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동 작가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인간에 대해 고민해야

“4대강사업으로 전 국토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다가 보상 문제로 마을주민 사이에 갈등과 증오심이 싹트고 있어요. 강과 동떨어져 있는 청운면 가현리도 4대강사업이 예산을 잡아먹는 블랙홀이 되는 바람에 도로를 포장하다 1㎞ 남짓 남은 구간을 공사할 예산이 없다고 중단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혀요? 4대강사업은 단순히 강의 문제를 넘어 인간성 파괴와도 연결됩니다.”

소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64) 씨의 말이다. 그는 청운면 가현리 자택에서 가진 「양평시민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전 국토가 공사장으로 변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다소 흥분하여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시종 쭈그린 자세로 그는 “세상이 너무나 가벼워졌어요.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하던 소설도, 시(詩)도 다 없어지고 장신구만 덩그러니 남았어요. 가치관이고 뭐고 돈이라는 문패가 붙으면 다 통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여기서 우리는 한번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물어보아야만 합니다”고 말했다.

작가는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경운동 유카리 화랑에서 첫 서예전시회 ‘한묵청연(翰墨淸緣·글을 통한 좋은 인연)’을 앞두고 10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약간의 뇌졸중 증세를 보인 탓이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열정적인 목소리를 카랑카랑하게 토해냈고, 다만 인생의 낙으로 삼았다(?)는 담배연기와 함께 마음이 맞는 벗을 만나면 2박3일 동안 ‘술기행’을 떠난다는 그의 전설(?)이 막을 내렸을 뿐이다.
 

▲ 김성동 작가는 “돈은 인간이 살면서 품위를 지키는 최소한의 수단이 되어야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물신숭배로 치닫는 우리 사회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문승연 기자

”글감옥에 갇혀 열심히 씁니다”

“이번 기회에 글감옥에서 빠져나오려 했는데, 오히려 더 굳센 쇠창살에 갇히게 되었어요. 병 핑계 삼아 글을 안 쓰려 했지만, 의사가 오히려 더 열심히 쓰라고 하더군요. 술, 담배를 끊고 매일 2시간씩 산을 오르며 내 생의 업보인 글을 쓰려고 합니다.”

-4대강사업으로 국토가 마구 파헤쳐지고 있는데도 세상은 왜 이리 조용한지요?

“먼저 종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문수 스님이 자신의 몸을 소신공양(燒身供養) 했는데도, 불교가 이를 이슈화 하여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을 막지 못했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주도해온 대학생들도 이제는 자기 살길을 찾느라 관심이 없어요. 대학이 거대한 취업학원으로 변한 탓이지요. 낭만과 꿈과 민족과 정의를 외친 대학생들에게 이젠 생명처럼 중요시했던 가치관이 다 사라져버렸어요. 안타깝습니다.”

-양평에는 4대강사업을 온 몸으로 저지하는 유기농 농민이 있지 않습니까?

“두물머리에서 4가구가 마지막까지 항전하고 있지요. 유기농 대회가 끝나 어차피 박살(?)나게 되어 있는데, 지는 싸움인줄 알면서도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느냐, 아니면 장엄하게 산화하느냐만 남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국민들의 관심이 없어져 이슈가 모아지지도 않고 기를 쓰지도 않는 바람에 문제가 쪼개지고 자기 밥그릇문제만 남은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정보 넘쳐나는 세상, 판단 능력 길러야

-가벼운 것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소설도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는커녕 인스턴트 커피처럼 신변잡기를 다룬 소설이 베스트셀러를 주무르고 있고….

“1866년(고종 3) 프랑스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했을 때(병인양요) 프랑스의 한 장교가 훗날 ‘조선인은 책을 읽는 민족이구나. 우리는 야만인이야.’하는 글을 썼다고 합니다. 민가(民家)를 약탈하는데 책이 없는 집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 조상들은 일상적으로 책을 좋아했습니다. 겸손해서 ‘제가 무엇을 아나요?’ 할 뿐이지, 조상들의 지식과 지혜는 대단했습니다.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정보는 아무런 소용과 의미가 없어요. 책을 통해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정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겁니다.”

