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범 간판문화연구소장

서종디자인운동본부·본지 공동기획-우리 마을 살리는 간판 만들기

관 주도 간판정비 ‘새마을운동’ 비유… “간판정비는 공동체 회복 운동”
주민주도 서종마을만들기와 의기투합… “간판에 지역정체성 담아야”

 

▲ 최범 소장은 간판 정비사업이 단순한 간판 교체가 아니라 지역공동체를 회복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관이 아니라 주민이 주도할 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03년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간판 정비사업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간판을 보기 좋게 정비해 매출을 올릴 목적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10년이 지난 지금 한계에 봉착했다. 전국 어디나 획일화된 간판을 양산하며 지역 특색을 죽이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것이다. 양평도 예외가 아니다. 양평읍과 양서면 등에 정비사업이 진행돼 같은 재질, 비슷한 모양의 간판이 즐비하다. 지역은 물론 마을, 심지어 상점 자체의 특색마저 없애버리는 간판은 더 이상 설치되어서는 안 된다.

주민 자발적 마을만들기 조직으로 비영리 민간단체인 ‘서종디자인운동본부’와 ‘양평시민의 소리’가 공동으로 좋은 간판에 관한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이 기사는 간판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해 진행하는 ‘마을을 살리는 개성 있는, 아름다운 간판’ 강의를 바탕으로 한다. 기사는 6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먼저 첫 번째 순서로 최범 간판문화연구소 소장으로부터 간판에 대한 총론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서종면 복지회관에서 있었다.

-간판문화연구소장이라니 생소하다. 소개를 하면.

“문화로서 경관으로서 간판을 연구한다. 대학에서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한동안 박원순 서울시장의 희망제작소에서 부설 간판디자인연구소장으로 일했다. 지금은 독립해 개인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간판이 잘 돼 있어야 선진국이고, 삼성제품 디자인 못지않게 길거리 쓰레기통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한마디로 좋은 간판이란 어떤 것인가.

“간판은 정보전달과 경관형성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우리 간판은 심한 불균형이다. 경관형성 기능은 완전히 무시된다. 좋은 간판이란 보기 좋은 간판이다. 여기서 ‘보기 좋다’는 것은 예쁜 것만이 아니다. 경관기능이 뛰어나면서도 눈에 잘 띄는 것을 말한다.”

-동네 간판은 다 비슷한데 우리나라 간판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나라 간판은 크기가 크고 수가 많고 디자인이 튀는 것이 3대 특징이다. 상가에 나가면 시각적으로 아주 혼란하다. 도시나 농촌이나 경상도나 전라도나 다 똑 같아 지역정체성들 드러내지 못한다. 자기 간판만 크고 잘 보이게 하려다 보니 생긴 결과인데 공동체가 상실된 이기주의의 극치다. 거의 난민촌 풍경과 흡사하다. 그래서 간판을 제대로 바꾸는 것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적인 삶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마을만들기와 간판은 어떤 관계인가.

“마을 경관을 지배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간판이다. 간판은 마을만들기의 매체이기도 하다. 마을만들기의 중요한 요소가 경관이고 그 경관을 결정하는 것이 간판이기 때문에 마을 만들기와 간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간판경관이 특색 있고 잘 돼 있는 곳이 있나.

“일본의 가나자와는 역사도시의 전통을 간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간판은 오래되고 크기도 작은데 일본 사람들은 지진이 나면 간판부터 떼서 피신한다. 나중에 장사를 하려면 간판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사동도 전통 거리간판이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삼청동은 상점주들의 개성으로 독특한 간판경관을 형성한 곳이다. 전북 진안은 2007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간판을 정비를 했고 지역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행정의 주도로 한 곳은 잘 된 곳이 한 곳도 없다. 행정이 주도하면 간판 새마을운동이 되고 만다.”

-그럼 어떻게 간판을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목표를 지역정체성 표현으로 잡고 민-관-전문가 3자가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부산 ‘광복로 시범가로 추진단’은 이렇게 추진단이 전권을 위임받아 성공했다. 이런 방식을 택해야 한다.”

-정비 후 유지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관에서 주도한 간판 정비는 유지관리가 안 된다. 6개월이 지나면 예날로 돌아간다. 유지관리는 주민들이 협약을 맺는 게 중요하다. 이 협약을 맺으면 그 지역에서 장사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광복로가 ‘광복로문화포럼’으로 주민협약을 맺었다. 그리고 특색 있는 간판을 이용해 지역홍보 프로그램을 만들면 그게 최고의 유지관리다. 주민협약을 맺기 위해, 유지관리를 위해 주민을 만나는 과정이 곧 마을만들기이기도 하다.”

-서종면의 간판을 본 소감은 어떤가.

“서울근교 간판의 심각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서울과 시골 간판의 나쁜 점을 다 갖고 있다. 문호리 상권을 쭉 둘러봤는데 마음에 드는 간판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처럼 자발적으로 간판디자인을 생각하고 마을디자인을 추진하는 ‘서종마을디자인운동본부’가 있어 서종에서만은 제대로 된 간판 정비사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관 주도가 아닌 100% 주민 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라 한달음에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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