서를 롯데가 제출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다.

◇간담회 대화에 롯데마트 ‘고무’

어쨌거나 이번 간담회를 통해 공은 롯데마트측에 넘어갔다. 합의점은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롯데마트측 인사들은 간담회 분위기에 상당히 고무된 듯 보였다. 롯데마트를 대표해 간담회에 참석한 정순진 이사는 간담회 직후 “이런 대화는 처음이다. 합의된 것은 없지만 상인회 쪽에서 구체적인 요구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진전된 것”이라며 “앞으로 더 세부적인 상생협력계획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상인회가 제시한 인구조건에 대해 롯데측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다. 롯데마트 양평점은 인구 15만명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스탠더드 점포’가 아니라 인구 10만 이하의 도시에 진출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콤팩트 점포’라는 논리를 폈다. 롯데마트 점포개발팀 유지호 팀장은 “15만명 기준으로 하면 수도권에서는 더 이상 점포를 낼 곳이 없어 인구 10만명 전후인 곳에 진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양평도 이 경우인데 처음부터 작은 점포로 작은 매출을 올리고 이익도 작게 볼 계획을 하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말은 소규모인 롯데마트 양평점이 지역 상권에 미칠 영향을 과하게 평가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버티는 상인회에 몸 단 롯데

지역 농산물 판매 요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정 이사는 “지역협력계획서에 물맑은양평쌀과 뽕잎차, 삼채류 등 지역 농산물 판매 계획을 반영해 놓았다”며 “로컬업체를 발굴해 신선한 야채를 당일로 들여와 판매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밖에도 롯데마트측은 상인들에게 롯데미소금융 제공과 같은 현실성 있는 제안들을 상생협력계획서에 추가로 담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첫 공개간담회에 상인회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분명한 입장을 밝혀 선을 그었다는 쪽이다. 여차하면 유통산업발전법의 전통상업보존구역 내 대형마트 입점이 제한되는 내년 11월23일까지 버틸 심산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몸이 단 것은 롯데 쪽이다. 그래서 간담회에서 나타난 작은 단서라도 붙잡고 늘어질 태세다.

 

양평점 개점 시 지역민 우선 채용

고용인원 300명 예상
시장발전기금 7억 기부 

롯데쇼핑(주)이 물맑은양평시장상인회에 제시한 롯데마트 양평점 상생협력계획서가 지난 14일 양평읍사무소에서 열린 상인회-롯데마트-소비자모임 3자 간담회에서 공개됐다. 그동안 상생협력계획서의 내용이 일부 알려지긴 했지만 문서 전체가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용과 관련된 것이다. 롯데마트 양평점 직원을 채용할 때 상인 자녀 및 지역주민을 우선 선발하겠다는 내용이다. 롯데측이 산정한 채용 예정인원은 약 300명으로 관리직 50명, 행복사원 90명, 드림사원 5명 등 정규직이 145명이다. 나머지는 매장상품관리, 시설, 주차, 안전관리, 미화관리 등으로 협력업체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고용한다. 

상인 자녀 또는 상인회에서 추천하는 양평군민의 자녀에게 장학금을 3년간 매년 2000만원씩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전통시장 발전기금 기부도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다. 롯데마트는 양평시장 시설개선사업과 행사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7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상생협약과 대규모점포등록 후 20일내에 상인회 지정계좌로 일시불로 지급하겠다는 방법까지 명시했다.

양평군 조례에 따른 의무휴일과 영업시간을 준수하고 전통시장의 협의요청이 있을 때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조정하겠다고 했다.

상인회와의 공동마케팅도 제안했다. 마트 자체 전단광고 제작 시 전통시장 광고 삽입을 지원하고 주기적으로 전통시장이 상생바자회 및 홍보를 할 수 있도록 마트 앞의 부지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다. 양평시장 홍보용 장바구니 제작을 지원하겠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전통시장 장보기데이를 운영하고 본사 차원의 행사 외에는 점포 자체 행사를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유통기법을 교육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판매, 서비스, 응대기법 등을 담은 전통시장 교육용 소책자를 제작․배포하겠다고 했다. 상인들에게 점포관리기법을 포함한 유통기법교육도 하고, 전통시장 전기 및 가스 안전점검활동을 반기에 1회 실시하고, 음식점 위생진단 점검 및 향상방안컨설팅도 반기에 1회 지원키로 했다.

양평시장이 문화관광형시장 사업으로 진행 중인 어플리케이션 제작에 따른 운영비용을 2년간 지원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롯데마트 정순진 이사는 “유통산업발전법에서 전통시장 1㎞내에 대형마트를 입지를 제한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게 아니라 협의를 해서 하라는 것”이라며 “시장과 마트가 경쟁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시장이 효율적으로 거듭나 서로 이기는 사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마트의 상생협력계획서에 대해 이날 간담회에서 구체적인 토론은 없었다. 다만 상인회는 롯데마트 측의 지역민 고용계획에 대해서는 비현실적인 안으로 평가했다. 상인회가 대형마트 입점 후 지역상권이 좋아진 곳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을 보면 상생협력 자체를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 롯데마트 양평점 상생협력계획서. 시장활성화 지원, 공동마케팅, 유통기법 교육 및 컨설팅, 지역 중소상인 자녀 취업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소비자모임 롯데마트 편들기 ‘노골적’

롯데마트 지지모임 자처

소비자의 선택권과 영세상인의 생존권 중 어느 것이 먼저 고려되어야 할까. 롯데마트 입점 논란의 한 축에는 일부 소비자들과 상인회 간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문제에 목소리는 내는 소비자는 양평군소비알뜰모임(회장 김경길)으로 조직돼 있다.

간담회에서도 롯데마트와 상인회의 갈등보다는 이 갈등이 두드러졌다. 소비알뜰모임이 롯데마트를 공개적으로 편들고 대변했기 때문이다.

이 모임 김경길 회장은 도시기능 형성과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롯데마트 입점을 찬성했다. 그는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싸게 구입하고, 쇼핑문화를 개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롯데마트 입점 동의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군민의 80%가 롯데마트 입점을 찬성한다. 다수가 원하는데 상인회가 소비자에게 이해를 받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런 일방적인 롯데마트 편들기에 상인들은 울컥하는 분위기였다. 이종식 상인회 부회장은 “소비자에게는 선택권이지만 상인들에게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소비자는 조금 불편하면 되지만 우리는 죽고 사는 문제”라며 “유통산업발전법 테두리에서 입점을 반대하는데 우리가 잘못한 것이냐”며 항변했다. 이 부회장은 상생협력이 성공해 지역상권이 대형마트 입점 전보다 활성화된 사례가 전국 어디에 있는지 확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천희 이사는 “소비자 80%가 롯데마트 입점에 찬성한다고 하는데 그 근거가 무엇이냐. 한 번도 근거를 댄 적이 없다”며 소비알뜰모임의 실체와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왜 소비알뜰모임은 롯데마트 편만 들고 상인들을 이해하려하지 않느냐”는 한 상인의 볼멘소리에 김경길 회장은 “우리는 롯데마트 지지를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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