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규 수필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모호한 경계에서 시간도 나도 방황한다. 시간이 인간을 희롱하는 것인가, 인간이 시간을 희롱하는 것인가. 내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는 모를 일이다.

오후 다섯 시, 운동 겸 산책에 나섰다. 강변 산책로를 돌아 문호 천변 길로 내려섰다. 해가 산 너머로 설핏 내려앉고 있었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게 부는 바람에도 물가를 차지한 갈대들이 온몸을 흔들어 춤을 춘다. 겨울인데도 며칠 전에 비가 내려선 지 징검다리를 넘치는 물이 장관이다. 어느 곳에서는 콸콸 소리를 내며 격하게 흐르다가 고인 듯 잔잔해진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리라. 더없이 침잠에 빠져들 때가 있는가 하면 격동의 시기를 겪어야 할 때도 있다. 한동안 정신 차리지 못할 만큼 지내다 보면 다시 안정을 되찾기도 한다. 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퇴보하기 마련이고, 지나치게 격하면 일을 그르치니 중심을 잡기가 쉬운 게 아니다. 지금 내 마음의 시냇물은 어떻게 흐르는 걸까. 갈피를 잡기 어렵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넌다. 징검돌 하나하나가 견고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중장비가 바닥을 깊이 파고 견고하게 심은 덕분이다. 조금씩 흔들거리는 징검돌을 뒤뚱거리며 조심스럽게 건너는 게 징검다리 맛인데, 편히 안전하게 건널 수 있으니 고마운 건가, 아쉬운 건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던 옛말이 이제는 헛말이 된 듯싶다. 하지만 요즘처럼 급변하는 때일수록 일부러라도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그 본래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좋으리라.

가운데쯤 징검돌에 쭈그려 앉는다. 물 수런거리는 소리가 청량하다. 귓속 때를 씻어내릴 듯하고 마음속 눅진한 때도 벗겨줄 것 같다.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산 너머로 지는 해에 뭉게구름이 발그레 익어 간다. 강 건넛산 능선은 더욱 뚜렷해지고 숲은 어둠을 숙명처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모양새다.

물고기들도 겨울잠을 자고 있겠지. 지난가을에는 수면을 박차고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는데. 누가 누가 더 높이, 더 멋지게 튀어 오르나 시합을 했던 걸까? 각기 나름대로 힘껏 뛰었으리라. 어떤 녀석은 한 뼘이나 될 정도로 높이 튀어 오르는데, 아직 어린 녀석은 시늉에 그치고 말았지. 이번 겨울을 지내면 그 어린 녀석도 한껏 뛰어올라 은빛 비늘을 자랑하겠지. 더 높이 뛰어올라야 더 많은 시간을 누리고, 은빛 찬란한 모습을 연출할 텐데, 온 힘 다해 튀어 올랐지만 잠깐만 공중에 머물던 물고기들이었지. 그러나 너무 오래 바깥에 머물러도 안 될 일, 그거면 족하리라. 자족할 줄 몰라 그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누가 가르치거나 이끌어주지 않아도 자족을 실천하는 물고기들을 미물이라 치부하는 건 무엇이란 말인가.

갈댓잎을 오가며 앉았다 날아올랐다 재주를 부리던 물잠자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때 개울을 오르락내리락 나를 희롱하는 듯하던 물잠자리 한 마리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무척이나 아쉬웠을 게다. 하긴 물잠자리도 겨우내 쉴 곳을 찾다가 어딘가에 알을 슬어놓고 자진했을까? 자족할 줄 모르고 쓸데없는 욕심으로 입술 삐죽 내밀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물잠자리의 날갯짓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던 기억이 새롭다.

어느덧 해는 서산 너머로 사라지고 구름은 한층 농익고 있었다. 아주 붉은 것도 분홍색도 아닌, 신비에 가까운 파스텔 색조를 띠는 하늘로 변화시키는 신의 연출력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점점 쪼글쪼글해 잿빛으로 변해 가는 내 얼굴도 불그레해지는 걸 느낀다. 검버섯과 기미 잡티가 날로 번지는 것도 시간의 흐름 때문인즉, 순응하는 것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뜻 인정하기 싫은 것은 또 무슨 심보란 말인가.

그새 땅거미가 깔린다. 서둘러 누리를 덮어 버리는 으스름이 빛과 어둠을 화해시키는 조정자임이 틀림없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가운데 멈춘 듯 고요하던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었는데…. 황혼의 때에 상념에 젖어 들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를 기꺼이 내준 징검돌이 고맙다. 나는 어느 골짜기에서 누구의 징검돌이 되어 줄까나?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