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희 서울시립대 교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이라고 부른다. 속세를 떠나 현실 도피적인 학구적 태도를 뜻하는 말이다. 일본의 문예평론가가 쓴 ‘상아탑을 나오고서’라는 책에서 한 교수가 연구실에 파묻혀 노일전쟁조차 알지 못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필자는 30년 가까이 대학에 몸담으면서 우리의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세상의 거울’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매년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경향을 보면 세상의 모습이 거울처럼 투영되고 있다. 고고한 상아탑의 이미지는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관심이 제일 큰 대학입시보다는 대학원입시가 세상 변화의 영향을 더 받는다.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시립대에는 야간 특수대학원에 부동산학과가 있다. 이 학과에는 직장인이지만, 부동산 전문가가 되고 싶은 이들이 주로 입학한다. 초기에는 응모자들이 대부분 공무원이나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초보자들이었다. 최근에는 감정평가사, 세무사, 회계사는 물론이고 변호사 등으로 대표되는 각계의 전문가 지원이 크게 늘었다. 얼마 전 면접에서 현직 의사가 지원해서 위원들이 깜짝 놀랐다. 두 가지 분야의 지식을 갖추려는 것을 나무랄 이유는 없지만,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교수는 “질병 치료를 힘들게 하기보다는 건물주가 되고 싶어 지원한 것 같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탄탄하게 기반을 가진 전문가들이 왜 고생스럽게 야간대학원에 다닐까 궁금할 수 있다. 아마도 ‘이 대학원에서 부동산을 공부해 전문가도 되고 돈 벌 노하우도 배워보자’, ‘대학원에 다니면서 공무원이나 부동산 전문가를 동기로 만들고 선후배간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도움을 받자’ 등의 목적일 수 있다. 이렇게 대학원이 고유기능인 전문가 교육 역할보다 사회 현실에 큰 영향을 받는다. 부동산이 모두의 관심사이다 보니 이러한 왜곡이 대학에도 나타난다. 필자가 여러 나라의 많은 대학을 다녀보았으나 우리처럼 대학에 부동산학과가 많은 경우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학생들이 몰리니 특히 사립대학은 바로 학과를 만들어 수요에 대응한다.

이와는 정반대로 학문발전의 근간인 일반대학원 석사과정은 고사 직전이다. 시쳇말로 파리를 날릴 정도로 지원자가 급감했다. 우리나라 유명대학들도 다르지 않다. 이상하게도 박사과정 지원자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받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교수나 연구자가 되겠다는 경우는 손꼽을 정도라 문제가 심각하다. 필자 소속학과의 경우 올 초에 박사과정생은 22명이, 석사과정은 단 1명이 입학했다.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학생들은 학위를 받고 제대로 대우받으며 취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주로 연구소 취업을 원하지만,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자리밖에 없다. 처우가 열악하니 고생해서 일반대학원 석사과정에 지원할 이유가 없다. 반면에 박사 학위를 받고 싶은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연유가 있다. 박사학위라는 명예 획득이 그것이다. 특히 정치하려는 이들도 일정 부분 있다. 어느 원로 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의욕이 너무 높아서 이렇게 잘 살게 되었지만, 너무 과해요. 사회적 지위, 돈, 명예 중에 하나만 가져도 충분한 것인데, 이 세 가지를 모두 다 가지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운 겁니다.”

어느 유명 교수의 일갈이 생각난다 “…소위 상아탑이라는 대학은 세상이 아무리 흔들어 대도 중세시대에 처음 탄생한 이래로 그 본질이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요….” 대학이 현실과 동떨어져 도피처가 되어서는 곤란하지만 세상에 휘둘려도 대학 고유의 역할을 지켜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