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에서 삐져나와 말 거는 작가의 마음여행


마음은 어떻게 생겼을까. 둥글둥글할까, 반듯반듯 네모날까, 아니면 세모 모양일까. 마음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마음에 도전장을 내민 작가가 있다. 젊은 조각가 한송준(35·사진)이다. 그는 순수하고 솔직하고 담백하다. 때가 묻지 않았다. 2003년 대학을 졸업한 후 아무 연고가 없는 양평으로 홀연히 날아왔다. 인적이 거의 끊긴 지평면 무왕리에 작업실을 마련, 수도승이 자신의 마음을 갈고닦듯이 마음을 찾아 오늘도 여행을 떠난다. 때로는 마음을 완전히 펼쳐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을 가두어두지만 살며시 삐져나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한송준의 예술적 성찰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작가의 ‘선물’이다.

=양평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지난해 신혼살림집까지 차렸는데, 양평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요?

“솔직히 처음엔 양평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로 상업조각을 하다가 아는 형이 양평에 작업실이 있다고 해서 오게 됐는데, 지금은 제2의 고향(작가의 고향은 부산)이 되었습니다. 당시 나만의 작업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로망이 있어 여기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양평은 자연이 아름답고, 작업실이 있는 지평면 무왕리는 주택가에서 떨어져 있어 작업(그의 작업은 철을 자르고 붙이는 작업으로 다소 시끄럽고 먼지가 난다) 하기에 좋습니다.”

=양평에서의 생활이 9년째인데 양평의 자연이 작품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초창기에는 주로 철로 라인 작업을 했어요. 그 때는, 철이 가진 고유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지요. 그러다보니 작업실 안이 온통 철공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간 작업을 계속하자 양평의 자연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봄과 여름을 제외하고는 주변이 온통 갈색인데다가 철도 갈색이어서 컬러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도시에 살면 네온사인과 같은 화려한 색을 늘상 접할 수 있어 색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는데, 여기 있다 보니 컬러가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작업에도 4년 전부터 컬러를 쓰게 되었습니다.”

=작업의 재료로 주로 철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 수업과정에서는 돌, 나무, 흙, 철 등 다양한 재료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재료보다 철을 대하면 개인적으로 집중도가 높아져요. 철은 굉장히 단단하고 차갑지만 막상 작업하다보면 너무나 유연하고 따뜻한 정반대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철은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고 따뜻한 난로처럼 차갑지도 않습니다.”

철은 내 마음의 고향

=철을 가득 메운 작업실에 앉아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바쁘게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더라도 작업실에 들어오면 어머니의 품속같이 포근하고 안정감이 생깁니다.”

=성격이 차분하고 남에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 같은데….

“최대한 제 자신을 지켜보면서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새로운 것들은 아니지만 다양한 작업에 대해 늘 시도해보려 하고, 여러 패턴 작업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구축하기보다는 발굴하면서 찾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게 집중하려는 성격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작품 「The bell」은 평면의 판재를 쳐서 소리를 내는 종입니다. 공명이 나는 둥근 종이 아닌, 평면의 종을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작가에게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기본 계획 안에서 이미지화 되어 있는 종 말고 저만의 종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평면 종은 편경처럼 울림이 있는데다가 모빌처럼 움직이면서 거울처럼 사물을 비추기도 해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그게 기존 종과는 다른 매력입니다.”

다양한 색깔로 표현되는 마음

=마음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중적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요?

“마음을 색깔로 표현하면 여러 가지 색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마음을 색깔로도 표현하지만, 다중적인 마음의 갈래를 담아내기 위해 그리드를 형성하는 판재의 나열로 나타내기도 하고, 정육면체로 표현하기도 하고, 굴곡 있는 판재를 연쇄적으로 연결시키기도 하고, 서로 어긋나게 배치하기도 합니다. 판재의 접촉과 이완을 통해서 마음과 마음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고, 아크릴 채색 위에 투명 우레탄 도장으로 마감한 서로 다른 색채를 이용해서 마음의 표정을 말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마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는 2001년, 대학을 졸업하기 전 인도여행을 떠났습니다. 1년 동안 인도에 머무르며 배낭여행을 했지요. 2~3일 동안 기차에서 지내기도 하고, 배낭에만 의지한 채 뚜벅뚜벅 걸으면서 삶이란 무엇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책 한 권도 버려야 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도저히 할 일이 없어 지루하다 보니 더 많은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게 되더군요. 2층 버스에 누워서 가다보면 빙글빙글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떠 있고, 그 별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이색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정식 작가의 길에 입문한 이후에도 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 위해 인도를 두세 번 더 다녀왔습니다. 인도가 주는 무게도 무게지만, 전혀 다른 공간에 놓여 졌을 때 모든 것들이 컴퓨터에서 정리되듯이 제 자신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작품마다 ‘마음조각’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마음여행을 통해 계속 마음을 탐구하고 있지만 마음은 잘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마음이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갖고 마음을 찾아보면 마음의 주인은 저이어야 하는데 마음은 저의 것이 아니더라구요. 제 안에도 다른 마음이 들어 있어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마음은 형태는 없는데 제 안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요. 그래서 다중적인 마음을 상자를 통해 펼쳐보았습니다. 상자 안에 마음을 가두기도 하고, 완전히 상자를 드러냄으로써 마음을 내보이기도 했는데, 일반인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이지만 그런 형태들을 찾고 기존 형상을 빌려와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노란 사각형으로 된 작품 ‘Facet of my mind’는 무엇을 표현한 것인가요?

