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근 수필가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말레이시아에서 ‘한 때는 부의 척도였으나 지금은 기계에 밀려 사라져 가는 물소’라는 제목의 사진을 보았다. 물 위로 몸을 내놓은 채 찍힌 물소 떼의 사진이다. 수백 년간 위용도 당당하게 장관이었을 물소들의 모습이 지금은 갈 곳 없는 모습이라니 서글픈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지나간 옛일이 생각난다.

옛날 손재주가 있어서 옷을 만들어 입고, 머리도 잘 매만졌던 나는 자격증을 따겠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다니면서 저녁에는 양재학원에 등록해 재단과 디자인을 배웠다. 그 당시에는 미용 기술보다 양재가 더 대우를 받았으므로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재단과 디자인을 배우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기성복이 뿌리를 내리면서 나같이 재단을 배운 사람은 아무 쓸모도 없게 되었다. 대신 헤어숍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미장원의 미용사는 점점 격이 오르고 많이 필요해져 헤어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6개월이나 일 년에 한 번 하던 퍼머를 3개월 가게 하더니 요즈음은 한 달에 한 번 미장원에 가서 다듬고 자르고 두 달이 못되어 퍼머를 새로 해야 한다. 옷은 사 입으면 되지만 머리는 그럴 수가 없다. 30년도 안 되는 사이 머리를 만지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뒤바뀐 것이다. 30년은 커녕 예전에는 한 철에 한 번 바뀌던 옷의 디자인이 요즈음에는 보름 단위로 바뀐다고 한다. 디자이너도 필요하고 재단사도 필요하겠지만 옛날 개개인이 옷을 맞추거나 만들어 입던 때와는 다르다. 소수의 인원이 기계의 힘을 빌려 넘치는 양을 공급하게 된 것이다.

백 년 전에는 생기는 대로 열 명씩 낳던 아이를 한국 전쟁 후에는 대여섯 명으로 줄여 낳았다. 그 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에 맞추어 둘씩 낳던 아이를 지금은 결혼하고도 안 낳는 신세대 부부들이 많다. 할아버지-아버지-손자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유교적 사상도 가계를 부정하는 개인주의 사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개인택시가 처음 나왔을 때 잠실에 사는 어떤 사람이 집을 팔아 차를 사서 개인택시 기사가 되었다고 한다. 몇 년 새 자동차 값은 내리고 집값은 올라 손해를 보았다는 딱한 이야기도 들었다. 공산품이나 전자제품은 나날이 발전하니 서둘러 바꿀 필요가 없다. 내 생애 동안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이 있나. 생각해 보니 없다. 부모의 사랑만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부모님도 너무 오래 사시면 귀찮아 하는 세상이다.

옛날 갓을 만들거나 꽃신을 만들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 갔을까. 물소를 기르고 몰던 사람들도 물소가 줄어듦에 따라 직업을 잃었을 것이다. 무엇을 해야 오래도록 변치 않는 직업을 갖게 되고 필요한 사람이 될까. 앞으로 수명이 길어지면 일생에 서 너 개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다. 여름의 길목에 앉아 사라져 가는 것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애달프다.

우리나라에 전화가 처음 개통 되었을 때 전화는 아무나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보급이 되었을 때도 백색전화라 해서 무척 비쌌다. 요즈음은 일주일 단위로 새 모델의 휴대전화가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영원할 것 같던 사계절이 분명한 한반도의 기후도 변해 이제는 아열대 기후가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우스갯소리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과 생노병사의 진리 뿐이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바뀌고 변한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 일이다.

윤상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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