작가는 「양평시민의소리」 신문이 종이로 인쇄되어 발행된다는 데 관심이 많다고 했다. 신문이 배달되었을 때 손에 묻어나는 잉크냄새를 맡으며 정보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요즘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지 않고 200자 원고지에 글을 쓰는 그의 습관도 이런 의식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지난 2007년 문학과지성사가 펴낸 한국문학선집에 게재된 충북대 이모 교수의 황당한 ‘작품세계 해설’ 사건은 그 후로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문학과지성사가 네 권짜리 ‘한국문학선집 1900~2000’을 펴내면서 내 작품 ‘오막살이 집 한 채’를 실은 것 까지는 좋았어요. 그런데 느닷없이 작품해설에 ‘김성동은 소설 ‘만다라’ 발표 이후 생계를 위해 문학의 순수성과 관련된 본격 문학에 집중하기보다는 추리소설을 창작하거나 신문에 역사소설을 연재하였다’고 되어 있는 거에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해설에 너무나 분노하여 ‘1인시위’라도 하려고 했었지요. 출판사와 대학교수가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어요. 작가가 무슨 힘이 있나요? 온통 장사꾼 세상으로 변하다보니 엄중해야 할 문학평론조차도 물들었는데….”

-소설 ‘만다라’는 초판과 개정판의 작품상의 결말이 달라졌습니다. 법운이 환속을 택하는 대신 ‘피안 행’ 차표를 들고 정거장으로 내달립니다. 작품의 결말이 변화한 이유가 있습니까?

“‘만다라’는 한창 혈기왕성할 때인 30대에 썼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불타오르는 열정만으로는 안 되지요. 그후 인생에 대해 더 공부하고 깊이 사색한 결과를 반영하다보니 결말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소설 ‘만다라’가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그런데 글로 먹고 사는 작가에게 번역에 대한 인세는 한 푼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국어를 비롯해 각종 외국어로 번역될 때마다 엄청난 인세를 챙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한국 문학이 일본 문학에 비해 외국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중판(불교), 돌판(바둑), 글판(문학)에서 살아오셨습니다. 어느 세상이 제일 좋던가요?

“6년 동안 ‘무(無)’자 화두를 붙잡고 선방과 토굴에서 지낸 것도 지금 보면 할 만했던 일(중판)이었어요. 다시 돌아가고픈 생각은 있지요. 만일 중판으로 돌아간다면 조계종 전통 사찰에서 춤꾼, 소리꾼, 영화쟁이, 글쟁이, 기자를 모두 불러놓고 멋진 문화사찰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소설 ‘목탁조’를 발표하자마자 승적도 없는데 승적을 박탈당한 웃지 못할 일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판에서는 프로 바둑에 입단할 직전까지 갔었지요. 글판은 현재진행형이고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절대적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고 힘도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민족에 대한 이야기,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 방황하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쓸 생각입니다.”

”양평은 의병의 고장”

-‘생태 행복도시, 희망의 양평’이라는 구호 속에 양평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산과 강, 물과 공기로 양평을 특징지우고 있는데,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양평은 어떤 고장입니까?

“물론 양평이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고 용문산, 중미산, 칠읍산, 백운봉 등 수려한 경관의 산을 자랑할 만하지요. 산과 강은 하늘이 내려준 것으로 우리가 잘 보호하고 가꾸면 됩니다. 그것보다 양평의 자랑거리는 ‘의병의 고장’이라는 정신적 가치에 있습니다. 대한제국 말기에 항일 의병장으로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남쪽에 신돌석(申乭石) 장군이 있었다면, 경기·충북을 중심으로 한 북쪽에 김백선(金伯善) 장군이 있었습니다. 용문산 포수 출신인 김백선 장군이 잇따라 일본군을 무너뜨리자 일본에서는 히로시마에서 훈련받은 특공대를 급파할 정도였습니다. 일부 의병은 충북 제천으로 가 활동하고, 일부 의병은 두물머리-임진강-압록강을 거쳐 만주로 가 활동했지요. 이처럼 의병의 못자리라고 불릴만한 양평은 의병의 고장답게 의병을 위로하는 의병제 겸 잔치를 열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군 단위 행사로 진행하다가 전국적 행사로 발돋움해야 하지요. 정신적 지주가 없는 오늘날, 평민으로서 온몸을 불사르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정신을 기린다면 축제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근대적 인물로는 몽양 여운형 선생도 있지 않습니까?

