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들어가는 주변경치와 아리수 강을 끼고 달려간 강하면 동오리는 올해 들어 유난히 찬바람이 불었지만 깊어가는 가을날을 만끽할 수 있던 시간이였다. 

 

▲ 강하면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윤달식 농업경영인과 최상옥 사무실장이 하우스에서 자라는 버섯들을 보고 있다.

강하면 윤달식 면회장은 1996년 표고버섯 작목으로 농업경영인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재배 하우스는 17동으로 한 동에 330.579㎡(100평)씩 따지면 꽤 넓은 공간에서 버섯을 키우고 있다.

올해 화재사고를 당해 아직 손 주변으로 화상 자욱이 남아 있는 그였지만 다행히 항상 밝고 명량한 성격은 잃지 않았고, 특유의 높은 톤의 목소리로 버섯재배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표고버섯은 3월에 종균을 넣으면 이듬해 7~8월에 첫 수확을 할 수 있고 1회 투입으로 2년간 6~7회 수확이 가능하다.

1.2~1.5m정도의 나무에 구멍을 뚫어 종균을 배양하면 나무 당 5,500원 정도가 소요된다.

이런 나무를 100평 규모의 하우스 한 동에 최소 300개 이상 넣는다.

나무를 사서 하우스에 배치하고 종균을 넣는 작업은 혼자 할 수 없어 그때마다 인부를 부른다.

버섯의 출하는 가락시장 농협을 통해 이루지고, 윤달식 면회장의 경우는 지역의 군부대에도 납품하고 있으며 지방공사로 납품하는 사람들도 있다.

버섯 종균 나무로는 강참나무(구담나무), 떡깔나무, 굴피나무 등을 사용하며 수명이 다한 나무는 땔감으로 처분된다. 

나무의 종류에 따라 버섯의 맛도 조금씩 달라지고 색깔도 다르다. 

버섯은 이외에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한다.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오는 날은 평소에 비해 색깔이 더욱 까맣게 변하고 맛도 달라진다. 가끔씩 표고버섯이 아닌 균이 생성되어 버섯 모양을 이루는 운지버섯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것은 항암효과가 있어 달여 먹을 수 있다고도 한다. 

버섯을 재배한 지 15년 정도가 된다는 윤 면회장은 “처음 표고버섯을 시작할 때만 해도 수익성이 좋았다”며 “그런데 최근에는 종균가격과 나무값이 너무 올라 지금은 인건비 빼먹기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생산단가는 계속 오르고 있지만 버섯가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갈수록 힘들어 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으로부터 나무를 대신해 톱밥으로 제작한 배지 버섯이 들어와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 배지 버섯재배는 한국에서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강상면에서도 이미 1개 농가가 재배를 하고 있다. 

버섯재배에 가장 핵심이 되는 종균은 전량 일본에서 손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균판매상들은 모두 개인업자들로써 종균배양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보상금도 지원해 주지 않는다.

윤 면회장도 지난해 종균의 문제로 버섯농사를 망쳤다. 그는 “버섯종균 배양은 전문가들도 가끔 실패할 만큼 어렵고 전문적인 일이라 개인 농가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지난해 투입한 종균에서 버섯이 나지 않아 회사 측에 문의 했지만 별다른 해결책을 듣지 못했다. 종균회사들이 모두 개인사업자들이라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때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 강하면 윤달식 면회장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윤 면회장이 버섯재배를 계속 해왔던 것은 타 작물보다 손이 덜 가고 수익성이 높아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산원가가 높아져 수익률도 많이 하락했다.

윤 면회장이 버섯재배로 1년에 올리는 총 매출은 5천만원 수준. 여기서 생산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자신의 인건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형편이라 주문이 들어온다고 날짜 맞추어 팔 수가 없다. 2주정도 여유를 주고 계약을 해야 시간에 맞춰 상품으로 출하 할 수 있다고 한다.

강하면의 표고버섯 작목반은 17농가로 이뤄져 있다.

작목반에서는 주로 종균구매나 나무구매 등의 문제를 결정하고 새로운 재배기법에 대한 공부도 함께 하는 등 회원간의 협조가 잘 이루어져 있어 단합이 잘 되는 작목반이라 말한다.

지난해에는 작목반에서 양평군 농촌나드리를 통해 버섯체험마을을 진행 시켜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버섯가공품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는 등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오리가 고향인 윤 면회장은 젊어서는 무역회사에서 일을 했었다.

그러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시작했는데 그때 옆에서 많은 도움을 줬던 분은 문필수 전 군의원이었다. 

이 분의 도움으로 후계농업경영인으로 선정되고 한우를 키우면서 농부의 삶을 시작했다.

5년간 흙을 밟으며 살아가던 윤 면회장은 당시 정해봉 회원이 강하면에도 새로운 작목을 해야 해보자고 제안을 해와 과감하게 버섯재배를 선택한 것이다.

윤 면회장의 아내인 김화순씨는 중국 길림성 출신으로 이들의 결혼에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15년 전 추수가 끝난 어느 날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중국여행을 가자고 해 바로 다음 날 여권을 만들어 중국으로 떠났다. 2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여행을 했었던 윤 면회장은 돌아오기 며칠 전에 ‘온김에 선이나 한번 보라’는 주위의 부추김에 마지못해 만난 사람이 지금의 집사람인 김화순씨였다.

배짱 좋은 남자 윤 면회장은 긴 시간 여행으로 사랑을 찾았다. 

현재는 슬하에 중학교에 다니는 연년생 남매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윤 면회장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학비도 염려되고 아이들 학교 문제로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서도 “농사는 버릴 수 없는 것이기에 갖고 가는데 예전만큼 소득이 오르지 않아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살짝 한숨을 내쉰다.

예전 무턱대고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 자신의 짝을 찾았던 그 배짱으로 다시 한 번 15년 전의 호황을 찾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땀흘리는 농업경영인 강하면 윤달식 면회장에게 온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낸다.

(사)한국농업경영인양평군연합회 사무실장 최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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