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례 사계절 정원 이야기 - 키친 정원

배초향(Agastache ruhisa)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속명: 방앳잎, 야곽향 개화기: 7-9월 높이:40-150cm

향이 강해 풀이기를 스스로 거부했다고 해서 배초향이라고 부르는 방아를 키우기 시작한 건 삼년 전이다. 하도 여러 가지 씨앗을 뿌려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키우다가 가을 무렵에 작은 자주방망이 꽃대가 올라와 책을 뒤져서 알게 된 것이 배초향이다.

첫 해는 그저 이름과 생김새를 익히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세력도 볼품없어 시선을 오래 잡아끌지도 못했던 풀떼기에 그쳤던 것 같다. 헌데 작년 봄이 될 무렵 땅 위에 자줏빛의 싹이 한 움큼 세력을 불려 겨울 추위를 이기고 올라오는데 넋을 빼고 한참을 쳐다봤다.

경상도에서는 마당가나 텃밭 가에 한 두 포기를 키워 된장찌개에도 넣어먹고 추어탕과 매운탕에 빠지면 안 되는 식재료로 쓰인다지만 방앗잎으로, 방앳잎으로 불리는 방아를 충청도에서 자란 나는 본 적이 없다. 식물관련 도서에서 배초향을 접한 뒤 언젠가는 방아잎 부침개를 먹어보리라 생각했던 적은 있었던 것 같다. 향이 강해 호불호가 갈려서인지 어디에서도 방아 부침개를 파는 곳을 못 보았다.

음식의 전래라는 측면에서 보면 음식문화만큼 강고한 보수성을 지닌 것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전래된 건 임진란 이후라고 하지만 고추가 대중화 된 건 18세기 이후로 점쳐진다고 하니 조선 팔도에서 고추를 수용한 건 근 삼백여년의 세월이 흘러서다. 이제는 정보의 공유와 세계화로 옛날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성인이 돼서 먹으려면 나름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 나이 되도록 먹어보지 못했을 만한 사정과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기에 이해와 결단이 요구되기도 한다. 나는 주부이기에 나 스스로 먹지 못하는 것과 거부감 사이의 역학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유연함을 발휘할 책무를 스스로 부여할 때가 있다. 애들 어려서는 편식의 우려와 더 나아가 사고의 유연함까지 생각한 비약의 극성의 떨었다면 지금은 늙어가는 나와 남편의 외고집과 단조로운 식탐을 경계해서다. 먹어보지 않은 음식에 대한 거부감, 약간의 찜찜한, 약간의 두려움 앞에서 때로는 과한 리액션을 취하고 모험심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다.

작년에 배초향 잎으로 부침개를 만들어 봤다. 배초향 말고는 아무 것도 넣지 않았다. “순수하게 방아잎의 향기를 맛보고 싶어서 단순한 식재료를 이용했어요.”가 아니라 경상도식 방아 부침개는 그렇게 먹는 줄 알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방아잎으로 시퍼렇게 물이 든 부침개를 입에 넣으며 “향이 끝내주네. 입에 박하사탕을 문 것처럼 목이 화해. 독특하네. 독특해.” 어쩌고저쩌고 떠들며 식구들의 젓가락질을 부추기느라 나 혼자 지레 맛있는 척 했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식구들의 젓가락질은 고무되지 않았다. 나 혼자 몇 판의 부침개를 다 먹었어도 멀쩡했던 건 배초향은 독이 없어 중독 현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거다. 올 해에는 배초향 어린 순을 삶아 무쳐 먹는 도전을 할 것이다.

월동 후 싹 트는 배초향

봄에는 참으로 볼 것이 많다. 봄이라는 어원이 겨우 내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볼 수 없던 것들이 여기저기서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바람에 볼 것이 많아, ‘보다.’ 라는 동사가 명사로 ‘봄’이 되었다고도 한다. 나는 올해 봄이 되면 어린 순의 배초향을 볼 것이다. 이미 예약해 놨으니 대지는 내게 보여 줘야 하고 배초향은 살아있어야 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튼실하게. 나 또한 이 겨울 웅크리지 말고 움직이자고 주문한다.

정원에 허브 하나를 심으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배초향을 심을 것이다. 노지월동력 우수하지, 나물로, 부침개로, 깻잎 대용의 쌈으로, 비린내 제거용으로 이모저모 쓸모가 많아 허술하게 보아서는 왠지 손해가 날 것 같은 느낌의 배초향! 한 달 이상 가는 꽃은 어찌나 훌륭한지, 입이 다 아플 지경이다. 배초향은 알면 알수록 멋진 우리 허브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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