“상황과 마음의 변화를 형태에 대입한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고 싶은데 지금도 마음은 늘 알고 싶은 것들 중에 제일 큰 것이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작업해야 할 부분입니다. 깨달음에 대한 완벽한 답이 나왔다면 다른 것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음은 내 것 아닌 또다른 존재의 것

=마음여행을 통해 지금까지 본인이 느낀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나의 것은 보통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마음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정말 해야지 하는 것들도 할 수가 없고, 엉뚱하게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볼 때 마음의 주인은 제가 아니지요.”

=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가장 작업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마냥 작업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돈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불편하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돈이 있으면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줄고, 돈이 없으면 작업하기가 어렵고…. 작품 활동도 해야 하고 작품 활동을 해야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으니까 늘 균형을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바람이 있다면….

“양평에 거주하고 있는 만큼 양평을 문화생태도시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마구잡이로 생겨나는 공공미술보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공공미술을 양평에 만들어갔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고, 그 일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특히 양평군립미술관이 생겨났으니 큐레이터가 꼭 이름난 작가만 찾아다니지 말고 앞으로 성장 가능한 양평의 작가를 발굴해 세계적인 작가로 키워나갔으면 합니다. 저도 성장 중에 있는데, 관심과 집중을 받지 못할까봐 사실 두렵기도 합니다.”

자전거길 폐 터널은 중요한 문화자산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아직은 특별히 전시가 잡힌 게 없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동안 열심히 한 작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싶습니다. 우연히 남한강 자전거길을 여행하면서 양평에 여덟 개의 터널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터널을 보면서 ‘터널 미술관’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양평의 작가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터널 미술관’이 없는데다가 자전거 애호가들이 그냥 한번 지나가게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자원이니까요. 양평을 찾은 자전거 애호가들이 다시 찾고 싶은 명품 ‘터널 미술관’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특별히 친한 작가분은…. 

“양평에서 자주 만나는 작가분들이 있습니다. 조각하는 박재연씨(여), 도자기 작업하는 이헌정씨(여), 시멘트로 작업하는 조각가 이영섭씨(남) 등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

“한국인으로는 백남준 선생이고, 서양인으로는 미국의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입니다. 백남준 선생은 삶 자체가 예술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훌륭한 예술가라면 그분처럼 삶 자체가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움직이는 미술인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인 칼더는 작품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죽을 때까지 꾸준하게 집중하면서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크게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작품 활동에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도 그런 점을 본받고 싶고, 조각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우리 시대를 초월하는 듯한 느낌의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송준 작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는지요?

“말로 일일이 설명을 하지 않고도 일반인들이 작품에서 감동을 느끼게 하는 작가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닌데, 거창한 이론을 대입하거나 화려한 말로써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못마땅하고 거저 진솔하고 담백하게 작품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젊은 작가 한송준은 그동안 대중과의 소통보다는 단절을 택했다. 보다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러다보니 그의 작품 한점 한점은 화려하게 비치기보다는 우리 이웃 아주머니처럼 살짝 말을 건넨다. 함께 마음여행을 떠나보자고.

■작가 한송준

1976년 부산에서 태어난 한송준은 2003년 충남대 예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양평군 지평면 무왕리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2005년 갤러리 반지하에서 ‘Connection展’을, 2008년 갤러리 토포하우스와 아트스페이스 H에서 ‘Facet of my mind展’을, 2009년 응갤러리에서 마음을 보이다展‘을 개최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정림건축, 삼영중공업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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