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지 말고 항상 마음의 여유 가져야

 

벌써 9월. 한해도 거의 다 가서 추수 때가 다가온다.
벼농사 중 직파는 실패 했지만(피 밭인지 풀밭인지 구분이 안 간다), 나머지는 잘 되고 있는 듯 보인다. 처음에는 남들보다 자라는 것이 늦다느니, 비료를 안줘 벼가 안자라느니 말들을 해서 속으로 걱정도 좀 되었었는데, 이삭이 나오고 난 다음에는 아버지도 그렇고 사촌형도 그렇고 벼가 잘 되었다고 하신다. 나는 잘 되었는지 못되었는지 판단도 안되지만…^^;
▲ 지난 5월 모내기를 하고 있는 원길호씨
그런데, 이삭 출수 일주일 후에 주는 저녁밥(자연농업 자재들로 만든 영양제 등)은 계속되는 비(정말 하루도 비가 안 온 날이 없다) 때문에 주지 못했다. 게다가 이번 태풍으로 일부가 쓰러졌다. 
첫 번째 태풍은 거셌지만 바람만 불어서 작은 하우스 하나가 벗겨지고 대추나 개복숭아나무에 피해가 있었으나 벼는 문제 없었는데, 바람도 별로 불지 않은 두 번째 태풍에는 비가 많이 와서 피해가 있었다. 자연농업 방식대로 하면 태풍에 쓰러짐이 없다고 했는데, 내가 뭔가를 잘못 했는지 태풍 다음 날 돌아보니 꽤 쓰러졌다. 쓰러진 날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대궁이 물러져서 세울 수가 없다고 해서 그날 아침부터 짚 한 단을 허리에 메고 작업을 시작했다. 혼자서 작업을 했는데, 하다 보니 허리는 아프고 발은 빠지고 날은 덥고 진도는 느리고…… 다섯 시간 정도 하니까 한 다랭이의 절반(대략 30평 정도) 밖에 끝내지를 못했다. 
 
말 많고 탈 많은 자연 양계는 다행히 건축 허가가 떨어졌다. 각 시군 마다 조례가 다르기 때문에 미리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관련 공무원을 만나서 축사 허가 관련해서 문의를 했을 때 담당자가 ‘요즘 축사 허가 잘 안 나는데…’ 라고 말할 정도로 허가가 잘 안 난다고 한다. 특히 민가가 가까이 있거나 민원 발생 소지가 있으면 힘들다고 한다. 허가 떨어지기 까지 한 달 정도 걸렸는데, 절차 중에 이장에게 축사를 지어도 문제가 없을 지 확인하는 절차도 있기 때문에 잘 알아봐야 할 듯하다. 우리 집이 마을과 2Km 정도 떨어져 있는데도 마을에서 오염이다 뭐다 얘기가 나온 것을 생각할 때 쉽게 생각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다행히 큰 고비는 넘었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우선 축사를 건축해야 한다. 조카 친구를 통해 자연 양계 도면을 주고 시뮬레이션을 해 봤는데 눈이 10Cm 쌓이면 무너진다고 한다. 양평은 30Cm 가량 올 때도 있기 때문에 철골을 좀 더 보강을 하거나 기울기를 높이거나 아니면 지붕 곡면을 포기하고 평면으로 해야 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번과 같은 태풍에도 피해가 안 가게끔 고려를 해야 해서 좀 시간이 걸릴 듯하다. 
 
병아리 입추 시기도 다시 검토해 봐야 한다. 추천하는 시기는 10월 또는 3월. 그 때 입추하면 추운 시기이기 때문에 솜털이 많이 자라고 튼튼하게 자란다고 한다. 물론 잘못하면 동사할 수도 있다지만 어린 시기에 겨울을 나면 웬만한 병은 이겨낸다고 한다. 육추상자(병아리 시기에 지내는 병아리 집)와 중추상자(중 병아리 시기), 먹이통(대, 중, 소), 횃대 및 산란상도 제작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닭이 먹을 먹이도 준비를 해야 한다. 병아리 시기에는 통 현미와 댓잎을 먹이고, 그 이후에는 직접 만든 사료를 먹일 생각이다. 시중에 시판되는 사료는 먹일 계획이 없다. GMO 옥수수가 대부분이고 오메가6과 오메가3의 비율이 좋지 못하여 건강한 먹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겨울에 먹을 청초도 준비를 해야 한다. 원래는 배추를 먹일 계획이어서 배추 모종과 밭을 준비해 놨는데, 좀 더 알아보고 어떻게 할 지 결정을 해야 한다.
 
벌써 귀농한지 5개월이 다 되어 간다. 아직까지 쌀 이외에는 별다른 소득이 없고 몸은 힘들지만 귀농한 것을 후회에 본 적은 없다. 프로그래머로 일할 때는 일과시간이 정해져 있고 야근이라도 있는 날이면 짜증만 났었다. 그런데 농사일을 해 보니, 일과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해 뜨면 일어나서 일을 나가고 해가 지면 일이 끝난다. 일하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해가 길어서 일을 오래한다고 투덜대기 보다는 일이 끝나지 않아 아쉬워한다. 물론 안 하던 육체노동이 쉽지는 않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적다 보니 살맛은 난다. 가끔 서울에 올라갈 때 만나는 사람들이 얼굴 좋아졌다는 얘기를 할 때 귀농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다 보니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지쳐갔다.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토착미생물도 3번이나 실패했고 그 이후에는 장마와 계속되는 비 때문에 손을 놓고 있다. 양계는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가고 있다. 귀농 때 결심한 내용들이 상황에 밀려 조금씩 퇴색해지는 부분도 생겼다. 
 
일 진행이 더디다 보니, 글 소재가 부족해 쓸 내용이 없고, 글 쓰는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 상태에서 억지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글 연재는 일단 여기서 마무리 하려고 한다. 처음 의욕에 차서 글을 쓸 때는 잘 몰랐지만, 연재가 계속 되니 조금씩 글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글을 마무리 하기로 한 이후, 교육에 참석했을 때 양평에서 참석하신 몇 분과 얘기 도중에 어떤 여성분이 ‘혹시 양평 시민의 소리에 기고하시는 분 아니세요?’ 라는 질문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기분이 참 묘했다. 글이라고는 첨 써봐서 별로 재미는 없을 텐데 잘 보았다니 고맙기 그지없다. 그 동안 재미없는 글을 봐주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독자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못 다한 소식은 개인 블로그에 글을 올릴 생각이니 관심 있으신 분은 찾아와서 댓글이라도 남기시면 기쁜 마음으로 환영할 생각이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지금까지처럼 ‘~카더라’라는 식의 남의 얘기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깨달은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원길호의 농촌정착기'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바쁜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귀농일기를 연재해 주신 원길호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초보농사꾼을 탈피하고 우리들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한 사람의 농부로서 거듭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콩세알 귀농일기’ 블로그(http://3bean.tistory.com/)를 방문하시면 더욱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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