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례 사계절 정원 이야기-나물 정원

‘까실쑥부쟁이’라는 이름을 알기까지 삼 년의 세월이 걸렸다. 식물도감을 뒤져도 아리송하고 사진을 찍어 웹에 올려 식물 고수들한테 조언을 들어도 의구심은 어찌할 수 없었다. 섬쑥부쟁인 부지깽이나물이라고 했는데 어딘지 아닌 듯 했다. 결국 작년에 부지깽이 나물을 전문 농장에서 사서 심는 것으로 내 식물 이름 알기의 지난한 과정은 끝을 맺었다.

혹자는, 쑥부쟁이면 어떻고 부지깽이 나물이면 어떠냐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식물 이름을 알고 싶다는 내게 타박을 했다. 하지만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앞으로 쭈욱, 뜯어먹을 나물인데 이름을 몰라서야 쓰나. 집착이 아니라 개운하지 않은 뒷맛 때문이라도 내가 공들여 키우는 식물 이름쯤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겨울 여타의 나물들은 죽은 듯 산 듯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느라 조용한데 까실쑥부쟁이는 솜털이 난 상록의 잎을 유지한 채 살아 있으니 강한 생명력 하나만으로도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셈이다. 쑥부쟁이 종류를 열거하자면 참으로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가을에 산과 들에 연보랏빛으로 피어나는 것들이 쑥부쟁이 종류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전설이나 이야기가 대개 그렇듯이 쑥부쟁이라는 어원 역시, 가난한 삶의 범주를 벗어나서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집이나 딸자식의 희생쯤이야 당연시 되어 식상함의 끝을 장식하지만, 주림이 일상이던 환경에서는 단골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딸자식의 팔자가 다 그렇지 뭐 하는 탄식과 연민은 쑥부쟁이라는 이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쑥을 뜯어야 하는 불쟁이의 딸이 굶어 죽은 자리에 돋아났다고 해서 쑥부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을 떠올리자니 그까짓 나물인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따라오는 서사가 어쩐지 짠하다. 그래서 이 겨울에도 이파리가 살아있는 거니! 어린 동생들을 살리자고 죽자 사자 기를 썼을 불쟁이 딸의 혼이 깃든 쑥부쟁이라는 이름이 슬프구나.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다. 까실쑥부쟁이가 꽃 피는 10월 뒷마당을 떠올려보자. 보름달이 떠오른 듯 오랫동안 훤해서 누가 보더라도 한 눈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꽃은 또 어찌나 오래가는지 금세 질까 애달플 필요도 없다. 약간 푸른빛이 감도는 흰빛은 애잔하면서도 신비스럽기까지 해서 자꾸 자랑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최소한 내 눈에는 해마다 눈부시게 다가온다. 내게 까실쑥부쟁이는 화초로, 나물로 격한 사랑을 받는다.

작년에는 낫으로 쓱쓱 베어 나물을 해먹을 수 있을 정도로 포기가 늘어났다. 서너 번 뜯어먹었는데도 꽃을 피웠으니 대단한 생존능력을 증명한 셈이다. 식물들은 생장점을 자르면 꽃을 보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두메부추는 꽃을 보고 씨앗을 받으려면 잘라먹는 걸 좀 참아야 한다.

까실쑥부쟁이를 심은 곳이 지금은 나물 밭이 되었지만, 첫 해는 썰렁해 가장자리에 옥수수를 심었다. 옥수수는 거름도 많이 줘야 하고 이파리는 얼마나 억세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지, 제대로 따먹지도 못했지만 옥수숫대를 뽑아내는 데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다시는 안 심겠다고 다짐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잎을 나물로 먹을 수 있거나, 대를 활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볏과 식물은 왜 그렇게 질기기만 할까 하면서 인간인 나를 기준으로 불만을 표했다. 볏과 식물이 동물에게 뜯어 먹히지 않기 위해 유리를 만드는 규소라는 광물을 잎과 줄기에 축적하는 방식으로 제 몸을 변화시켰다는 글을 어디서 보고는 지극히 이기적인 내 관점과 전처리 과정 없는 무식하고도 편협한 사고가 무색해서 식물들의 진화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쑥부쟁이가 가는 솜털로 온몸을 감싸 겨울을 나듯, 식물들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오늘을 살며 진화의 역사를 써가고 있는 중인 걸 깜박 잊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씨불거렸음을 실토한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워 외출도 꺼리는 인간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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