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례 사계절 정원 이야기- 나물 정원

마타리 연한 잎은 나물로 먹을 수 있고 한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계절에 노란 꽃이 예뻐 정원과 텃밭 한쪽에 키우고 있다. 마타리는 뿌리에서 장 썩은 냄새가 난다고 해서 패장이라는 속명을 가지고 있다. 마타리 잎과 줄기 말린 것을 소염치료나 고름 빼는 데 사용했다고도 한다.

마타리를 종기 치료제로 썼다 하니 한수 더 뜬 내 상상력은 정조의 종기 치료를 했던 떠돌이 고약장수한테 다다른다. 정조가 한창 나이일 때 목 뒤에서 시작한 종기가 얼굴로 퍼지며 정조를 무던히 괴롭혔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치종청(治腫廳)이라는 관청까지 두어 국가시책으로 종기를 다스리려 했지만 종기는 조정에서도 잡지 못했다. 민간에서도 종기는 호환만큼이나 무서운 것으로 여기지만 종기에 맞설 뾰족한 대안이 없어 전전긍긍 대는 일상과 맞닥뜨려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세종· 문종·중종·성종·효종·현종이 고질적인 종기로 고생을 했으며, 효종은 오른쪽 귀밑에 종기가 생겨 탕약을 먹고 촉농고(促膿膏)를 붙였으나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하다 어의가 혈맥을 잘못 찔러 왕을 잡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왕들은 대대로 등창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정조도 등창에서 시작해서 목덜미로 턱으로 얼굴로 사정을 두지 않고 번져갔다. 특단의 방책을 찾아야 했지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방책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즈음 피재길이라는 떠돌이 고약장수가 천거되었다. 기어이 고약장수는 왕을 잡고 왕은 피재길을 잡을 것이라는 예상이 구중궁궐을 불길한 기운에 빠뜨리게 했으리라.

어의까지 손을 떼고 전국의 유명하다는 의원들이 속속 궁에 불려들어 갔지만 진척이 없는 상태에서 미천한 고약장수는 왕 앞에서 사흘이면 물기가 빠질 거라 장담했다고 한다. 그는 전문 의원과정을 거치기는커녕 한글도 못 읽는 까막눈이었기에 주위의 반대는 상상을 초월했으리라. 정조와는 시시각각 대립각을 세우던 노론이야 말할 것도 없었을 테고 궁에 들어오는 의원이라는 자가 시장 바닥에서 굴러먹던 한심한 자라니, 왕한테 호의적이던 사대부들조차 반대기류가 심했을 거라는 짐작은 억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피재길이 펼치는 의술이라는 게 고작 동식물의 이상한 것들을 고아 만든 고약으로 종기 치료만 한다고 하니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무릇 의원이라 함은, 침을 놓고 탕약을 지어야 하건만 그는 하다못해 구리침도 가지고 다니지 않을뿐더러 탕약조차 짓지 못한다 하니 돌팔이 취급을 당하는 건 당연했으리라. 하지만 그가 만든 고약을 붙이고 난 다음에 종기를 잡았으니, 정조는 그의 노고를 이렇게 치하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세상에 뜻밖에도 숨은 솜씨로 세상을 놀래키는 자가 바로 너로구나. 비장의 의술로 왕을 살렸으나 이자가 까막눈이라지. 의서도 볼 수 없고 침도 못 꽂는 자가 무슨 의원이라더냐. 꼬부라진 이 늙은이가 죄인이더냐? 까막눈인 게 죄가 되느냐 묻지 않느냐?”

왕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는 신하가 없었다. 방바닥이 닳도록 조아린 피재길의 굽은 어깨가 흔들렸고 신하들은 왕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다.

“쯧쯧, 죄가 된다는 게로구나. 의서로 배우지 않은 너를 세상이 탓하는 줄 몰랐단 말이냐. 틀에 박힌 의서조차 접하지 못한 미욱한 자가 세상을 현혹하고 다녔으면 얼마나 현혹했겠느냐. 한미하다 하나 피의원이야 말로 가히 명의라 부를만하구나. 피의원의 고약이야말로 신약이라 칭할 만하니 피의원은 고개를 들어라.”

정조의 음성이 나지막하게 울리는 듯하다. 떠돌이 고약장수 피재길은 산과 들에 깔린 흔해 빠진 동식물의 약효성분을 고아 고약을 만들었을 텐데, 혹 마타리 잎도 그 약재 목록에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

한여름 마타리 꽃이 참으로 어여쁘다. 어렸을 때 산과 들에 흔했던 마타리를 떠올리며 올해도 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