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례 사계절 정원 이야기

시골에 내려와 텃밭에 갖은 채소를 키웠지만 나는 아욱을 심지 않았다. 아욱국의 참 맛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목구멍에서 부드럽게 내려가는 아욱 된장 죽이 그립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아욱을 기르려면 나한테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 이유를 삼십여 년 전에 쓴 시로 대신하고자 한다.

된장국

감자밭 사이 아욱 뜯으러 갔다

그냥 돌아왔습니다.

조그마한 꽃이라도 맺어

일에 지쳐 속병 든 어머니

환하게 웃게 해 주거라.

둑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빈 손인 철없는

딸내미를 본 어머니

“지천이 꽃인디

지랄이다 지랄이다.”

시뻘건 햇살이 떨어지는

낫을 휘어잡고

연한 아욱을 북북 베어

수리조합 둑 위에 집어던지며

가쁜 숨 몰아쉬자

물살에 애기부들이 파들거렸습니다.

부엌에서 아욱이 한 숨 죽을 때

바지 걷어 부치고

모 뿌리만큼 단단한 종아리

논에서 파랗게 나오던 젊었을 적 아버지는

오늘 뜬 모처럼 둥둥 떠

안마당까지 밀려오고

삐걱대는 소독기통 메고

고추밭 오르락내리락하던 어머니

양 어깨에 패인 자국이 선연한데

쓰디쓴 침 가득 문 어머니가

누렇게 떠 비척비척 샘가에 앉자

어디선가 흐드득 울음소리 들려왔습니다.

1990년 8월

 

나는 나름 내 아픔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아욱 대신 당아욱이라는 화초를 키웠나 보다. 올해도 파종을 했으니 서리 내릴 때까지 꽃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당아욱은 커먼말로우, 또는 블루말로우라고 하는데 잎사귀와 꽃이 아욱과 흡사하지만 자색의 꽃이 진하고 크다. 잎사귀는 아욱처럼 채소로 활용 가능하다고 하는데 먹어보지는 않았다. 작년에는 아래 텃밭에 심었다가 잎이 나오는 족족 고라니가 냠냠 자시는 바람에 꽃을 제대로 보지 못 했다. 당아욱 꽃을 말렸다가 차로도 끓여 마실 수 있는데 푸른빛이 우러난다. 그래서 블루말로우라고 부르는 것 같다.

당아욱 푸른 꽃차에 레몬이나 산 성분을 첨가하면 분홍빛으로 변화한다고 해서 몇 번 시험 삼아 해보기도 했다. 꽃차는 특별한 맛과 향은 없지만 마법을 부리는 과정이 즐거움을 주는 건 확실하다. 꽃차를 만들어 아이가 있는 집에 선물을 하면 좋을 듯하니, 올해 실천해야 겠다.

당아욱으로 만든 고약이 마법에 걸린 인간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고 전해진다는데 진짜 마법의 힘이 통했나 보다. 올해 아욱 씨를 구해 텃밭 곳곳에 뿌렸다. 아욱국과 아욱죽과 아욱밥을 해 먹을 생각을 하니 언제 뭣 때문에 마음이 아팠냐는 듯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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