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모의재판 1

   “동대문 정보에 언제부터 근무했소?”

  영등포서에서 지원 나온 대원이 묻는다.
 
  “반년도 안 된 풋내기요.”
 
  “동대문 정보는 장관도 함부로 이동 못 시킨다죠?”
 
  “서울대 특성을 두고 한 말일 거요. 특히 문리대생들은 데모를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니 걔들 상대하려면 달인이 돼야거든.”
 
  “연고대생들이 질긴 줄 알았는데? 특히 연대생들은 열 놈만 남아도 살곰살곰 다시 긁어댄단 말야.”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서울문리대생들은 완전 게릴라요. 지겨운 놈들이지. 걔들한데 물든 탓인지 옆에 있는 법대생들도 뒤지지 않거든.”
 
  “까불다간 법관 꿩궈먹을라구?”
 
  “성깔 나는 마당에 앞뒤 가리겠소.”
 
  “그래도 실속은 차려야지.”
 
  “법대애들은 문리대보다 횟수는 적어도 아주 매워요. 정보부 해체 등 아주 구체적으로 나오거든.”
 
  “채증반은 욕먹을 자리라죠?”
 
  “실제로 입증자료를 수집하려니….”
 
  “그 카메라에 찍히면 신원조회감이라던데?” 
 
  “주동자나 적극가담자만 해당되고….”
 
  용해는 자기가 찍은 사진이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건 대외비(對外秘)였다. 용해는 말을 돌린다. 
 
  “오늘은 편히 대기만 했으니 밤에는 파출소에서 시달려야겠네요?” 
 
  “차라리 기동대로 가는 게 편해요. 상황이 없을 땐 두 다리 뻗고 지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젊은이는 출동하고 노털들만 근무하니 파출소가 더 시끄러울 텐데 확실히 경범자가 줄어요.” 
 
  “왜 그럴까요?” 
 
  “데모를 잘 막아달라는 뜻인지….”
 
  “그럼 시민들 정서가 친여적으로 흐른다는 말인가요?”
 
  “친여적이라기보다 시민 모두가 긴장하고 있다는 거겠죠. 학생들이 저러고 있는데 술에 취해 비틀거릴 수 있겠어요. 모두 자중하는 거지.”
 
  “서울 인구 오백만 모두가 정서변화를 겪고 있다는 게 참 신비스럽네요.”
 
  “서울 인구가 오백만요?”
 
  “지난 유월 이십오 일부로 오백만을 돌파했다고 해요.”
 
  “서울이 급팽창하는군.” 
 
  일과가 끝나자 용해는 사무실로 돌아가 첩보를 썼다. 첩보의 작성자는 형사 이름 대신 숫자로 적는데, 중요사항은 몇몇 중요 기관에 즉보로 처리된다. 중요사항은 촌각을 다투기 때문이다.
 
  “함께 나갈까?”
 
  첩보를 제출하고 퇴근준비를 할 때 맹 형사가 용해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좋아.”
 
  두 사람은 경찰서를 나와 석굴암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담배연기가 자욱한 토굴에는 막걸리 냄새가 진동한다. 두 사람은 구석 자리를 찾아가 마주 앉는다. 
 
  “이상한데….”
 
  맹 형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속삭인다. 
 
  “왜?”
 
  “오늘은 한 놈도 안 보이잖아. 모두 낯선 놈들뿐야.”
 
  학생회 간부나 주모자들이 안 보인다는 말이었다. 맹 형사는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보탠다.
 
  “다른 데서 모이는 모양인데…. 어딜까?”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요즘 서울대에서 모의재판이 열린다는 낌새가 보여. 한일회담의 허실을 성토하자는 의도거든. 암튼 어디서 작당하건 내사는 도 형사가 맡을 테니 그리 알아. 아직은 팔리지 않아서 적임자야.”
 
  “얼굴이 안 팔린 건 알지만, 내가 제대로 감당해낼 수 있을까?”  
 
  “도 형사야 말로 적임자지. 젊은 데다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이니까 깜빡 속을 거라구. 당분간 시위는 없을 거야. 요즘 소강상태인 것도 저희들 내부 결속을 다지자는 수작일 거라구. 머잖아 침투할 테니 그리 알아.”
 
  “그럼 내가 맡기로 결정 난 거야?”
 
  “계장님이 과장님께 말씀드렸대.” 
 
  맹 형사 말대로 문리대생들의 모의재판은 삼일 후에 열렸다. 용해는 학생풍의 복장을 갖추고 동숭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문리대로 침투했다. 간담회와 모의재판이 온종일 계속될 예정이었다. 용해는 운동장에 모여 있는 학생들 틈에 끼여 있다가 간담회가 열리는 학전살롱으로 갔다. 입구에서는 두 학생이 입장 학생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용해는 학생티를 내려고 손에 책을 들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구를 통과했다. 그리고 얼른 빈자리를 찾아가 좌석에 앉았다. 
 
  간담회는 총학생회 주최로 개최되었다. 참가 범위는 서울대 법대, 음대, 의대생 말고도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생이 다수 참석했다. 간담회 요지는 첫째 지금까지의 학생운동이 학생회가 주최하는 운동과 소위 문제학생들이 전개하는 운동 등으로 이원화되어 있어 이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는 학원사찰과 황색문화 등에 대하여 막연한 내용으로 규탄하기에 앞서 구체적이고 대안이 있는 학생운동을 전개하여 실리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셋째는 지금까지의 학생운동이 일부 학생층이라는 지탄을 면치 못했는데 각 대학 연합으로 전개할 것이며 사회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 자신들의 자세확립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헌옷입기운동이나 머리깎기운동 등을 전개하여 모든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넷째는 현재 언론이 사실보도에 있어 무기력하고 인색하므로 이에 대한 각성을 촉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간담회는 오후 늦게야 끝났다. 밤 열시까지 대학생들 틈에 끼여 지내야 하는 용해는 교문 밖으로 나와 저녁을 사 먹고 사방이 어둠에 싸여서야 몰래 교정으로 숨어들었다. 교정 여기저기에는 몇몇 학생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용해는 아까처럼 책을 들고 얼른 강당으로 들어갔다. 문리대 학생회가 주최하는 모의재판은 동숭동 서울대학교 강당에서 밤 여덟 시부터 열릴 예정이었다. 용해는 낮에 간담회장에서 얼굴이 알려진 터라 무척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이번에는 서울대생들만 치르는 행사여서 얼굴 파악이 쉬울 것 같았다. 
 
  행사장에는 교수와 학생 다수가 참석하고 있었다. 용해도 그들 틈에 끼여 의자에 앉았다. 자리가 정돈되자 이내 막이 올랐다. 소위 학림공화국 최고재판소장의 주심으로 열린 그 풍자극의 내용은 <반사회 행위규제법 위반자에 대한 공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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