“몽양은 근대의 최고의 인물입니다. 몽양은 조선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에 우뚝솟은 인물로 진정한 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1919년 상해 모임에서 국호를 정할 때 몽양은 ‘대한민국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투표 결과가 1:46으로 나오자 그대로 따랐습니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 해도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몽양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바람에 좌우 양쪽의 협공을 받아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평시민의소리」 신문이 민주주의자로서의 몽양 여운형 선생을 제대로 조명하길 바랍니다.”

-양평은 농촌이면서도 서울과 인접한 덕분에 도시적인 분위기가 납니다. 농촌과 도시를 어떻게 조화롭게 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얽히고설켜 있어서 쉽지는 않아요. 먹거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마시는 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개별적 도덕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집단 전체의 문제로 파악해야 합니다. 특히 에너지 문제는 심각합니다. 강원도 홍천에서 최근 신재생에너지로 대기열을 이용한다는데, 수력·풍력·태양열 등 각종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모르는 걸 아는 게 깨달음”

-선생님께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전국을 떠돌아 다니셨는데, 만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에 대해 들려주세요.

“너무 거창하네요. 모르는 것을 아는 게 깨달음이라 생각합니다. 한 방에 깨달으면 다 된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이 아니에요. 아직도 깨달음을 쫓고 있는데, 지금까지 깨달은 게 있다면 ‘인생은 즐거워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좋았던 순간은 아주 짧고,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은 길어요. 그러니 즐겁게 사는 법을 아는 것이 최고의 깨달음 아니겠습니까?”

-돈이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는 세상인데….

“나도 처음엔 소설가 되면 수지맞는 장사인 줄 알았어요.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소설가 안했을 겁니다. 어떤 분야든지 10년을 하면 일이 손에 익어야 하고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갈수록 힘들어요. 알고 보니 나만 이런 게 아니고 세계의 대문호로 불리는 톨스토이나 까뮈도 그랬다고 합니다. 사실 좋은 글은 선풍기의 바람으로 날려 보내도 안날라가요. 그런데 요즘 글을 보면 일회용 반창고처럼 진지함이 없어요. 적어도 작가가 쓴 글을 보다가 인생을 고민하게 만들어 가출하게도 만들고 인생 전부를 걸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게 예술인데…. 돈은 인간이 살면서 품위를 지키는 도구일 뿐입니다. 돈이 목적이 되는 사회는 안 됩니다. 돈은 어디까지나 삶의 수단입니다.”

작가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양평시민의소리」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은 물론, 김백선 의병장처럼 양평의 숨은 인물을 찾아내 양평을 ‘의병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이와 함께 작가가 가진 재능을 「양평시민의소리」를 통해 세상에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양평시민의소리」 부설 ‘김성동 작가의 문학교실’과 ‘김성동 작가의 천자문교실’ 개설해 지식을 나누겠다는 포부다.

■작가 김성동 소개

작가 김성동은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1965년 서라벌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입산, 단편 ‘목탁조’가 1975년 ‘주간종교’에 당선됐으나 불교계를 비방한다는 이유로 있지도 않은 승적을 박탈당한 뒤 1976년 늦가을에 하산했다. 1978년 중편 ‘만다라’가 한국문학신인상에 당선되었으며, 1979년 ‘만다라’를 장편으로 개작 출간해 100만부가 넘게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소설집으로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붉은 단추’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길’ ‘집’ ‘국수(國手)’ ‘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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